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 월간 신병섭 4월호 '별' 가사 이야기
누군가 내게 인생 드라마가 뭐냐고 묻는다면
나는 보통 두 작품을 이야기하곤 한다.
하나는 MBC에서 방영한 '네 멋대로 해라'이고
또 하나는 SBS에서 방영한 '해피 투게더' 이다.
두 편 모두 아마 내가 고등학교를 다닐 무렵에
방영 되었던 드라마인데
지금은 드라마의 자세한 내용이나 스토리가 다 기억 나지는 않지만 그 당시 저 두 드라마에 푹 빠져서
매 주 본방송을 챙겨보았고 또 방영이 끝난 후에도
재방송 시간을 기억해 두었다가 몇 번이고
다시 보았던 기억만큼은 생생하다.
그리고 작년에 본 이 드라마는 나의 인생 드라마
목록에 추가되기에 조금도 부족할 것이 없는
작품이었다. 바로 '나의 아저씨'라는 작품이다.
평소 드라마를 잘 챙겨보는 편은 아니어서
처음 '나의 아저씨'가 방영될 때에는
그런 드라마가 있는 줄도 몰랐었는데, 몇 년이 지나고 OTT 플랫폼에서 이 드라마가 다시 방영이 되었다.
늦은 밤 잠이 안와서 여기저기 TV 채널을 돌리던
어느 날 밤에, 이 드라마는 꼭 보라고 누군가
권해줬던 기억이 나서 큰 기대 없이 일단 1편만 보고 재미있으면 좀 더 보다가 자야지 했는데
그 날 밤을 새고, 쪽잠을 자고 일어나 눈 벌개진 채로 결국 다음 날 오후에 마지막 회까지 다 보고 말았다.
그 것도 혼자 방에서 꺼이꺼이 울면서 말이다.
그리고 이 드라마 속 한 장면이
'별' 이라는 노래를 만들게 된 계기가 되었다.
극 중에서 동훈(이선균)과 정희(오나라)가
정희네 술집에서 이야기를 하는 장면이 나온다.
동훈은 지안(이지은)이 자기에게 해주었던 이야기를 정희에게 말한다. 그 이야기는 지안이 말로 자기는
나이가 3만 살이라는 것이다. 수 없이 다시 태어난 시간을 다 합치면 3만년쯤이 되었을 거라는 이야기.
동훈은 정희에게 아마 지안이는 여기(지구)가 집이 아닌데, 여기가 집인 줄 착각하고 계속 여기에 태어나는 것 같다고 이야기를 한다. 그러면서 어떻게 하면 다시 태어나지 않고 진짜 집으로 돌아갈 수 있을까 라며 정희에게 질문을 건넨다.
그러자, 정희는 동훈에게 정말 그걸 모르냐면서
자기는 방법을 안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이 노래를 부르기 시작한다.
'미워하는 미워하는 미워하는 마음 없이
아낌 없이 아낌 없이 사랑을 주기만 할 때
백만송이 백만송이 백만송이 꽃은 피고
그립고 아름다운 내 별 나라로 갈 수 있다네'
심수봉 '백만송이 장미' 중.
늦은 밤, 영업을 마치고 자기의 가게를 나와
이 노래를 부르며 어두운 골목길을 걷다가
다시 자기의 가게이자 집으로 돌아가는 장면은
마치 3만년이 넘게 집을 찾지 못하고 계속 지구에
태어난다고 말하는 지안의 모습과 묘하게 닮아있다.
(tvn 드라마 '나의 아저씨' 중에서)
이 땅에서 아낌 없이 사랑을 주고 떠난 이들은
밤 하늘의 별이 된다는 '백만송이 장미'의 가사가
한 동안 계속 머리에 맴돌았다.
그러다 문득 밤 하늘에 떠 있는 희미하게 반짝이는
별을 보다 그런 생각이 들었다.
지금 이 순간에도 반짝이고 있는 저 작은 별들은
사실 이 땅에서 누군가에게 아무런 조건 없는 사랑을 베풀고 자기의 고향 별나라로 떠나간 사람들이
하늘에서도 계속해서 이 곳을 비춰주고 있는 건
아닐까라는. 그런 생각을 하다
사랑받기 위해 그리고 사랑하기 위해
분명 이 땅에 태어났을텐데,
이 땅에서 채 꽃을 피워 보지도 못하고 먼저 떠나간
이들이 떠올려보았다.
예상할 수 없던 사고, 누군가에 그릇된 행동에 의해, 또 누군가를 대신한 희생으로
그리고 자기 몸은 돌볼 여유 없이 누군가에게 자기가 가진 모든 사랑을 아낌 없이 쏟아 부은 후
결국 모든 힘이 다해서..
그렇게 세상을 떠나간 이들을
별이라는 상징에 담아서 노래로 기억하고 싶어졌다.
그렇게 마음을 먹고 있었던 그 때,
미얀마에서는 연일 미얀마 군부 독재 세력에 항거하는 미얀마 시민들의 뉴스가 보도되었다.
미얀마 군부 세력은, 민주주의를 외치는 시민들에게 총부리를 겨누고 무자비하게 총격을 가했고
많은 미얀마 시민들이 희생되었다.
사망자 중에는 19살의 한 소녀가 있었다.
치알 신이라는 이름의 이 소녀는 시위 현장에 나가기 전, 마치 죽음을 각오라도 한 듯 페이스북과 sns에
자신의 혈액형과, 연락처를 남겼다고 한다.
머리에 총탄을 맞고 숨진 이 소녀가 입고 있던 검정색 티셔츠에는 이런 문구가 써 있었다.
'Everything will be ok.(모든 게 잘될거야.)
(치알 신 생전 모습. 연합뉴스)
노래를 만들다 보면, 처음에 만들려고 했던 소재와
그 소재로 풀어내려 했던 이야기들이
점점 더 큰 의미를 담은 가사로 확장되어가는 경험을 할 때가 있는데 이 노래 또한 그랬던 것 같다.
'나의 아저씨' 속의 한 장면에서 정희가 부르던
심수봉 선생님의 노래 '백만송이 장미' 에서부터
마치 유언과도 같은 '모든 게 다 잘 될거야' 라는
문구가 담긴 티셔츠를 입은 채 희생된
미얀마의 19살 소녀 '치알 신' 에 이르기까지.
'별'이라는 소재에서 참 많은 이야기들을 접하고
많은 생각들을 했던 시간들 끝에
노래 가사를 완성했고,
그렇게 이 노래 '별'은
내가 처음 만든 'Requiem'(추모곡)이 되었다.
듣는 분들도, 이 노래를 들을 때
잠시라도, 먼저 떠나보낸 사랑하는 사람들을 떠올려 보았으면 좋겠다.
여기서 다 비추지 못한 빛을
별이 되어서까지 저 먼 곳에서
우릴 위해 다시 비춰주는
아낌 없이 사랑하고 떠난 이들을.
작사,작곡,편곡 : 신병섭
사랑을 아낌없이 주고
떠난 이들은 밤 하늘 별이 된다 했지
별이 된 그대
별이 된 그대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어둠 속에 밤 하늘 별은 길이 되지
별이 된 그대
오 별이 된 그대
우리들 맘에 미움이
그대를 컴컴한 어둠 속에 보냈지만
그대 간직한 설움이
우리에게 되려 밝은 빛이 되어주네
아주 작은 빛 한 줄기에
기대어 살아가는 우리 짧은 시간
별이 된 그대
별이 된 그대
영원히 펼쳐진 시간 속에
스스로 빛을 비추는 작은
별 별이 된 그대
오 별이 된 그대
그대는 별이 되어
어두운 길을 함께 걸으며 비춰주네
그대는 별이 되어
무거운 맘을 함께 나누며 비추네
언젠가 힘이 다해
그 밝은 빛 다 사그라들면
그 때 다시 내려와
여기 편히 잠드오
곡 링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