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저출산 문제가 심각해지고 있다. 역사 속에서 없던, 어떤 전쟁 중에도 없던 최저 기록을 경신하고 있다. 그로 인해 세계 모든 사회학자나 경제학자들이 한국이 이 저출산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지 관심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왜냐하면 모든 나라가 저출산으로 향해 가고 있다. 한국이 이 문제를 잘 해결하면 좋은 본보기로 삼을 것이고, 만약 실패한다면 반면교사로 삼아 다를 방도를 모색할 것이다.
산업화가 되기 전까지만 해도 가족수가 노동력이었고 자식이 많고 식구가 많을수록 뭐든 유리한 시대를 살았다. 하지만 우린 더 이상 그런 세상에 살고 있지 않다. 오히려 지금 세상에서 식구가 많다는 것은 여러모로 신경 쓸 일이 많고 돈이 많이 들어갈 뿐이다. 그러니 경쟁사회에 오히려 자식은 짐이 될 때가 많다.
한국의 저출산 문제로 생길 문제는 미래의 국가 존폐를 걱정해야 할 만큼 심각하다. 미래의 노동력이 사라지기 때문이다. 물론 AI가 인간의 노동력을 대부분 대체하겠지만 국민이 사라지는 국가가 과연 의미가 있을까 싶다. 대학교가 문을 닫을 것이고 그로 인해 도시가 점점 죽어가게 된다. 소아과나 유치원 등이 사라지고 학교와 대학교 앞에서 운영하던 크고 작은 가게들이 문을 닫고 일자리는 점점 더 없어지게 된다.
이렇게 국가 경제가 약해지면 국가는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다. 살기가 점점 더 힘들어질수록, 가족을 꾸리고 양육을 하는 것은 점점 더 불가능하게 된다. 악순환이 시작되는 것이다. 이 저출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여러 자치 단체에선 다둥이 가족을 지원하기도 하고 출산하는 가정에 경제적 혜택을 제공하기도 한다. 하지만 글쎄이다. 이미 저출산이 현명한 선택이고 합리적인 계산이 떨어지는 지금 이 세대에 한 달의 몇십만 원 쥐어준다고 결혼을 하고 양육을 할 어리석은 젊은이들이 있을까?
이건 계산기를 두드려보지 않아도 결혼과 육아에 들어가는 나의 에너지와 헌신을 개인의 커리어에 쏟아붓는다면 분명히 더 큰 성공과 부를 이룰 수 있는 것은 자명한 일이다. 박지성선수도 육아 대신 축구가 더 쉽다고 했고 자우림의 보컬 김윤아 씨도 육아가 가수활동보다 3배는 힘들다고 했다. 거기다 육아는 확실한 투자상품도 아니다. 그렇게 내 몸을 갈아 고생해서 키운다고 아이가 성공한다는 보장은 없다. 앞으로는 더더욱.
육아는 아이를 낳기 전에 아무리 최악을 상상해도 그것보다 훨씬 더 어렵고 복잡하다. 개인의 감정적 신체적 에너지가 어마어마하게 소모되지만 물질적 보상이나 자격증 같은 건 없다. 육아를 함으로 오히려 경력은 단절되고 눈치 보는 휴직을 해야 하고, 혼자서 잘 나가는 동기들을 무력하게 바라보는 비참함도 견뎌야 한다. 앞으로의 결혼이나 육아는 이런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가정이나 자녀에 대한 가치와 소망을 가진 용감한 청년들이나 도전할 수 있는 영역이 될 것이라 본다.
그러면 저출산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까?
선진국의 여러 나라들의 젊은이들을 대상으로 자신의 삶에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많은 나라들이 '아직은' 가족과 사랑하는 사람 혹은 자신의 꿈등을 말했다. 하지만 한국은 가장 중요한 것을 돈을 꼽았다. 한국 젊은이들이 돈만 밝히는 속물이라서 그렇게 대답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들은 돈이 있어야 가족들과 행복하게 지낼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아니 그렇게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었다. 돈이 있어야 자신의 꿈도 실현할 수 있고 행복도 누릴 수 있다고 가르치는 문화에서 살았다. 그건 안타깝게도 우리 사회가 지속적으로 그들에게 그런 메시지를 주고 강요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행복한 삶 = 성공= 돈이라는 이 공식이 깨어지지 않는 한 저출산 문제는 절대로 해결되지 않을 것이라 믿는다. 이 공식이 모두에게 정답이라 믿기 때문에 사람들이 돈을 잘 버는 안정적 직장을 가지기 위해 좋은 대학을 나와야 한다고 믿는다. 너도 나도 모두 학구열을 올리고 자녀들을 서울로 보내려고 한다. 그렇게 아이들을 지원하려고 하면 부모는 더 열심히 더 많은 시간 일해야 한다. 아이들은 오히려 방치되기 쉽고 부모의 헌신에 죄책감을 느낄 수밖에 없다.
거기다 아이들은 부모를 보면서 결혼과 육아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을 느끼게 된다. 지금의 많은 청년들은 결혼과 육아를 피하는 이유는 가정을 꾸리고 아이들을 키울 만큼 큰돈을 마련할 엄두가 나지 않아서일 수도 있다. 아이들도 부모도 죽도록 고생한다고 해서 아이의 미래가 보장되거나 내 삶이 보장되는 것도 아니다. 그럴 바에는 아예 결혼이나 출산을 포기하고 지금 현재의 삶을 즐기는 쪽을 당연히 선택하게 되는 악순환이 일어나는 것이 아닐까 싶다.
개인적으론 개인과 사회의 가치관 전환이 일어나지 않는 이상 저출산 문제는 해결하기 힘들 것이라고 믿는다. 이 가치의 전환은 개인생각과 사회의 구조가 함께 달라져야 가능하다. 생명에 대한 소중함, 가정과 육아에 대한 가치가 회복되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선 어쩌면 한국의 자랑이라 여겼던 '빨리빨리 문화'가 사라져야 할 것이다.
한국이 놀라운 급성장을 이루고 세계적으로 지금의 수준에 오를 수 있었던 데에는 "빨리빨리 문화"가 한몫을 했다고 믿는다. 성실하고 부지런한 한국사람들은 세계 어떤 나라사람들 보다 더 많은 일했고 모든 일을 빨리빨리 처리했다. 주말도 없이 야근은 당연하게 여기며 일했다. 그때는 아빠가 회사에서 야근하고 출장을 가도 엄마가 가정을 지키는 구조였기에 가능했다. 하지만 이런 시스템으론 더 이상 가정을 유지하기 어려운 시대가 되었다.
미국에서 생활하면서 느낀 것 중에 하나는 자신의 가족을 위해 쓰는 시간에 눈치를 보지 않는다는 것이다. 좀 더 정확히 말하면 자신이 누릴 수 있는 회사의 혜택, 즉 정시 퇴근, 휴가나 월차, 반차등을 쓰면서 구구절절한 변명을 늘어놓지 않아도 된다. 각자의 사생활은 철저하게 보호되었고 존중받았다. 이것이 무척 개인주의적인 성향의 문화를 가지고 있는 미국이라 하지만 오히려 여전히 가족중심적인 문화를 만들어 가고 있는 힘이라 생각한다.
하지만 그 덕분에 모든 일은 느리고 오래 걸린다. 전화를 하면 늘 일하는 사람은 출장 중이거나 휴가 중이다. 한국처럼 일이 한 번에 되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누군가 그 빈자리를 채워주지 않는다면 담당자가 올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 이런 이유로 관공서나 그 외 대부분의 사무 업무들이 한국에 비해 무척 느릴 수밖에 없다. 하지만 대부분 그것은 자연스럽게 받아들인다. 왜 그런지 다들 알기 때문이다.
두 번째는 돈이 없어도, 인서울 대학을 나오지 않아도, 지방이나 소도시에 살아도 남들과 비교하지 않고 그럭저럭 삶을 유지할 수 있는 사회적 제도가 필요하다. 그러기 위해서 지금 나타나고 있는 지방 소도시의 쇠퇴를 막을 방법을 찾는 것이 필수라고 본다. 직장도 더 많이 창출되고 문화나 복지면에서 그래도 살만한 도시고 만드는 것이 필요하지 않을까 싶다. 학교도 병원도 점점 사라지는 동네에 가서 정착할 젊은이가 누가 있겠는가?
더 나아가 개인이 진짜 생각하는 성공이 무엇인지에 대한 정의가 필요하다. 남들만큼 사는 삶이 행복이라고 여기는 마음으론 타인과 비교에서 절대로 자유로울 수 없다. 나아가 남들과 조금 남들과 다른 선택을 했지만 나름 잘 살고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더 많이 알려져야 한다고 믿는다. 우리의 인생이 일등만 행복할 것 같은 마라톤 선수들이 아니라 각자 가보고 싶은 곳을 찾아가는 여행자임을 알려주는 것이다.
외모가 실력이고
남들이 가진 명품 하나쯤은 있어야 하고
명문대, 적어도 인서울을 나와야 하고
안정된 전문직을 가져야 하고
서울에 집이라도 한 칸 있어야 하고
일 년에 한 번 해외여행도 가야 하고
아이들은 적어도 영어 유치원을 보내야 성공이고 행복한 삶이라 믿는다면 돈은 여전히 가장 중요한 가치라는 것이다.
개인이나 사회가 기존의 이런 신념과 가치관이 바뀌지 않는다면 앞으로도 저출산 문제는 절대로 쉽게 해결될 수 없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