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 힘들다 그만 가라”
“이번 한 번만 더 갈라고”
오늘은 단수날이다.
아파트 옥상에는 커다란 물탱크가 있는데, 1년에 한두 번은 대청소를 했다. 그때마다 이렇게 단수를 한다. 보통은 이틀 정도 단수를 하는데 나는 은근 이날을 기다린다. 그때가 되면 꼭 씻지 않아도 되니까. 무엇보다 내가 제일 좋아하는 힘자랑을 할 수 있는 날이기도 했다.
초등학교 4학년, 그때는 몸무게와 키가 부쩍 늘었던 때로 기억한다. 뚱뚱 까지는 아니지만 얼핏 보면 뚠뚠 하다 싶을 정도의 덩치를 가지고 있었다. 나무로 된 걸상에 별다른 의지 없이 앉아 있으면 허벅지가 옆으로 퍼져 웬만한 여학생 허리둘레쯤 되었던 것 같다. - 실제로 돼지로도 불렸던 적이 있었다 - 별로 개의치 않았다. 그때만 해도 남자와 여자가 이성으로써의 존재한다고 생각하지 못했다. 그저 확률에 근거한 생물학적 차이에 지나지 않는다고 생각했을 때였으니까.
그런 나에게는 타고난 기질이 있었다. 상체가 다른 학생보다 조금 큰 편이었는데, 그만큼 힘도 세었다. 팔씨름도 반에서 1등이었고 특히 줄다리기는 내가 없으면 안 되는 것처럼 떠들어대곤 했다. 따로 헬스를 한다거나 벌크업을 했을 리는 만무했다. 자전거 타고 다니며 골목에서 한두 살 어린 조무래기나 데리고 다니는 게 고작. 엄마가 장을 보러 가면 무거운 짐은 내가 도맡아 들었다. 그럴 때마다 듬직하다는 이웃의 칭찬이 등뒤로 밀려 들려왔다. 그럴 때마다 무거운 비닐봉지를 쥔 손에 더 힘이 들어갔다. 아무렇지 않은 척하느라 비닐봉지가 손을 벌겋게 파고들 때까지 한 손으로만 들고 다녔던 기억이 있었다.
단수가 되면 내가 힘을 쓸 수 있다. 팔씨름과 장바구니로만 과시하던 힘자랑을 현실에 써먹을 수 있다. 단수날이 되면 모두가 분주하다. 아파트 중앙 놀이터 옆 공터에 급수차가 온다. 물탱크에 물을 가득 채우고 차례로 급수를 시작한다. 각자 물통을 가져와 물을 받아간다. 그 물로는 물을 끓이거나 밥을 짓고 국을 끓였다. 화장실 욕조에도 미리 물을 가득 담아 놓긴 하지만, 그 물은 변기 물을 내리거나 씻을 때만 썼다.
오후가 되자 연이은 방송에 아파트가 시끄럽다. 깔때기처럼 생긴 스피커가 단지 곳곳에 설치되긴 했어도 뭉개지는 소리 때문에 알아먹기 힘들다. 대충 들어보니 살수차가 왔으니 선착순으로 받아가라는 것 정도는 알 수 있었다. 엄마는 비장한 표정으로 베란다에 가시더니 말통을 들고 왔다. 각자 하나씩 들고 현관을 나섰다. 이미 가족단위로 하나 둘 나오고 있었다. 손에는 손잡이가 달린 플라스틱통, 고무 대야, 말통 가지각색이다. 걔 중에는 한 살 많은 형도 있었다. 그는 내가 들고 있는 것보다 더 큰 말통을 들고 있었다. 내가 덩치가 더 큰데 물통이 작다는 게 말이 되나? 괜한 자존심에 슬그머니 물통을 뒤로 숨겼다.
줄을 선채 한참을 기다렸다. 우리 차례가 되자 급수차 호수를 말통 입구에다 쑤셔 넣었다. 나보다 키가 큰 어른들 틈서리에 끼여 움츠린 사이 콸콸 물이 들어가는 소리가 세차게 들렸다. 얼마나 무거울까 가늠했다. 어떻게든 들기만 하면 된다. 괜찮은 척 연기만 하면 그만인데, 정말로 들지 못하면 어쩌지 걱정이 앞선다. 그때 물을 담아주시던 공무원 한 분이 말을 건넸다. 아드님이 효자네~ 엄마 힘들다고 물도 날라주고. 가슴이 쿵쾅거리더니 손목에 힘이 들어갔다. 넘치지 않을 정도로만 적당히 채우려다가, 물이 넘칠 때까지 그냥 두었다. 초등학생의 근거 없는 객기가 서서히 고개를 들기 시작하는 순간이었다.
말통에 입구가 꺼이꺼이 소리를 내더니 이내 물을 토하기 시작한다. 서둘러 뚜껑을 닫았다. 주변을 둘러보니 그 형이 옆줄에 서서 나를 보고 있었다. 그걸 들 수 있겠냐는 표정이었다. 모두가 나만 보는 것 같았다. 튀는 것은 좋아하지만 주목받는 것은 싫어하던 터라 서둘러 빠져나와야 했다. 있는 힘껏 물통을 들었다. 생각보다 쉽게 번쩍 들렸다. 이내 중력이 관성을 앞서기 시작했고 팔은 크게 출렁이며 아래로 늘어졌다. 그래도 걸을만했다. 힘이 장사네 같은 웅성임이 등뒤로 따라왔다. 엄마를 따라가며, 아무렇지 않은 척, 흔하게 들고 다닌 척하느라 애를 먹었다.
집으로 오는 도중 몇 번이고 내려놓아야 했다. 물에 적셔진 솜처럼 점점 무거워졌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나를 따라오던 시선이 그만큼 줄었기 때문이기도 했다. 관심에서 멀어지면 이상하게도 몸에 솔직해지고 싶었다. 몸이주는 아픔에 쉽게 반응하고 엄살을 부렸다. 집에 도착해 물통을 내려놓았다. 손은 이미 벌겋게 물들어 있다. 엄마와 함께 큰 솥에다 물을 옮겨 담았다. 엄마는 내려놓은 말통과 솥을 번갈아 봤다. 아마도 몇 번을 더 갔다 와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을 하는 듯했다.
생각할 겨를도 없이 다시 말통을 들었다. 이번에는 내 것보다 더 큰 엄마 것을 집어 들었다. 내 것도 힘들긴 했지만 군중 속에 과시할 수 있는 10걸음 정도는 엄마 것으로도 충분하다 싶었으니까. 더군다나 그 형보다는 내가 더 큰 통을 들어야 했으니까. 엄마의 만류가 나를 몇 번이고 잡았지만 당장에 보여주겠다는 의지가 몇 걸음 더 앞서고 있었다.
현관을 나서면서 급수차 넘어 놀이터로 해가 지고 있었다. 오늘은 친구들과 자전거 타며 놀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당장에 급수차가 우선이라며 혼자 중얼였다. 저기 멀리서 그 형이 낑낑대며 오고 있었다. 가까이 가자 그의 말통에 물은 반밖에 없었고 그마저도 힘들게 들고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그는 중력에 굴복하더니 이내 고개를 떨궜다. 서로는 부끄러움과 당당함, 패자와 승자 같은 눈빛을 주고받으며 서로를 지나쳤다. 나는 한 손에 들고 있던 말통을 앞으로 들었다. 공손하게 인사하는 것처럼 두 손으로 들고서 걸을 때마다 무릎으로 통통 튀겨냈다. 꼭 무슨 승전보를 울리는 것처럼 당당하게 두들겼다.
물을 담고 오다 몇 걸음 지나지 않아 멈춰야 했다. 물이 출렁이며 나를 당길 때마다 그 자신감이 서서히 팔을 타고 빠져나가는 듯했다. 손바닥엔 손잡이 자국이 선명하다. 이미 땅거미가 내려앉은 아파트는 단수 때문에 좀 더 활기차게 불을 밝히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