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백육십육
그림자
김인자
부동으로 사는 것이
나무로 알고 있다면
그건 나무를 모른다는 말
나무가 얼마나 긴 팔과 다리를 가졌는지
얼마나 잘 눕고 일어나 멀리 걷고 달리는지
이른 아침이나 늦은 오후 숲을 걷다 보면
건너 계곡까지 제 그림자를 밀려 끌며
신출귀몰 축지법을 쓰는 나무는
부동의 명사가 아니라
형용사도 되고 동사도 된다
태어난 자리가 죽음의 자리인 건 맞지만
오전에는 저 나무가 이리로 건너오고
오후엔 이 나무가 저리로 건너가며
계절을 따라 자리를 바꿔 돌다가
산이 텅 비는 밤이 되어서야
제자리로 돌아와 신발을 벗고
몸을 누인다는 걸 아는 자는
그 산에 깃들어 사는 새들과
나무 그림자와 새끼 다람쥐뿐
부동의 나무를 살아 움직이게 하는 김인자 시인의 시입니다.
나무의 하루가 얼마나 긴지, 얼마나 멀리 가는지 상상해본 적이 없습니다. 가만히 있는 나무를 움직이는 것은, 나무 그림자를 보는 시인의 시선입니다.
아, 저 나무 그림자가
저기도 가고 이리도 오고
그 그림자를 살피는 시인의 손끝에서 나무가 움직입니다. 시인이 부동의 나무를 움직이는 동안, 저는 어떤 시를 써서 무엇을 움직일지 생각해보는 하루를 엽니다.
설애가 당신의 행복을 바라며 시 한 잔 나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