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 아빠는 얼마나 힘든 밤을 보내셨을까요. 저도 밤새 잠을 설쳤어요. 혹시라도 전화가 오지는 않을까 가슴 위에 전화기를 올려놓고 꾸벅꾸벅 쪽잠을 자며 그렇게 밤을 보냈습니다.
어느새 해가 떴더라고요. 시각을 확인해 보니 아침 6시 58분이었고, 핸드폰 잠금을 해제하고 습관처럼 SNS를 살피고 있었습니다. 갑자기 수신 화면이 떴고, 큰언니의 전화였어요. 가슴이 덜컹 내려앉았습니다.
마지막이 될지도 모르는 아빠와의 만남을 위해 준비를 서둘렀습니다. 처음에는 한시라도 빨리 뵙고 싶은 마음에 양치질만 하고 뛰어 나가야겠다 생각했어요. 그러다 마음을 고쳐먹었죠. 오랜만에 뵙는 아빠인데 후줄근한 모습을 보여드리고 싶지는 않았거든요.
준비를 마치고 택시를 잡으러 나갔는데, 세 번이나 승차거부를 당했습니다. 택시 정류장에 서 있던 택시들이야 근거리만왔다 갔다 하는 차량들이라 그랬다 쳐도, 유명한 택시 어플로 차량을 호출했는데 대뜸 전화가 와서는 갑자기 바퀴가 펑크 났다고 하는 건 무슨 심보인 걸까요.
다행히 연휴 첫날이라 고속도로는 한산했습니다. 평소 같으면 집에서 아빠가 계시는 병원까지 1시간 이상은 족히 걸렸을 텐데 오늘은 40분밖에 안 걸리더라고요. 명절이라서 다행이라 생각한 건 처음이었어요.
딸내미 중 가장 기동성도 떨어지고 멀리 살고 있는 저인지라 마음이 급해졌어요. 언니들은 병원에 먼저 도착했다는 연락이 왔고, 저만 도착하면 되겠구나 싶었어요. 병원과의 거리가 가까워질수록 심장이 두근거렸습니다.
그런데 참.. 아빠와의 만남이 쉽지가 않네요. 도착하고 나니 무슨 동의서가 필요하다고 합니다. 아빠 만날 생각에 설레는 마음으로 달려왔는데 서류고 절차고 나발이고 돌아오는 대답은 잠시만 기다려달라는 이야기뿐이네요. 그렇게 또 두어 시간을 기다렸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면회 시간이 주어졌어요. 죽일 놈의 코로나 덕분에 한꺼번에 면회는 불가능하다 하더군요. 거기다 면회 시간은 고작 10분. 알람 맞추듯 10분을 재는 것은 아니었지만 그동안 참고 기다려온 가족들의 마음에 비하면 보잘것없는 너무 짧은 시간이었어요. 그러나 별 수 있나요. 아빠를 뵈려면 고개를 숙일 수밖에요.
차마 먼저 올라갈 자신이 없어서 큰언니와 셋째 언니를 먼저 보내고 둘째 언니와 후발로 올라가기로 했어요. 먼저 면회를 마친 큰언니와 셋째 언니가 내려왔는데 저와 둘째 언니를 보자마자 눈물을 터트렸습니다. 저는 다시금 마음을 붙잡았어요.
아빠 앞에서는 울지 말자. 웃는 모습만 보이자. 그리고 고백하자.
병실 문 사이로 아빠의 모습이 보이기 시작했어요. 예상하지 못했던 건 아니지만 막상 두 눈으로 확인하고 나니 어찌나 마음이 아프던지요. 제일 안타까웠던 것은 아빠의 숨소리였어요. 거칠다 못해 쇳소리에 가까운 호흡을 힘겹게 들이쉬고 뱉어내고 계셨어요. 폐렴까지 재발한 바람에 고열까지 버텨내시느라 온몸은 땀으로 흥건했고, 군데군데 보이는 시퍼런 멍자국들은 그동안 아빠의 몸을 괴롭혔을 주사 바늘들을짐작케 했습니다.
아빠의 손을 잡아 보았습니다. 따뜻하고 포근했어요. 그리고 커다랬죠. 어린 시절 제가 잡았던 바로 그 손이었어요. 아빠와 눈을 마주쳤습니다. 말씀은 못하실 망정 눈빛은 한없이 부드러웠어요. 그 눈을 마음 깊이깊이 간직하고 싶어 오래도록 들여다보았습니다.
지난번 썼던 편지를 읽어드리지는 못했지만 마음 고백에는 성공했어요. 글로만 그치게 되는 건 아닐까 걱정했는데 제 마음속 용기를 끄집어내어 수줍게 말을 건넸습니다.
이 세상 그 누구보다 제가 제일 사랑하는 남자는 아빠예요. 내일 또 올게요. 사랑해요, 아빠.
내일 다시 오겠다고 하니 아빠가 그러라고 대답하셨잖아요. 다른 말씀은 몰라도 그 한 마디만큼은 정확하게 알아 들었어요. 참기 힘든 고통과 숨 쉴 수 없는 답답함에 사경을 헤매시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지만 전 아빠의 눈을 보고 알았어요. 아빠는 다 알고 계신다는 걸요. 그리고 저희를 마음 깊이 사랑하신다는 것도요.
집으로 돌아오니 아빠의 얼굴이 계속 떠올라요. 저를 바라보아 주시던 따스한 눈빛이 제 가슴속에오롯이 새겨진 것 같아요. 비록 짧은 시간이었지만 아빠를 뵐 수 있어서 행복했고 아빠가 저의 아빠라는 사실이 얼마나 감사했는지 몰라요.
문득 30년 전 급성 천식으로 숨이 넘어가는 어린 저를 안고 향하셨던 병원이 지금 아빠가 계신 병원이었다는 사실을 깨달았어요. 솔직히 말씀드리면 너무 어렸을 때라 잘 기억은 나지 않아요. 어리석게도 그동안 저는 병을 이겨낸 제 자신이 대단하지 않은가에 대해서만 생각했어요. 아이를 낳아보고 부모라는 입장이 되고 나서야 아빠의 마음을 헤아려 봅니다.
가쁜 숨을 몰아 쉬며 당장이라도 무슨 일이 생길 것만 같은 어린 딸을 보살피며 아빠는 어떤 생각을 하셨을까요. 겉으로는 담담하고 묵묵하셨지만 그 속마음은 얼마나 깊고 애잔하셨을까요.
아빠는 저를 사랑으로 지켜주셨는데 저는 아빠를 지켜드리지 못한 것 같아 마음이 아립니다. 아빠의 고통을 덜어드릴 수 있다면, 차라리 제가 대신 아플 수 있다면 좋겠다는 생각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