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리상담가의 시점
AI가 현재 큰 화두이다. 인공지능이 미래의 대부분의 직업을 대체하고 심지어 연인이 되기도 하고 배우자까지 될 수 있다고 말하기도 한다. 벌써부터 사람과 소통하는 것보다 AI 하고만 대화하려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내가 아는 미국의 정신과 의사는 벌써부터 인간관계는 너무 힘들어서 집에서 AI와 대화하는 것이 더 좋다는 젊은인들이 상담실에 종종 나타나고 있다고 했다. 그녀는 아직 인공지능이 그렇게 상용화가 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벌써부터 나타나는 이런 현상들이 심히 걱정스럽다고 말했다.
AI와 관계를 맺고 대화하는 것이 무엇이 문제일까? 언뜻 보기엔 큰 문제가 없을 수 있다. 일단 개인의 외로움을 달래고 대화할 상대가 있는 것만으로도 정신건강에 좋은 것이 아닐까 생각할 수도 있다. 때때로 무료하거나 심심할 때 인공지능을 그런 용도로 사용할 수는 있다. 하지만 장기적으로 본다면 그리 긍정적이지 못하다는 것이 개인적인 생각이다.
AI는 우리와 동등한 존재가 아니다. 그는 인간을 도와주기 위해 만들어진 존재이다. 우리보다 능력이 훨씬 뛰어난 비서에 가깝다. 아무리 똑똑한 비서라도 비서는 사장이 원하는 것을 만족시키기 위해 일하는 존재이지 사장이 더 좋은 사장이 되거나 더 좋은 인격을 갖추는 데는 관심이 없다. 마치 왕에게 신하가 있을 때 충신이 있고 간신이 있는 것 처럼. 충신은 왕이 더 훌륭한 왕이 되기 위해 듣기 싫은 소리도 하고 바른말도 한다. 하지만 간신은 그런 것에는 관심이 없다. 왕이 원하는 것만 해주는 것으로 충분하다. AI는 안타깝게도 간신에 가깝다. 아무리 방대한 지식과 무한한 능력이 있어도 그는 나를 성장하고 성숙하게 하는 것보다 나를 즐겁게 하고 만족시키는 것에만 초점을 맞출 뿐이다.
이렇게 내 귀에 듣기 좋은 소리만 하고 내가 원하는 것을 알아서 해주는 존재가 과연 나에게 정말 득이 될까?를 생각해 보아야 한다. 인공지능과 자살에 대한 깊은 대화 하다가 결국은 자살한 아이의 이야기에서도 궁극적으로 "네가 정말 원하면 그렇게 하십시오"라는 결론이 나왔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로 AI를 정신과적 상담용으로 상용하지 못하게 하는 법이 미국에서 발의가 되기도 했다.
여기서 좀 더 나아가 인공지능을 통해선 진정한 소통을 배울 수 없다. 사람과의 대화는 생각보다 많은 정서지능을 요구한다. 그 정서지능에는 상대방에 대한 관심, 배려, 예의, 공감, 타인의 표정이나 바디 랭귀지를 읽는 능력 그리고 표현능력등의 복잡한 정서능력들이 동시에 요구되는 고도의 기술이다. 하지만 내가 어떤 말을 하고 어떤 태도를 보여도 늘 한결같이 따뜻하고 다정한 태도로 대답하는 AI를 통해선 이런 것들을 배우지 못한다. 가끔 아이들이 AI를 사용할 때 보여주는 무례한 말투나 명령조의 말에서 크게 불편함을 느낄 때가 많다. 저런 식으로 말하는 것이 습관이 된다면 당연히 인간관계에서 누구랑도 좋은 관계를 유지하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특별히 어렸을 때부터 인공지능과 대화하는 것에 습관이 든다면 점점 사람과 대화하고 소통하는 것은 더 어려워질 수밖에 없다. 대화의 기술을 배우지도 못하고 진정한 소통의 기회를 잃어버리게 된다면 스스로 고립될 수밖에 없다.
궁극적으로 누군가 마음을 나누고 시간을 나누고 공간을 나누는 행위자체는 무척 비합리적이고 힘든 일이다. 누군가와 연인이 되고 결혼을 한다는 것은 타인의 다름을 받아들이고 존중하는 과정이 필수이다. 그 과정에서 다툼이나 갈등은 필연적이다. 에너지 소모가 어마어마한 과정이고 경험으로만 배울 수 있는 것들이다. 그러다 보면 이런 경험이 적은 세대들은 연인을 만드는 것도 더 나아가 결혼을 해서 가정을 꾸리는 일도 사라지게 될 확률이 높다. 궁극적으로 사랑하는 행위가 사라지게 되고 인류가 사라지는 지경에 이르게 되지 않을까 싶다.
마지막으로 AI는 결정하지도 책임지지도 않는다. 아무리 AI가 똑똑해도 그는 우리의 삶을 책임져주지 못한다. 인간의 삶을 좌우하는 관계의 힘은 서로를 책임져줄 때 생긴다. 부모가 위대한 것은 아이들의 미성숙함과 부족함을 끝까지 품고 책임지는 데에 있다. 그럴 때 부모도 성장하고 아이도 자란다. 그것이 사랑이라 믿는다. 친구나 부부관계도 마찬가지이다. 내가 실패하고 넘어져도 나를 책임지고 붙들어주는 누군가가 있을 때 우리는 다시 일어나게 된다. 그것이 사람이 가진 위대한 힘이다. 하지만 인공지능은 아무것도 책임지지 않는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인공지능이 우리의 삶을 편하게 해주는 것은 사실이다. 몰랐던 지식도 1초 만에 알려주고 어려운 프로젝트도 뚝딱 만들어 주고 심심할 때 나를 즐겁게 해주기도 한다. 하지만 이런 관계는 절대로 나를 성장시키거나 성숙하게 하지 않는다. 관계에 있어서 성숙한 관계는 나를 무조건 칭찬하고 위로하고 즐겁게 해주는 사이가 아니다. 나와 다른 상대방의 입장에서 서보려는 노력, 나와 다른 성향의 그/그녀를 존중하려는 배려, 아무리 화가 나도 무례하지 않게 표현하려는 노력,사랑하는 그/그녀를 위해 내가 손해를 감수하는 희생, 이런 것들이 관계를 단단하게 하고 성숙하게 만든다. 그리고 이런 성숙한 관계가 궁극적으로 힘든 인생실에서 함께 걸어갈 동반자가 되기도 하고 기댈 수 있는 버팀목이 된다. 그것이 진정한 친구라고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