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통과 아픔의 한계 끝에서
‘내 인생이 여기서 끝나는 건가?’라고
느꼈던 순간.
그동안 살아온 내 인생 전체가 파노라마처럼
떠올랐다.
유독 선명하게 내 머릿속을 지나가는 장면들이
있었다.
어릴 때 외할아버지 무릎에 혹은
외할머니 품에 쏙 안기며
사랑을 받았던 느낌,
겨울날 창밖에 펑펑 내리는 눈을 보며
이불 속에서 가족들이랑 귤 까먹었던 일상,
일요일 아침마다 엄마가 집에서 싸준 김밥을
먹으며 아빠랑 “엄마 김밥이 세상에서
제일 맛있어”라고 외치던 기억,
친구랑 뒷골목 카페에서 커피 스무디 먹으면서
신나게 웃고 수다 떨었던 시간.
의외로 평범하고 소박했던 경험들만 스쳐 갔다.
내가 그냥 좋아해서 했던 일들,
진심으로 사랑했던 사람들,
진짜 나로 존재했던 순간들,
마음속 깊은 곳에서부터 행복하다고
느꼈던 추억들.
이러한 내용들이 내 영혼과 가슴을
넉넉하게 채워주었음을 깨달았다.
이것이 인생에서 ‘진짜’이고 ‘영원’한 것임을 분명히 느꼈다.
다음은 스타 영어 강사 출신 문단열 님이
유튜브 영상에서 했던 말이다.
“저도 예전에는 사회가 말하는 성공 기준에
묶여 있었어요.
뭔가 세뇌당했다는 걸 깨닫기 시작했어요.
제가 죽을 고비를 2번 넘겼잖아요.
진짜로 그 대문 앞까지 가보면 지난 일들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가는데.
내가 어디 가서 1등을 했다든지,
돈을 한 달에 막 엄청 벌었다든지
이런 순간이 스치지 않아요.
결국은 저쪽으로 들고 갈 재산은
순수한 충족의 순간, 그것만 남더라고요. ”
책<다크호스>의 저자 토드 로즈와 오기 오가스는
시대 상황에 따라 성공 공식도 다르다고
강조했다.
20세기 초부터 제조업 경제 중심의 산업 시대가
정립되면서 표준화 시대가 되었다.
표준화 시대의 성공을 규정하는 공식도 명확했다.
특정 기관의 사다리를 밟고 올라가
부와 지위를 획득하는 것이 성공 기준이 되었다.
따라서 직장(노동), 학교(학습) 등 대다수 체계가
표준화와 효율성을 추구했다.
이런 시스템은 개인의 충족감을 우선으로
두지 않는다.
자기 행복을 뒤로 미루라고 강요한다.
남들과 똑같되 더 잘해야 한다고 부추긴다.
<다크호스>의 저자는 이젠 개인화 시대가
도래했다고 주장한다.
기존의 성공 표준 공식을 깨뜨리고
자신만의 방식으로 성공하는 사람들이
나타나고 있다.
이들을 다크호스라고 부른다.
다크호스의 공통점은 ‘충족감’을 느끼면서
산다는 점이다.
즉 세상과 타인이 요구하는 자아상이 아니라
자기 자신 있는 그대로의 자아상에 맞춰
판단하고 결정한다.
토드 로즈와 오기 오가스 저자는 책<다크호스>에서
“충족감의 추구는 최고의 인생을
살아갈 기회를 극대화한다.”라고 말했다.
내가 죽어서도 가져갈 수 있는 최고의 유산은
무엇일까?
돈, 건물, 금덩어리, 보석은
절대 가져가지 못한다.
사는 동안 사랑과 행복으로 가득 채워나갔던
내 영혼만큼은 영원히 가져갈 수 있다고
생각한다.
내가 인생의 마지막 종착역에 도착했을 때
편안한 미소를 지으려면 어떻게 살아야 할까?
주어진 삶의 여정을 즐기면서
최대한 즐겁게 살아왔다면,
내 마음을 평생에 걸쳐 갈고 닦아서
좀 더 나은 사람으로 변화했다면,
‘나’라는 존재가 이 삶을 살아옴으로써
누군가에게 기쁨을 주었다면 충분하다.
타인과 세상 속에 파묻혀 살다 보면
내가 무엇을 위해 살아가는지 놓치기 쉽다.
나만의 행복 기준을 어디에 둘 것인지,
유한한 삶의 시간을 무엇으로 채울 것인지,
인생에서 내가 진정 누리고 싶은 것은 무엇인지
스스로 결정해야 한다.
내가 살아가는 이유가 무엇이고
나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인지에 대해서
답하다 보면,남아 있는 내 삶의 하루하루가
좀 더 다르게 다가온다.
지난 토요일 저녁에 엄마랑 이모랑 셋이
재즈 공연을 보러 갔다.
시원한 바람이 부는 밤하늘.
작지만 근사한 공간.
신나는 노래와 매력적인 기타 연주.
내 옆에 사랑하는 가족의 존재.
시원한 맥주 두 잔과
맛있는 프랑크 소시지 샌드위치.
흥얼거리며 즐거워하는 앞뒤 테이블 사람들.
누군가의 웃음 소리와 박수 소리.
이 모든 것이 나의 행복감과 충족감을
순식간에 채워주었다.
숨 쉬고 있다고 해서 진정 살아있다고
말할 수 있을까?
살아 있어도 죽은 것처럼 살아가는 경우도 있다.
하늘과 구름을 잠시도 바라볼 수 없을 만큼
쉴 틈이 없다면,
꽃과 나비를 보고도 환한 미소를 지을 수 있는
감성이 사라졌다면,
저녁에 사랑하는 가족의 품속에서 행복을
누릴 기회를 외면한다면,
우리 내부는 점점 죽어가고 있는 것과
마찬가지다.
이것이 죽는다는 사실보다 더 서글픈 일이다.
우리는 지구에 잠깐 놀러 온 존재다.
삶을 부여받은 동안 내가 살아있다는 감각을
마구 느끼며 가능한 한 모든 것들을 경험해 보자.
생 안에는 사랑도 가득하고 아픔도 가득하지만,
이 모든 것들이 나를 충만하게 만든다.
이것이 우리가 이 생애에서 누려야 할 권리다.
인생의 끝에 서 있다고 느꼈을 때,
나 스스로에게 던졌던 하나의 질문이 있었다.
‘나는 그동안 살아오면서
내 주변 사람들에게 어떤 존재였나?’
언젠가 반드시 꼭 마주하게 될
이 질문 앞에서 나는 어떤 대답을 할까?
나를 영원히 기억해 주는 사람이
한 명이라도 있다면
나는 죽었어도 살아있는 것과 같다.
이때 내 생의 마지막 느낌은 충족감을
가득할 거라 확신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