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잭슨 폴락과 마크 로스코

혼돈의 심장, 응축의 빛

by madame jenny


작년 겨울 뉴욕 MOMA에서 마주했던

잭슨 폴락 (Jackson Pollock)과

마크 로스코 (Mark Rothko).

두 작품의 병렬전시는

마치 망치를 맞은 듯했다.
격렬한 터널을 지나 한동안 공백기였던

내가 가야 할 길의 before&after 같았다.
여러 가지 의미로...


삶은 종종 미완의 원고 같다.
줄거리는 시작되었으나 결말은 흐릿하고, 페이지마다 서로 다른 문장이 뒤엉켜 있다.
희망은 감탄문처럼 솟구치고, 불안은 쉼표처럼 머뭇거린다.


끊임없는 서사의 한가운데서, 무엇을 지우고 무엇을 남길지 결정해야 한다.
선택이란 결국, 혼돈의 문장을 하나의 단락으로 묶는 행위다.

잭슨 폴락의 화면은 그 단락을 쓰기 전의 거친 초고다.
잉크가 튀고, 문장이 깨지고, 의미가 채 완성되기 전의 에너지가 날 것 그대로 흐른다.
그의 action painting은 감정을

미리 다듬지 않는다.
열정으로 쏟아내렸을 처음의 터트림이

과연 어떤 절정의 느낌이 왔을 때
붓을 놓을 수 있었을까??
아마 그도 고민하지 않았을까??
이게 끝인지 더 해야 할지....
왠지 그의 작품은 완결이 아닌 것 같았으니까..
사랑에서도 이 방식은

모든 가능성을 열어둔 채
서로의 모순과 불완전함을 함께 견디는 것과 닮아 있다 생각했었다.


폴락은 말했다.
“결정이란 때로 혼돈 속에서 숨 쉬는 일이며, 그 자체가 이미 하나의 완결이다.”

반면 바로 옆 마크 로스코의 색면은
모든 문장을 다 써 내려간 뒤에 남긴

마지막 한 줄 같았다.
그 한 줄은 단순하지만, 그 안에는 지워진 수많은 문장과 교정된 단어,
버려진 초안이 스며 있었다.
오랜 방황 끝에 모든 문장을 닫는

결단과도 같았다.
색의 깊이는 조용하지만,

그 속에는 휘몰아 소용돌이쳤을 시간들이
미세한 울림으로 가라앉아 있는 것 같았다.

폴락과 로스코는 다른 언어로 말하지만,
둘 다 우리가 외면하기 쉬운 진실을 가르친다.
선택은 단순히 혼돈을 제거하는 일이 아니라,
그 혼돈을 어떻게 품어 단면으로 응축하느냐가 아닐까?
우리의 서사는 폴락처럼 거친 문장을

그대로 남길 수도,
로스코처럼 한 줄의 침묵으로

마무리할 수도 있다.

지나온 시간 마음이 곧게 마주 보지 못하고 서로를 비껴 스쳐 가는 순간들이 있다.


그 순간은 단순한 스침이 아니라,
서로 다른 시간과 감정이 교차하며 남기는 미묘한 흔적이다.
기쁨과 서운함, 애틋함과 체념이 한데 엉켜, 풀 수 없는 매듭처럼 가슴에 걸린다.
아픔은 바로 그 교차점과 경계에서 자라난다.

잭슨 폴락의 화면은 그 매듭을 풀지 않은 채 그대로 두는 법을 보여준다.
그의 선들은 부딪히고 흘러내리며, 결코 하나의 직선으로 정리되지 않는다.
그러나 그 혼돈 속에도 나름의 질서가 있다.
때때로 우린 모든 관계를 완벽히 해명하려 하지 않고,
상처와 기쁨이 함께 얽힌 결을 그대로 품는 상황을 받아들여야 하는 순간이 온다.


선택은 여기서 ‘무엇을 붙잡을까’가 아니라,
‘무엇을 정리해서 남겨야 하는가’에 대한 고민이 된다.

반면 마크 로스코의 색면은 비워내는 과정이다.
겹겹이 쌓인 색은 시간이 흘러 부드럽게 스며들고,
결국 몇 개의 단순한 빛으로 남는다.
그것은 복잡한 사연 속에서도
더 이상 설명이 필요 없는 마음의 본질을 찾아야 하는 시간을 의미한다.

사랑이든 인생의 선택이든 수많은 교차와 오해, 서운함, 아쉬움을 지나온 뒤에도
여전히 곁에 남는 단 하나의 감정, 혹은 단 하나의 안칙지점과 같다.

폴락이 가르치는 것은

‘혼돈을 안고도 걸어갈 수 있다’는 용기이고,
로스코가 전하는 것은

‘비워낸 뒤에도 남는 것의 가치인식’ 일 것 같다.

우리는 이 두 방식을 번갈아 배우게 된다.

때로는 모든 색과 선을 살려내고,

때로는 그것들을 덜어낸다.

또렷하게 바라보고자 하는 나의 용기와 의도를 지킬 수 없는 힘이 부족하다면

마크 로스코의 그림도

두세 가지의 색이 섞여

빛이 아닌 어슴푸레하게 보이는

또 다른 어두운 단색이 된다.

멀리서 조금 가까이

눈을 작게 뜨고 어슴프레하게

바라보며

움직여보고 색과 빛의 변화를

느껴보는것.



때론 아프고 견디며 비껴가는 마음속에서 태어난 복잡한 감정을

하나씩 정리해 가는 일은

나의 눈을 똑바로 뜰 수 있는 힘이 해야 할 일이다.


그 과정은 결코 단숨에 완성되지 않겠지.

포기하지 않고 계속 걷듯 노력하면 폴락의 화면 속 선처럼 얽혀 있던 마음이

어느새 로스코의 색면처럼 고요히 가라앉는 순간이 찾아올까?


때론 무의식적으로 때론 본능을 누른 의식이

나의 이 혼돈을 멈춰줄 수 있길 바란다.

때가 오겠지.

자연스럽게 구부러져서 비워진 공간을 지지하는 불규칙한 아치기둥처럼.

위태로워 보여도

불안전해 보여도

아름답게 서 있을

하나의 구조물로 마무리될 수 있는.


비어있어도 무너지지않고

모든걸 다 받아들이고

내 보내는것이 순환이라는걸..




안서희作 sea sapes

keyword
작가의 이전글설국과 냉정과 열정사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