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 멀리 보이는 석양이 참 아름답다.
차 안에서 울리는
헨델의 '파사칼리아'
고속도로 위 달리는 시공간의 이동과 완벽히 맞아떨어진다
순간의 아름다움에
나도 모르게
곡의 변주에 맞춰
풀액셀을 밟는다..
인생에서 가장 아름다운 순간.
화양연화(花樣年華)!!!
그래 맞아.
이게 그 순간일까...
청춘의 푸른빛은
시간이 지나면서
성숙의 고요로
숙성된 또 다른 채도로
변해간다.
인생에서
화양연화는 한순간으로
끝나지 않는다.
마치
파사칼리아처럼
다른 변주로
움직이듯이..
단순한 저음 선율이 끊임없이 되돌아오며, 천천히 쌓이듯 연주되는
반복은
그 위에 얹히는 변주가
매번 다른 빛깔을 띤다
긴장과 해소. 고조와 침잠.
그 흐름 속에서 흐르는 음악은
하나의 거대한 호흡의 흐름이 된다.
삶도 그렇게 흘러갈 거다.
일상이라는 같은 선율 위에 기쁨과 슬픔, 만남과 이별이 얹히듯
하나의 변주곡이 된다.
화양연화는 어디에 있을까.
우리는 종종 절정을 떠올린다.
하지만 극적인 것보다
때론 작은 흔들림이 더 크고
깊게 느껴진다.
창가에 내려앉은 석양.
일상의 다양한 감정.
누군가와의 짧은 눈맞춤.
고요한 감정의 교감
나와 또는 타인과의 끊임없는 대화와
결론을 통한
여러 감정과 경험의 얽힘들
작은 순간이지만,
그 순간이 우리 인생을 가장 깊이 흔든다.
음악의 한 변주가 선율 전체를 바꾸듯,
작은 순간이 삶 전체를 물들인다.
그렇다면 무엇을 기준으로
가장 아름다운 순간을 말할 수 있을까.
길이가 아니다. 깊이다.
몇 초의 시간이 영혼을 울릴 수 있고,
몇 해의 세월이 공허할 수도 있다.
파사칼리아가 한 음형을 수십 번 반복해도 지루하지 않은 까닭은,
그 안에 매번 새로운 울림이 있기 때문이다.
삶 역시 그러하다.
충만한 순간이 곧 화양연화다.
니체가 말했던 ‘영원회귀’처럼..
반복되는 순간이 다시 와도 괴롭지 않고,
오히려 다시 살아도 좋다고 느낄 만큼 충만한 순간.
그것이 화양연화다.
현재가 영원으로 확장되는 순간이다
그리고 마침내 깨닫는다.
인생의 화양연화는 멀리 있지 않다는 것을.
드라마틱한 성취가 아니라,
지금의 호흡과 눈빛,
손끝의 따스함 속에 있다는 것을.
화려한 변주
단조로운 반복
모두 우리의 삶을 구성하는 음표다.
그 모든 순간을 음악처럼 느끼며 살아갈 때,
우리의 삶은
하나의 거대한 파사칼리아가 된다.
그리고 그 속에서 우리는 끊임없이 화양연화를 맞이한다.
지금도 언젠가 나에게 또다시 올
내가 꿈꾸는
화양연화를
기다린다.
잔잔히.
숨 쉬며 맞이할
그때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