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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 부인을 좋아하는 녀석은 결국..

「희극의 파편」38. 투르게네프 - 사랑의 개가 中

by 재준

발레리야라고 불리는 한 처녀가 살고 있었다. 그 처녀는 교회에 갈 때에만 외출하고, 대제가 오면 산책을 할 정도로 무척 고독한 생활을 즐겨하는 여자였다. 그래서 사람들의 눈에 띄는 일은 거의 없었으나, 도시에서는 그 처녀가 일류 미인 중의 한 사람이라는 소문이 떠돌고 있었다. 그녀는 어머니와 함께 살고 있었다. 어머니는 과부로 그렇게 부자는 아니었지만 훌륭한 가문 출신이었고, 발레리야는 그녀의 무남 독녀 외딸이었다. 발레리야를 만나는 사람이면 누구든지 자기도 모르는 놀라움에 사로잡혀 부러운 존경심을 일으켰다. 그러나 그녀 자신은 자기의 아름다움을 조금도 마음에 두는 기색이 없었다. 그만큼 그녀는 겸손한 처녀였다.


물론, 어떤 사람은 그녀의 얼굴빛이 약간 파리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거의 언제나 살며시 내리깔은 그녀의 시선은 내적인 성격이라기보다는 어떤 두려움을 말해 주는 듯했다. 가끔 그녀의 입술이 방긋 웃을 때가 있지만, 그것도 살짝 웃어 넘길 뿐으로 그녀의 목소리를 들은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렇지만 그녀의 목소리가 아름답다는 소문만은 떠돌고 있었다. 이른 아침, 온도시의 사람들이 아직 고요히 잠들어 있을 때, 그녀는 자물쇠를 채운 방에 홀로 들어앉아서 거문고를 타며 옛 노래를 부르는 것을 낙으로 삼고 있다는 것이었다.


「희극의 파편」은 단편, 장편 희곡 중 재미있는 한 장면을 선별해, 그 감정적 여운과 미학적 장치를 분석하고 현대적 맥락에서 사유해보는 에세이 시리즈입니다. 말은 거창하지만 그냥 특정 장면이나 대사를 가지고 이리저리 뜯어보면서 독자와 함께 놀아보는 글이라고 보시면 됩니다^^



안녕하세요! 휴가철인데 다들 잘 쉬고 계신가요?ㅎㅎ 얼마나 더운지 제 강아지는 더위를 먹었네요.


오늘 「희극의 파편」 서른여덟 번째 작품은 투르게네프의 '사랑의 개가'입니다.

강아지가 아닌 The Song을 뜻합니다.^^


이반 세르게예비치 투르게네프(Иван Сергеевич Тургенев, 1818–1883)는 러시아의 대표적인 사실주의 소설가이자 극작가입니다. 물론 이후 톨스토이, 도스토옙스키에게 약간 밀려난 감이 없지 않아 있지만, 아름다움에 대한 그의 우아하고 섬세한 감각은 그 어떤 작가도 흉내낼 수 없는 천부적 재능을 가진 작가였습니다.


내용은 정말 간단합니다.


베스트 프렌드 파비와 무츠이가 있습니다. 그리고 그 마을엔 절세가인 발레리야가 살고 있었습니다.

파비와 무츠이 둘이 동시에 그녀에게 청혼을 하였고, 발레리야는 결혼할 마음이 없었지만, 꼭 결혼을 했으면 좋겠다는 엄마의 말에 따라 결국 파비를 택하게 됩니다. 무츠이는 그녀의 선택을 존중하고 또 그 상대가 누구보다 오래된 친구 파비였기에 쉽게 승복하게 됩니다. 그리고 그녀에 대한 아쉬운 마음이 사라질 때까지 마을을 떠나있겠다고 선언합니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무츠이는 5년만에 다시 마을로 돌아오게 되는데... 돌아온 그의 상태가 영 이상합니다.


부담없이 가볍게 한번 읽어보시고 가세요^^


무츠이의 용모 자체는 그다지 변한 것 같지 않았다. 다만 어릴 때부터 거무스레하던 얼굴이 강한 햇볕에 타서 한층 검어지고, 눈이 예전보다 움푹 들어간 듯이 보일 정도였으나, 단 한 가지 그의 얼굴 표졍만은 완전히 달랐다. 빈틈없이 긴장한 장중한 표정은 여러 가지 위험, 그 중에서도 캄캄한 밤에 호랑이의 으르렁대는 소리, 낮에는 한적한 산길에서의 악신의 희생으로 삼기 위해 길 가는 나그네를 노리는 산적을 만났다는 이야기를 할 때에도 조금도 놀라는 기색이라고는 없었다. (생략)



무츠이는 온순하고 민첩한 말레이인 하인의 도움으로, 인도의 바라문한테서 배운 몇 가지 요술을 주인들에게 보여주었다. 한 가지 예를 들면, 그는 자기 몸을 휘장으로 가리는가 했더니, 갑자기 수직으로 세운 대나무 지팡이에 손끝으로 가볍게 의지하면서 공중에 책상다리를 하고 앉은 모습을 나타냈다. 파비도 놀랐지만, 발레리야의 놀라움은 말할 수 없었다.


무츠이는 대답하는 대신, 인도의 바이올린을 가져오라고 말레인에게 명했다. 바이올린은 요즈음 것과 다름이 없었다. 단지 줄이 네 줄이 아니라 세 줄이었고, 위에는 푸릇푸릇한 뱀 가죽이 덮여 있었으며, 거기에 삼으로 만든 가늘고 긴 반원의 활이 달려 있고, 그 끄트머리에 뾰족한 보석이 반짝이고 있었다.



무츠이는 먼저 몇 개의 비곡을 켰다. 그의 말에 의하면 민요라는 것으로, 이탈리아인의 귀에는 이상하다기 보다는 오히려 조잡한 감을 주었다. 금속으로 만든 현의 음향은 나직하고 구슬펐다. 그러나 무츠이가 마지막 노래를 시작했을 때, 그 음향은 갑자기 높아져서 힘차게 울리기 시작했다. 힘있게 활을 올리고 내릴 때마다 그 밑에서 타는 듯이 정열적인 곡조가 흘러내렸다. 그것이 마치 바이올린 거죽을 덮고 있는 뱀처럼 아름다운 굴곡을 보여 주어서, 한결 정서를 더해주는 것 같았다. 파비와 발레리야는 마음이 괴로워서 글썽하니 눈물이 고였다.


(생략)

그녀는 그전에 무츠이가 얼마나 무서웠는지를 상기해보았다. 그리고 지금도 그녀는 못 믿어 하는 눈치였다. 무츠이는 자기 숙소로 돌아가고, 파비 부처는 그들의 침실로 들어갔다.


발레리야는 한참 동안 잠들 수 없었다. 온몸의 피가 괴로움 속에 잔잔히 물결치고, 머릿속은 종이라도 치는 듯 가볍게 뒤흔들렸다. 이것은 발레리야가 추측한 대로, 이상한 술 때문이기도 했지만, 무츠이의 이야기와 바이올린 연주도 어느 정도그 원인이 된 듯했다. 결국 그녀는 새벽녘에야 잠들었는데, 곧 이상한 꿈을 꾸었다.



그녀는 먼저 자기가 천장이 나직한 널찍한 방 안에 들어와있다는 것을 느꼈다. 그녀는 지금까지 한 번도 이런 방을 본 적이 없었다. 사방의 벽은 금빛 풀이 자란, 가느다란 청색 타일로 싸여지고, 우아하게 조각된 석고 기둥은 대리석 천장을 떠받치고 있었다. 그 천장과 기둥은 어렴풋이 투명해 보였다. 연한 분홍빛은 모든 사물을 동일한 신비로움으로 물들게 하면서 사방에서 방 안에 내리비치고 있었다. 거울같이 미끄러운 마루 한복판의 폭 좁은 양탄자 위에는 비단 방석이 놓여있었고, 방석마다 괴물을 상징하는 키다리 향로가 가느다란 연기를 내뿜고 있었다. 어디를 보나 창문이 없었다. 비로드 커튼을 드리운 문은 우묵 들어간 벽 위에서 말없이 검은빛을 발하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커튼이 살랑살랑 미끄러지며 움직이더니 살며시 무츠이가 들어오지 않는가. 그는 인사를 하고 두 손을 벌리며 벙긋이 웃었다. 이윽고 그의 무쇠 같은 두 손은 발리리야의 몸을 얼싸안으며, 메마른 입술로 그녀의 온몸을 더듬는다. 그녀는 방석 위에 거꾸러지고 만다.


(생략, 그녀는 자꾸만 이상한 꿈에 시달린다.)


바로 그때 파비는 발레리야가 조금씩 움직거리는 것을 보고 오싹 소름이 끼쳤다. 자세히 바라보니, 발레리야가 반쯤 몸을 일으키고 먼저 오른쪽 다리, 다음엔 왼쪽 다리를 침대에서 내려놓았다. 그리고 몽유병자와 같이, 흐리멍덩한 눈으로 멍청히 앞을 바라보면서, 두 손을 뻗은 채 정원으로 나가는 문을 향해 걸어가고 있었다. 파비는 재빨리 침실의 다른 문으로 뛰어나가 날쌔게 집모퉁이를 돌아서 정원으로 나가는 문을 밖에서 잠가 버렸다.


달빛을 가득 안은 정원 길을, 파비 쪽을 향해서 역시 몽유병자와 같이 두 손을 앞으로 뻗은 채, 흐리멍덩한 눈을 하고 어슬렁어슬렁 걸어오는 것은 바로 무츠이 아닌가. 파비는 무츠이 쪽으로 달려갔으나, 무츠이는 파비를 알아보지 못하고 한 걸음 두 걸음 절도 있게 발을 옮기고 있었다. 그의 움직이지 않는 얼굴은 말레인과 같이 달빛을 받아 웃고 있었다. 파비는 소시를 쳐서 그의 이름을 부르려고 했다. 그러나 그 순간, 그는 자기 뒤의 집 안에서 유리창을 두드리는 소리를 들었다. 그는 돌아보았다.


사실, 침실의 유리창은 아래에서 위까지 활짝 열려 있었다. 그리고 발레리야는 문지방을 넘어서 창문 안에 서 있었다. 그녀의 손은 마치 무츠이를 부르고 있는 듯... 그녀의 온몸은 무츠이에게 끌리고 있었다.

말할 수 없는 분노의 불길은 별안간에 휘몰아친 파도처럼 파비의 가슴을 뒤흔들어 놓았다. " 이 저주받을 마법사 녀석이!" 그는 미친 듯이 외쳤다. 그러고는 한 손으로 무츠이의 목덜미를 붙잡고, 다른 손으로는 허리띠에서 단검을 더듬어서, 바로 칼손잡이까지 무츠이의 옆구리를 찔렀다.


(생략, 파비는 몰래 무츠이의 방에 들어가본다.)


무츠이는 이미 양탄자 위에 누워 있지 않았다. 그는 값비싼 옷을 입고 안락의자에 앉아 있었다. 그러나 파비가 처음 보았을 때와 같이 무츠이는 송장과 다름없었다. 돌처럼 무거운 머리는 안락의자 뒤에 늘어지고, 손바닥을 위로 하여 뻗은 노르스름한 두 손은 무릎 위에서 움직이지 않았다. 가슴은 웅크린 채 올라오지 않는다. 안락의자 주위, 건초가 흩어진 마루 위에는 액체가 든 몇 개의 평평한 잔이 놓여 있었다. 그 안에서는 지독히 독한, 숨막힐 듯한 냄새가 풍겨 나오고 있었다. 모든 잔마다 그 주위에는, 자그마한 구릿빛 뱀이 때때로 금빛 눈을 반짝이면서 둘둘 말려 있었다. 그리고 무츠이 앞에는 두어 걸음 가량 간격을 두고 말레이인의 기다란 모습이 우뚝 서 있었다. 그는 알록달록한 양단 두루마기에 뱀 꼬리로 허리를 묶고, 머리에는 뿌리가 돋은 관 모양의 높다란 모자를 쓰고 있었다. 그러나 그는 우두커니 서 있는 것이 아니었다. 정중히 꿇어 엎드려 기도를 드리는가 하면, 다시 온몸을 꼿꼿이 일으켜서 발꿈치로 서기도 했다. 혹은 알맞게 손을 벌려서는 열심히 무츠이를 향해서 움직이기도 했다. 그러고는 위협을 하는지, 명령을 하는지 눈썹을 찌푸리고, 발을 동동 구르기도 했다.


말레이인의 호흡은 거칠어지고, 그의 얼굴에선 땀이 흘러내렸다. 별안간 그는 장승처럼 얼어붙더니, 가슴 가득 공기를 들이마시고 이맛살을 지푸리며 말고삐라도 쥔 듯이 힘 있게 움켜잡은 손을 천천히 자기 쪽으로 끌어당겼다. 그러자 파비는 깜짝 놀랐다. 무츠이의 머리가 천천히 안락의자의 등을 떠나, 말레이의 손이 움직이는 대로 끌려오지 않는가. 말레이인이 손을 놓으니, 무츠이의 머리는 덜컥 뒤로 자빠졌다. 말레이인이 운동을 반복하자 온순한 머리도 그를 따라 운동하는 것이었다. 그러는 사이에 잔 속의 검정 액체는 끓어오르고, 잔 그 자체도 가냘픈 소리를 내며 울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구릿빛 뱀들은 잔 주위에서 구불구불 물결쳤다. 그때 말레이인은 한 걸음 앞으로 나서서, 눈썹을 높이 치켜올리고 눈을 크게 부릅뜨고는 무츠이의 머리를 흔들었다. 그러자 죽은 사람의 눈가죽이 바르르 떨리면서 서서히 열려지고, 그 밑에서 납처럼 흐릿한 눈동자가 나타났다. 말레이인의 얼굴은 개선장군처럼 능글맞은 웃음으로 빛났다. 그는 입을 커다랗게 벌리고, 길게 끄는 신음 소리를 간신히 목구멍 속에서 끊어 버렸다. 무츠이의 입술도 같이 열려졌다. 그리고 짐승 같은 말레이인의 외침에 응해서, 그의 입술에서는 약한 신음 소리가 새어나왔다.



파비도 같이 고함을 지르고, 뒤돌아보지 않고 기도를 드리면서, 성호를 그으면서 쏜살같이 집으로 도망쳐 왔다.


어떤가요? 이게 뭐야...하셨나요?ㅎㅎ 저도 영문도 모른 채 마치 무츠이의 도술에 빠진 듯이 읽어나갔네요...


결말은 이 수상한 말레이인이 무츠이를 살린 건지 부축을 받은 채로 다른 마을로 가더니 영영 사라지고 말았다고 합니다.


「희극의 파편」은 독자가 가볍게 마주할 수 있도록, 그저 장면을 꺼내어 놓기만 합니다.


적용 질문입니다.



1. 사랑이 깊어지는 일은, 점점 이상해지고 그로테스크해지는 일일까요?


2. 글을 쓸 때 감동시키기보단, 오히려 당황스럽거나 부끄럽게 만들려고 해본 적이 있나요?


3. 무츠이는 아직 그녀에 대한 미련을 가지고 있던 걸까요?


4. 사랑하지 못하는 억압된 마음이 있나요? 그 마음은 다시 어디로 분출되나요?


5. 무엇이 중요한가요? (영화 F1을 보고 난 뒤의 후유증..)


「희극의 파편」은 ‘이상하게 오래 남는 순간들’을 의도적으로 골라내고, 붙잡고, 말로 돌려줍니다.



내 말에 속지 마라.


-퇴옹 성철


오늘의 속담입니다.




신선놀음에 도끼자루 썩는 줄 모른다


옛날 한 나무꾼이 나무를 하러 산 속 깊이 들어갔다가 우연히 동굴을 발견했다. 동굴 안으로 들어가니 길이 점점 넓어지고 훤해지면서 눈앞에 두 백발노인이 바둑을 두고 있는 것이 보였다.

나무꾼은 무심코 서서 바둑 두는 것을 보고 있다가 문득 돌아갈 시간이 되었다는 생각이 들어 옆에 세워 둔 도끼를 집으려 했는데 도끼자루가 바싹 썩어 집을 수가 없었다.

이상하게 생각하면서 마을로 내려와 보니 마을의 모습은 완전히 바뀌어 있었다. 한 노인을 만나 자기 이름을 말하자, 노인은 “그분은 저의 증조부 어른이십니다.”라고 대답하더라는 것이다.


(출처: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문득, 문득, 이렇게 사는 것만이 두렵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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