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비의 프레이밍 16
키움 히어로즈라는 야구단에 대한 평가는 양극단으로 갈린다. KBO리그에서 유일하게 오너 기업이 없이 자생하고 있는 선진적인 야구팀이라는 긍정적인 평가가 있는 반면, 반대로 그 자생력이라는 게 결국 다른 기업들이 본격적으로 광고시장에 뛰어들지 않은 상태이기에 가능한 것 아니냐는 비아냥도 듣는다. 메이저리그 포스팅에 주기적으로 성공하는 선수를 육성하기에 그야말로 '기회의 땅'이라는 평가가 나오는 이면에는, 그렇게 선수 판 돈이 지금 다 어디로 사라져버린 건지 알 수가 없다는 의심의 눈초리도 쏟아진다.
키움히어로즈는 자신들을 향한 차가운 시선을 2022년까지는 예상 외의 높은 성적으로 반박해왔다. 시즌 전에는 하위 팀 평가를 받더라도 꾸준히 포스트시즌에 진출하고 간간히 우승까지 도전하기도 했다. 그러나 2023, 2024시즌 연속 최하위를 기록하며 조금씩 투자 없는 육성의 한계를 드러내고 있다. 아직까지는 변명의 여지가 있다. 2024시즌만 해도 키움은 승률 4할대를 유지하는, 리그 전체 입장에서는 '괜찮은 꼴찌'였다. 하지만 이번 스토브리그에서도 키움은 그들의 운영 방식을 바꾸지 않았다. 정말 이래도 괜찮을까?
키움히어로즈는 2024시즌 팀의 원투펀치를 담당해왔던 선발투수인 후라도, 헤이수스 두 선수와 모두 계약을 하지 않았다. 심지어 보류권마저 묶지 않으며 후라도는 삼성라이온즈로, 헤이수스는 KT위즈로 각각 떠나버렸다.
2024시즌 리뷰에서도 언급했던 것처럼 이 두 선수가 선발로 등판하는 날의 키움히어로즈와 아닌 날의 키움히어로즈는 아예 다른 팀이었다. 키움히어로즈가 4할 승률을 기록할 수 있었던 가장 큰 원동력이 사라져버린 셈이다.
이 상황에서 키움히어로즈는 여타 KBO구단이 외국인선수를 「투수2: 타자1」로 구성하는 걸 뒤집어 「투수1:타자2」로 영입하기로 결정했다. 이 방안은 국내선발투수 자원이 많은 한화이글스 팬을 중심으로 고민이 아예 없었던 내용은 아니었지만, 실상 키움히어로즈는 한화이글스와는 달리 국내선발투수 자원이 거의 없는 상태에서 나온 결정이라 충격이라고 할 수 밖에 없었다.
게다가 영입된 선수가 예전에 키움히어로즈에서 뛰다가 법적인 문제로 재계약이 불발되었던 푸이그, 삼성라이온즈에서 부상관련 이슈로 퇴출되었던 카디네스라는 점도 이야깃거리가 되었다.
키움히어로즈에서 붙박이 주전 2루수를 맡고 있던 김혜성이 LA다저스와 2+2년 총액 2,200만 달러에 계약하여 메이저리그에 진출했다. 2023시즌이 끝나고 이정후를 샌프란시스코자이언츠로 보낸지 단 1년만에 다시 주전 선수가 떠난 것이다.
메이저리그 포스팅이 가능할만큼 유능한 선수가 팀에 있었다는 건 좋은 일이고, 그런 선수가 연이어 나온다는 것은 신인 선수들에게도 좋은 자극이 될 수 있는 일이지만, 팀의 구심점이 연속으로 빠져나간다는 건 전력적인 측면에서는 분명 마이너스일 수 밖에 없다. 문제는 이 전력의 마이너스를 외부 영입을 통해서도 메꿀 수 있을텐데, 키움히어로즈는 이번 스토브리그 FA에서도 외부에는 전혀 눈길을 주지 않았다.
키움히어로즈는 KIA타이거즈에게서 2026 신인 1라운드, 4라운드 지명권과 현금 10억원을 받는 대신 팀의 마무리까지 했었던 조상우를 보내기로 합의했다. 조상우는 2025시즌을 마치고 FA가 되기에 키움히어로즈는 이미 2024시즌부터 조상우를 트레이드시장에 공공연하게 매물로 내놓은 상태였다. 2024시즌 중반 마무리 정해영이 부상으로 이탈했을 때 KIA타이거즈는 진지하게 조상우 영입을 검토했으나, 그 당시에도 키움히어로즈 측에서 신인지명권 1라운드를 요구해 트레이드는 무산된 바 있었다.
그러나 이번 스토브리그에서 LG트윈스에게 불펜 마당쇠였던 장현식을 빼앗긴 KIA타이거즈는 신인 1라운드 지명권이라 해도 전체 10번인 점을 감안하여 트레이드에 적극적으로 임했고, 결국 조상우를 영입하는 데 성공했다.
키움히어로즈는 이미 2025년 신인드래프트에서도 3라운드 안에서 6장의 지명권을 행사한 바 있다. 2025년 드래프트만 해도 최고구속 150km/h를 넘는 선수가 즐비하게 등장하며 지명권의 가치가 올라갔기에 키움히어로즈의 이런 지명권 수집이 잭팟을 터뜨릴 가능성은 분명 그 어느 시절보다 높다고도 할 수 있다. 키움히어로즈는 신인에게 기회만큼은 어느 팀보다 많이 부여한다. 그러나 타 팀에 비해 본보기가 되고 노하우를 전수해줄만한 베테랑 선수가 많지 않다. 이게 과연 신인 육성에 도움이 되는 환경인지는 의문이다.
2024시즌을 기준으로 한 팀이 일 년간 소화해내야 하는 이닝은 대략 1,280이닝 정도다. 타고투저시즌이었던 점을 감안하면 소화이닝에 비해 투구수와 동원된 투수가 다른 시즌에 비하여 늘어났을 가능성이 높다. 즉, 이닝 소화력의 가치가 더 높았던 시즌이라 봐야 한다. 공인구의 반발계수를 줄인다면 조금 완화될 가능성이 있다고는 하지만 ABS나 피치클락 등 여러 변수들은 여전히 타고투저의 가능성을 유지하고 있으므로, 개인적으로 2025시즌에도 이닝소화력이 투수를 평가하는데 있어 중요한 평가기준이 되어야 할 것으로 본다.
앞서 말했듯 키움히어로즈는 1, 2선발이었던 후라도와 헤이수스를 내보냈다. 2024시즌 키움히어로즈 리뷰에서 보여드렸던 자료를 다시 가져와보자.
두 선수가 소화한 이닝을 합치면 무려 361.2이닝이다. 키움히어로즈 전체 선발진이 소화한 이닝의 약 47.8%, 키움히어로즈가 2024시즌 진행했던 전체 이닝 대비하면 약 28.4%를 이 두 선수가 소화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키움히어로즈가 이 두 선수와 재계약을 하지 않은 합리적인 이유를 찾을 수가 없다. 로젠버그가 23시즌 NC다이노스의 에릭 페디 급의 활약을 보이지 않는 이상, 아니, 그가 그런 활약을 펼쳤다고 가정해도 둘 중 하나를 잡아서 외국인투수 원투펀치를 구성했어야 맞다.
키움히어로즈가 2024시즌과 비슷한 수준의 투수 운용을 하기 위해서는 몇가지 가정이 현실로 이뤄져야 한다.
① 로젠버그가 후라도와 비슷한 수준의 이닝을 소화해줄 것.
② 하영민이 2024시즌만큼의 활약을 이어나갈 것.
③ 김윤하가 120이닝 이상을 던질 것.
④ 정현우가 신인왕을 수상할 것. (그렇다면 선발로테이션을 돌며 110이닝 정도를 소화했을 거라 예상할 수 있다.)
위 네 가지 가정이 이뤄졌다고 상상해보면 아마 로젠버그 190이닝, 하영민 150이닝, 김윤하 120이닝, 정현우 110-120이닝 정도를 소화했을 것이다. 이 넷을 합쳐도 아직 2024시즌 대비해서 선발진이 소화해야 할 이닝이 170이닝 정도 남는다. 좋다. 신인이나 중고참들을 모두 동원해서 남은 170이닝을 메웠다고 치자. 그래야 겨우 2024시즌과 비슷한 수준이 된다.
그나마 구원투수진에서 조상우의 이탈은 이닝 자체로만 보면 그리 큰 부담은 되지 않는다. 문제는 2024시즌에는 후라도와 헤이수스가 구원쪽으로 떠넘기지 않았던 이닝들이 와르르 쏟아지면서 구원쪽으로 몰려드는 것이다. 댐이 무너지는 것과 비슷한 상황이다. 이렇게 되면 솔직히 조상우가 남아있다 한들 이건 혼자서 막아낼 수 있는 크기의 파도가 아니다. 최악의 경우 키움히어로즈는 이길 방도가 아예 보이지 않는 수준이 될 것이다.
2024시즌을 타고투저였다고 말을 하지만, 종합순위가 공격력순위와 일치했는지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개인적으로 2024시즌 공격력만을 놓고 보면 2위권를 롯데, 5위권를 NC라고 생각하는데 두 팀 다 포스트시즌 진출에 실패했다. 아무리 타고투저라고 해도 투수진에서 기본선이 무너지면 경기를 수행해낼 수가 없다는 건 야구에서는 일종의 우주적 진리 같은 것이다.
2024시즌 키움히어로즈의 타선을 생각해보면 이주형-김혜성-도슨-송성문 까지는 좋았지만 그 다음이 늘 아쉬웠다. 그리고 자세히 들여다보면 이주형도 잦은 부상으로 생각만큼 잘해주진 못했다. 이름값 있는 자원들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었다. 이원석, 임병욱, 이형종 같은 베테랑들이 있었지만 팀에는 전혀 도움이 되지 못했다.
2025 신인드래프트에서 키움히어로즈는 집착에 가까울 정도로 야수 중에서도 유격수 자원을 끌어모았다. "유격수를 할 수 있는 야수는 다른 포지션은 다 할 수 있다."는 말이 있는데, 아무래도 휘문고 유격수였던 이정후의 대성공이 키움히어로즈에게는 좋은 기억으로 남아있는 듯 싶다. 그 자체는 크게 문제가 되지 않는다. 좋은 방향의 선수선발일 수 있다. 안그래도 점점 현대야구는 데일리 플레이어인 야수의 중요성이 커져만 간다. 대신 신인선수들에게는 언제나 시간이 필요한데, 그 시간을 벌어줄 현재의 자원이 너무 부족해보일 따름이다.
결국 타선에 자원이 너무 부족하고, 타고투저인 리그 흐름을 타려고 하다보니 두 명의 외국인 타자를 써보기로 결론을 내린 것 같은데, 그게 꼭 푸이그와 카디네스여야 했는가는 의문이다. 물론 둘 다 KBO리그 경험이 있는 선수들이라는 건 장점이다.
하지만 푸이그가 뛰던 2022시즌 키움히어로즈에는 이정후라는 리그 MVP 타자가 팀의 중심을 잡아주고 있었다. 이정후가 없는 상태에서 2년동안 나이를 더 먹었을 푸이그라는 선택이 맞을까? 부상만 없다면 둘 중에는 카디네스가 더 잘 할 것 같다는 이야기도 들리지만, 카디네스는 부상 부위가 하필 재발하기 쉬운 허리 부분이라는 게 마음에 걸린다. 도슨이라는 보험용 카드가 존재하는 것도 사실이지만, 다친 부위가 급격한 운동능력 하락을 가져올 수 있는 십자인대라는 게 문제다. 결국 안된다면 시즌 중반 다시 외국인 투수를 뽑아올 가능성도 있다고 생각한다.
2024시즌 막판에 장재영은 중견수로 세워가며 키울 것 같아보였는데 두 명의 외국인 코너 외야수가 들어온 게 어떤 영향을 줄 지 알 수가 없다. 변상권과 고영우도 분명히 자질은 있는 선수들이다. 수비에서 갑자기 눈을 뜬 모습을 보여주긴 했지만, 타격에서 분명한 한계를 지니고 있는 김태진이 유격수에 계속 얼굴을 비추게 될 때는 그나마 다른 선수들이 타격에 눈을 떠서 유격수에게 공격 부담이 없는 때여야만 한다.
어쩔수 없다. 많은 선수들이 송성문처럼 스텝업을 해주기를 바랄 수 밖에. 김건희나 김동헌처럼 좋은 자질을 갖춘 젊은 선수가 많아도 시즌 중반이면 김재현이 주전마스크를 쓰고 있는 것과 같은 상황이 각 포지션에서 일어나면 답이 나오지 않는다. 구슬이 서말이라도 꿰어야 보배인데, 구슬만 점점 늘어나는 기분이다. 구슬은 구슬일 뿐 보배가 아니다. 이제 어떻게든 각자가 보배가 되어야 한다.
어쩔 수가 없다. 이 선수가 못해주면 답이 안나온다. 고졸 신인에게 너무 많은 것을 바라는 게 아닐까 싶지만, 난세가 영웅을 부른다. 팀 이름처럼 히어로즈에는 히어로가 필요하다.
대부분의 팀은 'IF'가 터지면 우승을 바라볼 수 있다. 하지만 키움히어로즈는 바라던 바가 이루어져야 일반적인 수준의 경쟁력을 갖는 상황이다. 이런 상황에서는 도무지 순위를 논할 수 없다. 당장 승률 4할을 넘길 수 있을 것인가가 관건이다.
진짜 혹독하게 말하자면 이대로는 최강야구를 상대하는 고교 올스타팀에 와일드카드 몇 명 보태놓은 느낌일 정도로 팀이 약해져 있다. 팀에서는 안우진이 돌아오는 2026시즌을 겨냥하여 '2026년 대망론'을 말하지만 이 상황에서 안우진을 보탠들 과연 팀이 얼마나 강해질지도 의문이고, 그 안우진도 포스팅 요건만 채워지면 메이저리그 보낼 것 아닌가 싶어서 생각하면 할수록 히어로즈 구단 운영진의 방향성에 대한 의심만 늘어난다. 다른 말은 더 보태기가 어렵다. 어떤 상황 속에서도 팀을 응원해주는 팬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를 구단이 생각해주기를 바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