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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으로 다 본다고 착각하는 이유는

by 박가을





인생에서 가장 깊이 사색했던 시기는
아파서 병원에 누워있을 때였다.

공부하고 일하느라 바쁘게 지냈던 시간보다
아무것도 할 수 없어 누워 있어야만 할 때가
본질적인 사유를 제일 많이 했던 기간이었다.

당시 내가 어떤 생각을 하고
무엇을 깨달았는지 이야기하자,
엄마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네가 아파서 아무 생각 없이
그냥 누워만 있는 줄 알았어.
그때 네가 그렇게 많은 걸 느끼고 생각하고
있었다니, 몰랐네.”

병원 침대 위에서 눈을 감고 있을 때
더 많이 보았고, 귀를 닫고 있을 때
더 많이 들었다.

정말 소중한 건 눈에 잘 보이지 않는다.
크게 깨달은 점이 하나 있다.

겉으로 봤을 때 몸이 아프거나 불편한 사람들이
어쩌면 나보다 더 많은 걸 보고, 듣고, 느끼고,
생각할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나는 상대의 한 면만 보고 전부를 판단하는
오만한 사람이었다.

보지 못하는 사람이 더 많은 걸
보고 있을 수도 있다.
듣지 못하는 사람이 더 많은 걸
듣고 있을 수도 있다.

지금 내 앞에 있는 상대는 나보다
훨씬 많은 세계를 마음속에 품고 있을지도.

헬렌 켈러는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것들은
보이거나 만져질 수 없다.
단지 가슴으로만 느낄 수 있다.”라고 말했다.

‘진정으로 보고, 듣고, 느낀다는 건
무엇일까?’에 대해 숙고했다.

내가 보고 듣고 느끼는 게 전부인 줄 알았는데,
전혀 아니었다.

과학자들은 ‘사물을 보는 것은
우리 눈이 아니라 뇌’라고 말한다.

인간은 빨강, 초록, 파랑 파장의 빛에
민감하다.
이 세 가지를 조합하여 다양한 색을 인식한다.

인간의 눈은 자외선을 보지 못한다.
인간의 귀는 초음파를 듣지 못한다.

눈으로 다 본다고 착각하는 이유는
뇌가 조합하고 추측해서 보이게끔
해주기 때문이다.

우리는 눈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뇌로 해석한 것을 보는 셈이다.

눈은 카메라 렌즈일 뿐이다.
사물을 인지하고 식별하고 판단하는 일은
눈이 아니라 뇌가 한다.

눈앞에 보이는 형상은 존재의 본모습이
아닐 수도 있다.

사람들은 보는 걸 믿는 게 아니라
믿고 있는 걸 본다.

자기 눈과 귀를 무조건 신뢰하지 않는다.

눈으로 보고 귀로 들었다고 해서
항상 100% 옳은 건 아니다.

중요한 점은 무엇을 보느냐보다
만물을 어떤 마음으로 어떻게 보았는가이다.

똑같은 하나의 대상도
보는 사람의 눈에 따라
아름답게 보이기도 하고
추하게 보이기도 한다.

우리는 모든 걸 보는 듯하지만,
사실 많은 걸 보지 못한 채 살아간다.

사는 동안 자신의 눈에 비친 게
전부라고 믿으며 사는 사람은
막다른 골목에서 시야가 좁아진 사람과 같다.

심장은 뛰고 있지만,
무언가 하나도 느끼지 못한 채
하루를 사는 일은 슬픈 일이다.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이야말로 영원하고,
눈에 보이는 것은 잠시 스쳐 가는
한때 아닐까?’라고 생각했다.

눈에 보이지 않는 것도 보려 할 때,
우리는 모든 존재의 근원과 한층 더 깊이

연결됨을 인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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