안경을 너무 끼고 싶었다.
그때만 해도 안경을 끼는 아이들은 거의 없었다. 태생적으로 눈에 문제가 있는 아이들 빼고는 모두 생눈으로 다녔다. 간혹 판서가 잘 보이지 않는다는 친구가 더러 있었지만 안경을 껴야 한다고 말하는 이는 없었다. 그냥 자리만 앞으로 이동하면 그만이었으니까. 학교 체력장만 되면 시력 검사를 한다. 대부분 시력은 0.8에서 1.5 정도이고 간혹 2.0도 나오기도 했다. 그중에 반은 킬킬거리며 시력 검사판을 모두 외우다시피 했던 장난꾸러기가 대부분. 선생님도 주의를 주지 않았다. 그만큼 시력검사 중요도가 높지 않았던 것 같았다. 그러고 보니 나도 약간에 난시와 근시가 있었지만 1.0까지 암기하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
아마 내가 고학년이 되고 나서부터 안경 낀 친구들이 하나 둘 나타나기 시작했다. 그들은 하나같이 같은 별명으로 불리고 있었는데 바로 ‘안경잡이’ 었다. ‘-잡이’라는 말은 무엇을 다루는 사람을 뜻하는 접미사로, 여기서는 약간의 비하하는 의미로 쓰였다. 설령 이름에 먹잇감이 되기 쉬운 발음이 있더라도 별명이 될 수는 없었다. – 이름에 ‘환’이 들어가 환타, ‘수’가 들어가면 수타 이런 식으로 불렀다. – 안경이 모든 별명의 우위를 가져갔다. 지금이야 안경을 낀다는 게 놀랄 일은 아니지만, 그때는 충분히 그럴 수 있었다. 워낙 안경이 귀한 데다 얼굴에 무언가를 쓴다는 것이 어색할 때였으니까. 눈에 콩깍지 씌우듯 안경을 쓴다는 것에 강렬함을 아이들은 그냥 넘기지 못했던 것 같다.
어느 날, 짝꿍으로 안경잡이가 왔다. 그는 우리 반 유일한 안경잡이. 인사를 해야 하는데 이름을 불러야 할지 안경잡이라 불러야 할지 망설였다. 이름을 부르자니 다른 친구들의 눈치가 보이고 초면에 안경잡이라 부르자니 그 친구가 눈에 밟혔다. 나는 아무렇지 않은 척 눈을 흘기며 조심스레 먼저 인사를 건넸다.
“안녕 재, 재민아”
“응 안녕”
차라리 내 인사를 못 들었으면 했다. 이름 대신 안경잡이라 부를 수밖에 없는 이유가 생길 것 같았으니까. 그는 살짝 놀란듯한 눈으로 나를 바라봤다. 이내 슬며시 웃어 보이더니 내 이름을 부르며 인사를 건네왔다. 내 이름을 알고 있다는 생각에 놀랐고, 그가 내 짝꿍이라는 사실에 한번 더 놀랐던 거 같다. 이름을 부르는데 용기까지 동원해야 했던 내가 조금 부끄러웠다. 이후에도 다른 모든 이들은 그를 안경잡이라 불렀다. 서로의 퉁성명을 이름으로 한 탓인지 다시 별명으로 부를 수도 없었다. 그냥 더 친해지고 싶었다. 어쩌면 별명을 부르지 않고도 서로 친해질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니 꼭 친해지고 싶었다. 그래야만 했다.
그 친구는 서울에서 전학을 왔다. 아빠가 지하철 운행 기술자인데 대구에서 지하철 공사를 한다 해서 내려왔다고. 서울말을 오히려 변방 사투리 즈음으로 취급하던 대구 초등학생 틈서리에 쉽게 적응하지 못했다. – 나중에 알았던 사실인데 억센 사투리 덕분에 농담인지 진담인지, 싸우는 것인지 노는 것 인지도 구분이 어려웠다고 – 그도 친하게 지내고는 싶은데 쉽게 다가오지 못하고 있었다. 나는 이 후로도 한참 동안 그를 관찰했다. 안경 낀 서울 남자와 덜 자극적인 경상도 남자는 그렇게 서로를 조금씩 알아가기 시작했다.
그는 귀태가 흘렀다. 꼭 안경 때문은 아닌 듯했지만 점 하나 없이 깨끗하고 뽀얀 피부와 8대 2로 빚어 넘긴 가르마가 심상치 않았다. 옷은 항상 깨끗했고, 섬유유연제와 같은 인공적인 좋은 냄새가 났다. 또한 그 친구는 까만색 목끈이 달린 금테 안경을 끼고 다녔는데 책만 읽을 것 같다는 선입견을 가지게 만드는 제주가 있었다. 실제로 그 친구는 공부도 잘했다. 수업이 끝나고 당번이 나와 열심히 칠판을 닦을 때, 그는 벨벳처럼 매끈한 푸른 천을 꺼내 안경을 닦았다. 한 번씩 눈높이에 들어보고는 렌즈를 빛에 비춰보곤 했다. 그에게는 물 흐르듯 익숙했지만 나에게는 한없이 낯설었다.
안경 낀 이들 모두가 다 그렇지 않았을 거다. 첫 안경잡이가 그런 모습만 보였으니 안경에 대한 동경이나 착각을 할 만도 했다. 마치 램프의 요정 지니처럼 안경만 끼면 나도 귀태가 흐르고 그렇게 보이지 않을까란 상상을 했다. 얼마간 시간이 흐르자 다른 친구들도 나와 비슷한 생각을 하는 듯했다. 안경을 써보고 싶다는 친구들이 하나 둘 나타나기 시작했다. 자발적 안경잡이들이 늘어나려는 조짐이 보였다. 점심시간이나 쉬는 시간만 되면 아이들이 몰려왔다. 안경 한 번만 써보면 안 되겠냐고 물었다. 다들 하나같이 윽, 어지러워, 이런 걸 왜 쓰고 다니냐 하면서도 꼭 거울 앞에서 만족에 미소를 은연중 보이곤 했으니까.
무더운 어느 여름날, 그렇게 좋아하는 문구점 앞 떡볶이도 지나칠 수밖에 없는 날이었다. 짝꿍과 같이 하교를 하고 있었다. 어느 초등학생처럼 숙제가 많다며 온갖 불평을 하며 걷고 있었다. 이윽고 친구집에 앞에 도착했다. 그 친구는 자신의 아파트로 가기 위해 인사를 하며 고개를 돌렸다. 순간 안경테의 금속이 햇볕에 비쳐 아른거리더니 반짝 가루를 눈으로 뿌렸다. 거슬릴 정도의 불편함이었지만 묘한 기분이 들었다. 무언가에 홀린듯한 기운을 느낄 수 있었다. 부러웠고 갖고 싶었다. 순간 알 수 없는 무언가가 내 몸으로 들어왔다. 나도 안경을 끼고 싶다는 생각이 떠나질 않았다. 엄마에게 눈이 나쁘다 하면 사줄 수 있지 않을까? 안경을 껴야 할 이유를 생각하느라 눈에 광채가 난다는 걸 눈치채지 못했다.
그날 집에 오자마자 엄마를 졸랐다. 당장 안경이 필요한 이유를 나름의 논리로 조목조목 짚었다. 지금생각하면 그리 논리적인 것 같지 않았고 거의 공부 잘하겠다는 말로 협박을 했던 것 같다. 엄마는 생각했던 것보다 단호했다. 안경 끼면 불편하다는 이유와 비싸게 샀다가 이내 쳐다도 안 볼 것이라는 확신에 찬 예언을 말해주었다. 엄마의 고증은 역시나 틀리지 않았을 것이다. 덜컥 안경을 샀다가는 또 내가 철없는 아들의 예가 될 것임은 분명했으니까.
나는 결국 안경을 사지 못했다. 며칠 동안 더 졸라봤지만 엄마의 대답은 달라지지 않았다. 그 후로도 친구의 반짝이는 금테를 한동안 눈으로 좇았다. 지금도 한 번씩 반짝이는 무언가를 보면 어렸을 적 그 안경이 생각난다. 그리고 눈앞이 흐려질 때까지 울었던 기억도 떠오른다. 약간은 원망스러운 엄마의 고집과 함께. 지금 생각하면 웃어넘길 일이지만 어렸을 적에 처음이자 마지막처럼 염원했던 것에 대한 바람이 틀어졌을 때의 기분은 쉽게 잊지 못하는 것 같다. 어느 순간부터, 그 빛이 조금씩 흐려지기 시작한다. 그리고 이상하게도, 흐려지는 건 안경이 아니라 그때의 나였다는 걸 나중에서야 알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