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릿속에서 정리되지 않는 많은 생각들이
파도처럼 출렁일 때 글을 쓴다.
너무 포화되면 쓸 수조차도 없긴 하지만.
글을 쓴다는 것은 단순히 생각을 정리하는 일이 아니다.
글은 때론 내가 다 알지 못하는 의지가 드러나는 통로가 된다.
쇼펜하우어는 말한다.
의지는 이성보다 먼저 움직이고,
언제나 나를 밀고 나가는 힘이다.
어쩌면 우리가 가장 이상적으로
바라는 바겠지만
나는 그 의지를 곧바로 붙잡지 못할 때가 더 많다.
한 문장의 시작이 어렵다.
그럴 땐 단어로 나를 대신해 본다.
그러다 보면 무의식의 흐름처럼 뭔가가 이끌리듯 글의 이미지가 보인다.
내가 이끄는 것 같지만,
사실은 글이 나를 이끈다.
글을 다 쓰고 난 뒤에야,
“아, 이것이 내가 바라던 것이었구나” 하고 거꾸로 깨닫는다.
이런 점에서 ‘의도를 알아차린다’는 건 계획된 목표를 확인하는 게 아니다.
오히려 글을 통해 내 안에서 움직이던 의지가 어떤 얼굴을 하고 있었는지
비로소 알아차리는 순간이다.
내가 글을 쓰는 게 아니라,
내 안의 의지가 나를 통해 글을 쓰고,
나는 그것을 뒤늦게 목격하는 셈이다.
의지를 완전히 다스릴 수 있는 건 쉽지 않다.
하지만 글을 쓰는 행위는 의지를 잠시 대상화하는 길이 된다.
충동에 휘둘리기만 하던 내가,
글을 통해서는 의지를 하나의 풍경처럼 바라볼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설사 그것이 진정으로 '완벽히' 변화되어
완성된 모습으로 마무리되지 않더라도
그렇게 하고 있는 나 자신에 대해
스스로 주는 용기다.
내가 원하는 답을 설명하려고 쓰는 동시에, 내가 원하는 해답은
글을 통해 나에게 내 의지를 비춰준다.
그래서 글은 내 안의 힘을 드러내는 동시에, 그 힘을 이해하게 하는 거울이 된다.
그렇게 나를 본다.
쉽없이 포기하지 않고.
나를 가장 사랑하는 건
바로 나이므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