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슴이 뛸 때마다 나는 엄마 생각을 했다.
쿵
쿵
쿵
선생님께서 교과서 한 쪽을, 일어나서
읽어 보라고 시키셨을 때
자기는 혼자서
쿵
쿵
쿵
가냘프게 몸을 떨어댔다는
우리 엄마의 심장이
시험장 들목에 선 내 가슴에서
쿵
쿵
쿵
이번에는 떨지 말고
원래 실력대로만 하고 오라며
쿵
쿵
쿵
나는 남들보다 불안을 느끼는 신경이 훨씬 발달되어 있다고 느낀다. 나는 주변에서 볼 수 있는 극도로 예민한 사람 중 한 명이다. 쉽게 놀라고 지치고 긴장하는 모습은 마치 숨을 곳 없는 벌판에 오도카니 서 있는 노루 같다. 특히 시험이나 발표 같은 일정이 잡히게 되면 나는 며칠 동안 초주검처럼 지내곤 한다. 취업과 연계되는 이번 필기 시험을 준비할 때도 마찬가지였다. 지나친 압박감을 느껴서 속이 자주 메스꺼웠고 한 가지 일에 집중하지 못했다. 밤이면 참았던 불안감이 몰려와 잠에 들기가 힘들었다. 그래서 낮에는 정신을 한데 모으려고 커피를 잔뜩 들이켰고 밤이 되면 잠에 드려고 술에 거나하게 취했다. 이런 생활을 몇 주간 계속하면서 나는 불안감을 떨치기 위해 나 자신을 망가뜨릴 수 있는 사람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밤이 되면 나와 멀리 떨어져 사는 엄마와 자주 통화했다. 나는 항상 혼자 사는 것이 나의 불안감에 악영향을 끼친다고 생각해 왔다. 어느 날은 불안감을 견디지 못해서 엄마에게 괜스레 투정을 부렸다. 내 예민한 기질이 당최 누구에게서 온 것인지 물었다. 가시돋친 말이었다. 엄마는 자기도 그랬다며 흥분한 나를 다독여 주었다. 자기도 어릴 적 선생님이 책을 읽어 보라고 시키기라도 하면 다리를 덜덜 떨었댄다. 그 말을 듣고 나니 이상하리만치 흥분이 가라앉았다. 내 롤러코스터 같은 기분 변화가 이제는 놀랍지도 않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엄마가 나의 예민한 기질에 진심으로 공감하려고 다분히 애쓴 것이 느껴진다. 그 덕분에 이 시를 번득 떠올릴 수 있었던 것 같다.
그날 밤은 꿈 없는 잠을 잤다. 물론 내 심장은 여전히 제 몸을 한껏 부풀리며 과장되게 쿵쾅거리고 있었다. 하지만 누구나 이런 경험을 해 본 적이 있을 것이다. 귀에 거슬리던 소음이 듣기 좋은 소리로 바뀌어 들리는 경험. 나는 도로변에 살면서 언젠가 자동차의 소음이 파도 소리로 들렸던 적이 있다. 덕분에 한동안 잠을 잘 잤던 기억이 난다. 꽤 기분 좋은 환청이었다. 이번에는 엄마의 말을 듣고 나니 심장 소리가 마치 북소리처럼 느껴졌다. 시험을 목전에 둔 나를 일으켜 세우는 힘찬 북소리. 오십 년 전 교실에서 쿵쾅대며 뛰고 있던 엄마의 심장이 내 가슴 속에서 울리고 있었다.
가슴이 뛸 때마다 나는 엄마 생각을 했다. 그리고 엄마의 마음이 내 가슴 속에서 뛰는 것을 지긋이 느꼈다. 결국 나는 어느 때보다 무덤덤한 태도로 시험을 볼 수 있었다(시험이 무척 어려워서 반은 포기하고 치렀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또 결국 시험에 합격하긴 했지만, 만약에 떨어졌다고 하더라도 나는 시로 써 낼 수 있는 하나의 값진 경험을 했다는 데에서 분명히 미소 지었으리라. 너무너무 긴장돼서 심장이 빠르게 뛰고 있다면 나를 응원하는 사람들이 내 가슴에서 북을 치고 있다고 상상해 보라. 깊은 유대가 온 몸에서 핑핑 돌며 울려 퍼지는 기분 좋은 경험을 하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