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삶에도 다양한 에지(Edge)가 필요해
그림을 그릴 때 가장 처음은 보통 사물의 크기와 형태, 비율을 잡는 법을 배운다. 그리고 나면 빛이 어떻게 사물에게 비추어서 명암을 만드는지 배웠다. 그리곤 색깔을 입히고 구도와 색감을 잡는 법을 배운다. 그다음에 가장 마지막에 배우는 것이 에지(Edge), 즉 경계를 처리하는 방법이다. 처음에 그림을 그릴 때 대부분 경계를 또렷하고 분명하게 그린다. 하지만 그렇게 분명한 에지는 만화나 일러스트 같은 느낌을 준다. 3-D느낌이 나면서 종이에서 사물이 튀어나와 보이도록 그리기 위해선 어떤 부분은 분명하게 또 어떤 부분은 흐리게 심지어 어떤 부분은 아예 경계를 뭉게 버리기도 한다. 이 에지를 어떻게 처리하고 표현하느냐에 따라 그림이 살아있는 것처럼 보이기도 하고 딱딱하게 경직되어 보이기도 한다. 때문에 과거 전통 클래식 화가들 중 대가라고 불리는 램프란트나 요하네스 베르메르 같은 사람의 그림을 자세히 보면 이 에지처리의 다양함을 볼 수 있다.
각각의 색을 구분하고 형태를 결정짓는 이 에지(edge)의 느낌에 따라 그림은 천자만별로 달라진다. 추상화에선 많이 보이듯 아예 분명한 경계가 없어서 무엇을 나타내는지 형체를 알 수 없는 그림이 되기도 하고 반대로 여전히 아주 분명하고 확실한 경계로 형태나 색깔을 표현하는 그림을 그린다. 경계가 없는 표현은 마치 이 색깔과 저 색깔이 여기저기로 움직이는 듯한 역동성이 표현되지만 때로는 혼란스럽고 정신없는 느낌은 준다. 대표적인 드립핑(dripping) 표현으로 유명한 잭슨 폴록이다. 반대로 경계가 너무 분명한 그림은 확실하고 분명한 주제를 표현하지만 경직되고 답답한 느낌을 줄 때도 있다. 대표적인 그림으로 빨강, 파랑, 노랑등의 원색에 검은색의 선으로 분명한 선을 만든 몬드리안의 그림이다. 이렇듯 에지에 따라서 그림의 느낌은 바뀐다.
우리의 인생에서도 에지(Edge)가 있다. 인생에서의 에지는 관계사이에서의 심리적 바운더리이다. 이 에지가 견고하지 못한 사람들은 자신의 삶을 타인에게 침해받기 십상이다. 타인의 지시나 부탁에 이리 휩쓸리고 저리 휩쓸린다. 정작 자신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때문에 주체적으로 사는 삶이 어렵기만 하다. 심리적 바운더리를 세우지 못했기 때문이다. 반대로 이 심리적 바운더리가 너무가 경고한 사람들이 있다. 타인과의 교류를 거부하고 자신이 익숙하고 편안한 성안에서만 머무르고 싶어 한다. 새로운 도전이나 모험은 피하고 늘 안정만 추구하기에 삶이 단조롭고 경직되기 십상이다.
이 심리적 바운더리가 삶의 질을 결정한다. 우린 혼자서는 생존할 수 없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나와 중요한 관계를 맺는 사람과의 질에 따라 삶은 그럭저럭 살만하다 느끼기도 하고 모든 것을 가진 것 같아도 비참하다 느끼기도 한다.
하지만 바운더리를 만들어 가는 과정은 절대로 쉽지는 않다. 일단은 모든 사람과 동일한 수준의 관계를 맺으며 세우고 살 수는 없다. 내가 만나는 모든 사람과 동일한 친절과 애정을 베푸는 것은 나의 에너지를 소진하게 되기 십상이다. 그렇게 된다면 주도적인 삶을 살 수도 없고 개인의 주체성을 가지기도 힘들다. 인생엔 분명 우선순위가 있다. 그 우선순위를 번번이 놓친다면 후에 땅을 치고 후회하는 일이 분명 생긴다. 그렇다고 모든 사람에게 철벽을 치고 산다면 고립되기 십상이고 나아가 개인의 성장과 발전도 일어나지 않는다. 중요한 것은 내가 누구와 느슨하게 연결될 것인지 또 누구과 확실한 경계를 만들고 살 것인지 분별하고 선택하는 삶이다.
그러나 이런 분별과 선택이 쉽지가 않다. 어떤 관계는 원치 않아도 태어나면서 결정된다. 부모나 자녀, 형제와 같은 관계는 운명처럼 주어지는 것이다. 아무리 내가 마음에 들지 않아도 어쩔 수 없이 얼굴을 보고 살아야 하는 관계들이다. 거기다 내가 아무리 좋아하고 관계를 맺고 싶어도 상대가 나를 싫어할 수도 있다. 타인이 원하지 않는 관계를 억지로 붙잡으려고 하는 것은 집착이고 심하게는 범죄가 되기도 한다. 때로는 이사, 이민 등으로 어쩔 수 없이 헤어지기도 하고 자녀가 성장하고 독립하면 부모의 역할도 달라진다. 이런 여러 가지 복합적인 이유가 얽혀있기에 인간관계가 어려운 것이다. 때문에 전문가의 도움이 필요하기도 하다.
일단 관계에서의 핵심은 누가 뭐라 해도 내가 제일 중요하다. 내가 건강하게 성장하고 성숙하게 나아가는데 방해가 되는 관계라면 아무리 가족이고 친구라 해도 거리를 두는 것이 필요하다. (나를 좋아하는 사람도 혹은 내가 좋아하는 사람도 나를 병들게 할 수 있다. 따라서 성장과 성숙에 대한 개인의 가치관을 돌아보는 것이 먼저이다.) 나를 잃으면서까지 지켜야 할 관계는 없다. 때로는 포기도 필요하다. 마음이 떠난 연인이나 나를 배신하는 친구나 지인 등은 과감히 포기해야 한다. 그들을 붙잡기 위해 노력하는 정성과 에너지는 나를 소중하게 생각해 주고 아껴주는 사람에게 쓰는 것이 맞다.
마지막으로 관계는 영원불변하지 않다. 한때는 절친이었다가 세월이 흐르면 아는 지인정도로 바뀌기도 하고 살을 비비며 살던 배우자도 남이 되기도 한다. 직장에서 매일 만나던 사이도 직장을 떠나면 끝난다. 반대로 동네에서 알던 지인이 둘도 없는 친구가 될 수도 있다. 부모자녀사이도 일거수일투족을 챙겨주던 보호자에서 아이가 성인이 되면 일 년에 한두 번 얼굴 보는 것으로 만족해야 하는 관계가 되기도 한다. 때로는 잘 가꾸고 때로는 잘 놓아주는 기술이 필요한 것이다.
이런 이유로 인간관계는 평생 배우는 것인지도 모른다. 원치 않는 대상과 적절한 거리를 두는 법, 나를 함부로 하는 사람에게 '안돼'라고 말하는 것, 떠나가는 인연에 목매지 않는 것, 어쩔 수 없는 헤어짐은 받아들이는 법, 달라지고 변하는 관계를 인정하는 것, 당연하다고 느끼지만 나에게 소중한 사람을 소중하게 대하는 법을 익히는 것은 절대로 쉬운 일이 아니다. 그렇기에 인간관계는 나만 어려운 것이 아니라 모두에게 어렵다. 어렵다는 것을 인정한다면 여러 가지 좌절이나 실패, 서운함 등에서 좀 자유로울 수 있으리라 믿는다. 그리고 포기하지 않고 묵묵히 연습하고 훈련한다면 언젠가는 나만의 스타일로 만들어진 관계가 완성되리라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