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비의 프레이밍 21
먼저 그래프를 보고 이야기를 시작하자
가장 옅은 색 그래프는 2022시즌, 중간은 2023시즌, 가장 진한색 그래프는 2024시즌 KT위즈가 그린 월별 순위변화다. KT위즈는 2021시즌 우승 이후 세 시즌 동안 비슷한 패턴의 성적변화를 보이고 있다. 4-5월까지는 하위권에 머물다가 6월부터 치고 올라간다. 이를 두고 KT위즈의 이름 그대로 마법사의 '마법'이라 표현하는 경우가 많지만, 나는 이 패턴이 '시즌 후반 무리하게 치고 올라가며 선수를 당겨 쓴(특히 불펜진에서) 대가를 다음 해 시즌 초반에 후불하는 구조적인 문제' 때문에 보여지는 현상이라고 생각한다.
그래도 지금까지 KT위즈는 양호한 편에 속한다. 무리하게 치고 올라간 이듬 해 그대로 성적을 고꾸라박는 팀들이 훨씬 많기 때문이다. 이강철 감독은 불펜을 갈면 또 만들어내고 다시 갈아버리는 신기한 재주를 지니고 있다. 그러나 그래프를 조금만 자세히 보자. 2023년 8월 이후 진짜 마법처럼 2위까지 치고 올라간 성적이 어떤 착시를 만들어내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그 부분만 지우고 보면 그래프는 매년 우하향하며 천천히 가라앉고 있다는 걸 보여준다.
KT위즈의 웨스 벤자민은 구위만큼은 리그를 '씹어 먹어도' 남는 투수라는 평가를 받아왔지만, 1선발은 언제나 쿠에바스였다. 2024시즌을 마치고 벤자민과의 결별을 선택한 KT위즈는 키움히어로즈에서 풀린 외국인 투수인 엔마누엘 데 헤이수스를 영입하는 데 성공했다. 2024시즌 전반기보다 후반기 성적이 좋지 않았다는 부분에서는 우려할만한 지점이 있겠으나 그보다는 이미 리그 적응이 끝난 선수라는 점과 KT위즈에는 부족한 좌완투수라는 점이 더 큰 장점으로 작용할 것으로 보인다.
KBO리그 같은 단일리그 체제하에서 FA선수를 영입하는 건 자팀의 전력보강 효과도 있지만 경쟁팀의 전력누수 효과도 만들어낼 수 있다. 마치 후자를 노렸다는 듯 한화이글스는 FA시장에서 영입할 수 있는 두 명의 선수를 모두 KT위즈(심우준, 엄상백)에서 데려갔다. 그러자 KT위즈도 가만히 앉아있진 않았다. 4+2계약에서 옵트아웃을 행사해서 시장으로 나온 두산베어스의 3루수 허경민을 발빠르게 영입해버렸다.
2024시즌 KBO리그에서 3루가 아쉽다고 느껴진 팀은 KT위즈 뿐이었다. 메이저리그에도 다녀왔던 황재균은 사상 최악의 부진을 겪으며 팀과 팬에게 실망감만 안겨줬다. 허경민은 견실한 수비 뿐 아니라 뛰어난 컨택능력을 자랑하는 타자이니만큼 공격에서도 충분히 제 몫을 해줄 것으로 예상할 수 있다.
SSG랜더스 프리뷰에서 이미 다뤘듯 KT위즈는 불펜투수 김민을 내어주고 왼손 선발 오원석을 받아왔다. 오원석이 들인 공에 비해 기대만큼 성장을 해주지 못한 선수라는 점은 맞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리그 전체에 몇 찾아볼 수 없는 왼손 선발 유망주라는 점에서 KT위즈 입장에서는 결코 손해보는 장사는 아니었다고 평가할 수 있다.
예전 같으면 오원석이 KT위즈에 와서 어떤 보직으로 들어가게 될지 설왕설래가 있었을 것이다. 불펜에 쓸만한 왼손 자원이 없다는 게 KT위즈 투수진이 포스트시즌에서 고전을 한 이유이기도 했으므로 더더욱 보직문제는 뜨거운 감자였을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요즘의 KT위즈는 선발진의 위용이 예전 같지 않다.
KT위즈의 첫번째 영구결번 선수가 될 가능성이 가장 높은 고영표는 전반기는 부상, 후반기는 ABS적응문제로 시즌 내내 제 모습을 보여주지 못했다. 딱 제 몫은 해주던 엄상백은 대전으로 떠났고 소형준이 돌아왔지만 여전히 부상관리가 필요하지 않나 싶다. 오원석이 4-5선발을 맡아주면 당장 급한 불을 끌 수는 있겠지만, 오원석도 기대주일 뿐 아직까지는 만족할만큼의 피칭 퀄리티를 뽐내는 선수는 아니다.
개인적으로는 이번 스토브리그에서 KT위즈가 벤자민과 결별을 선택한 건 당연하다 여겼지만 쿠에바스와 재계약을 한 부분에 대해서는 의아하게 생각한다. 쿠에바스는 팀의 첫 우승을 이끈 에이스에다 여러모로 이제는 팀 내에서 외국인 선수라고 할 수 없는 비중을 지닌 선수라는 점은 인정한다.
잠깐 곁다리로 가자면 외국인 선수가 KBO리그에서 뛴 지 7-8년이 지나면 이제는 외국인선수가 아닌 국내 선수 취급을 해줘야 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을 갖고 있다. 그랬다면 더스틴 니퍼트 같은 경우 최강야구가 아닌 KBO리그에서 여전히 뛰는 모습을 볼 수 있지 않을까? 언젠가 외국인 선수 영구결번이 나온다면 어떨까 상상도 해본다. 2026시즌부터는 아시안쿼터도 도입된다고 하는데, 이런 부분에 있어서도 전향적인 변화가 있으면 좋겠다.
2025시즌을 뛰게 되면 쿠에바스는 KT위즈에서 연차로는 7년차가 된다. 오랫동안 리그에 머문 외국인선수에 대한 특례가 있었다면 쿠에바스가 그 대상이 될 가능성은 다분하고, 그래서 연장계약을 한다고 하면 납득이 간다. 하지만 현재는 그런 조항이 없다. 그렇다면 쿠에바스는 순수하게 실력만으로 재계약 여부를 따져봐야 한다. 계속 생각을 해봐도 난 물음표다.
배재성이 군에서 돌아오고 원상현, 육청명 등이 성장을 해준다 하더라도 KT위즈가 예전과 비슷한 위력으로 선발진을 운용하기 위해서는 이젠 강력한 외국인 선발 원투펀치의 힘이 필요한 상황이다. 헤이수스는 나쁘지 않을 텐데, 쿠에바스는 부족해 보인다.
특히 KT위즈는 선발야구를 해야만 하는 상황인 것이, 불펜진의 뎁스도 꽤나 얇아져 있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여기에 역시 2024시즌의 과부하 문제도 겹쳐 있다. 2024시즌 불펜에서 가장 많은 구원이닝을 소화한 선수를 순서대로 5명만 꼽아보자면 노경은(83.2이닝), 김민수(81.1이닝), 박영현(76.2이닝), 김민(76.1이닝), 장현식(75.1이닝)이다. 2024시즌 기준으로 김민까지 포함하면 2, 3, 4위가 KT위즈 소속이었다.
감독이 쓰는 선수만 쓴다는 건 반대로 말하면 그만큼 쓸 선수가 부족하다는 뜻이기도 하다. 내가 타팀 팬인 탓도 있겠지만 KT위즈 불펜진을 정리하다보면 이름이 눈에 익은 선수가 생각보다 많지 않다. 그 중에는 주권처럼 어느 순간 이후로 제 구위를 찾지 못하는 선수도 있다.
불펜이 약하면 불펜을 보강하든, 아니면 선발이라도 보강했어야 했는데 KT위즈는 당장 눈에 띄는 대안이 많지 않은 것이 현실이다.
야수 파트에 있어 KT위즈와 다음에 다룰 두산베어스는 2025시즌 같은 고민거리를 가지고 있다. 키스톤콤비를 어떻게 꾸려야 할까? 그나마 KT위즈는 당장 선발로 누가 나갈지 눈에 보이는 상황이지만 아마 두산베어스같은 경우에는 코치진이 개막 직전까지도 고민을 해야 할 것이다.
하지만 누군가 두 팀 중 어느 팀이 시즌을 치르기가 더 버거워보이는지 묻는다면 난 KT위즈쪽이라고 답할 것이다. 김상수는 베테랑 유격수로 여전히 나쁘지 않은 타구처리를 보이고 있다. 오윤석도 어느 정도는 해줄 수 있다. 그러나 김상수는 1990년생이고, 오윤석은 1992년생으로 수비범위의 문제가 생길 수 밖에 없는 연차에 서서히 접어들고 있다.
더 큰 문제는 이 두 선수를 백업해줄 자원도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2024시즌 초반 잠깐이나마 높은 타격생산성을 보여줬던 천성호의 경우에도 2루 수비 문제로 결국 타격에서조차 하락세를 타고 말았다. 그나마 2루는 천성호라도 있다. 유격수는 정말 급하면 가끔씩 FA 이적생 허경민이 아르바이트를 뛰어야 할지도 모른다. 심지어 타격 성적 저하로 백업자리로 밀려난 황재균이 외야 뿐 아니라 유격수 수비까지도 연습중이라는 소식이 들린다.
1루수 박병호의 타격 생산성이 좋았다고 말할 순 없지만, 그를 밀어낸 문상철의 결과물 또한 썩 만족스러운 수준은 아니다. 2024시즌의 배정대는 공격 뿐 아니라 수비에서도 내가 아는 그 선수가 맞나 싶은 장면을 자주 연출했다. 로하스가 MVP급 활약을 펼쳐줬고 강백호가 포수마스크까지 쓰는 등 분전했지만, KT위즈 야수진 전체의 에너지레벨이 계속 가라앉는 추세라는 느낌은 지울 수 없다.
KT위즈는 이젠 조금 억지스럽다 싶을 정도로 야수진을 세대교체하지 않으면 안되는 상황으로 보인다. 문상철, 허경민, 심지어 김상수의 백업을 황재균이 맡는 상황은 당장 급한 불은 끌 수 있을지 몰라도, 그 급한 불과 함께 미래도 꺼버리는 셈이다. 외야도 마찬가지다. 당장 눈에 띄는 외야 백업이 없어서 이번 FA 보상선수로 영입한 장진혁이 4, 5 옵션으로 들어가게 될지도 모른다고 하는데 장진혁도 어느새 31세 시즌을 맞는 선수다.
이 뿐 아니다. 타이브레이크를 거치고 와일드카드 결정전을 이긴 다음 준플레이오프 5차전을 진행하는 동안 장성우는 포수 마스크를 벗을 수가 없었다. 어느 순간 이후로 장성우의 체력이 완벽하게 고갈되었음을 모두가 느낄 수 있었다. 그러나 새 시즌에는 백업포수가 강백호여서는 절대 안된다. 그만큼 팀에 선수가 부족하다는 뜻이겠으나, 급할 때일수록 순리대로 가야지 서두르다가는 도리어 일을 더 크게 망칠지도 모른다.
스프링캠프가 이어지면서 각 팀 감독들이 내놓는 새 시즌의 초기 청사진들을 확인할 수 있는데, 난 지난번 한화이글스의 '2루수 안치홍'보다 KT위즈의 '포수 강백호'가 훨씬 더 문제있는 구상이라고 생각한다. 가끔 어떤 기자들은 '포수 강백호가 성공하기만 한다면 FA로 얼마를 받을 수 있을까?'를 두고 상상의 나래를 펼치는 모양인데, 툭 까놓고 말해서 말도 안되는 소리다.
아무리 ABS가 생겼다고는 하지만 포수는 단순하게 공만 받으면 되는 자리가 아니다. 시시각각 내려야 하는 상황판단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KT위즈 코칭스태프는 언제까지 전문 포수가 아닌 선수에게 마스크를 씌울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걸까?
강백호를 포수로 자주 기용하면 할수록 체력저하와 부상가능성은 기하급수적으로 올라간다. 그 모든 부담을 선수가 오롯이 떠안는 게 과연 온당한 일인가? 게다가 강백호가 내년 시즌 KT위즈를 떠난다고 가정해보자. 어느 팀이 강백호에게 마스크를 씌우겠나? 포수 자원이 아무리 귀하다 한들, 강백호는 결국 타격으로 먹고 살아야 하는 선수다.
KT위즈는 강백호의 타격생산성에 절대적으로 의존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다. 어떤 이유로든 강백호의 타격생산성마저 낮아지게 되면 KT위즈는 키움히어로즈보다 못한 공격수치를 만들게 될 가능성도 있다. 심지어 선수 개인이 정확한 의사표명을 한 바는 없으나 은퇴선수 이대호 유튜브에 출연한 강백호가 '수비 포지션 고정'을 말할 때, 외야와 1루는 언급하면서도 포수 자리를 언급하지 않은 건 나름 시사하는 바가 있다고 생각한다. 장고 끝에는 대부분 악수가 따라나오고, 묘수라 생각한 수들의 대부분은 패착이 된다. 당장 강백호에게 줄 수비 포지션이 없다고 느껴진다면 그냥 DH에 놓으면 된다.
사실 강백호 급의 선수를 키플레이어라고 꼽는 것 자체가 뭔가 어폐가 있다. 강백호는 이미 잘하고 있고, 앞으로도 꾸준히 잘 할 선수다. 그러나 현재 KT위즈의 상황을 보면 단순하게 잘한다 수준이어서는 쉽지가 않아보인다. 정말 강백호와 로하스가 쌍두마차가 되어서 서로 MVP급 활약을 펼쳐주면서 팀을 이끌어줘야 한다. 즉, 타팀 팬인 내가 잘한다고 감탄을 하게 만들어서는 안되고, 얼굴만 봐도 화가 나고 짜증이 나게 만들어야 팀을 구할 수 있다.
솔직히 나도 '이게 맞나?" 싶다. 아무리 그래도 KT위즈인데 8위라니, 쓰면서도 조금 긴가민가 하고 있다. 그러나 개인적으로 점수를 매겼을 때 7위로 예상한 SSG랜더스, 8위로 예상한 KT위즈는 단 1점 차이였지만 공동 5위권으로 예상한 한화이글스, 롯데자이언츠와 이 두 팀과는 살짝 갭이 있었다.
사실 KT위즈는 상위권을 계속 달리면서도 대대적인 보강을 하거나 외부영입에 나선 적이 없다. 이번 스토브리그에서 허경민을 영입하긴 했지만, 그것보단 엄상백과 심우준 유출이 더 커보인다. 상위권 성적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당연히 지속적인 선수 영입과 보강이 필수적이다. 반대로 영입과 보강 없이 상위권을 달리다보면 자연스레 선수 풀이 엷어지기 마련이고 안식년을 가져야 할 때가 필연적으로 찾아온다.
이 글을 쓰기 전, 친구에게 KT위즈의 '8위' 예상을 말했더니 말도 안된다는 답이 돌아왔다. 나도 솔직히 겁이 난다. 부디 재미로 하는 것이고, 틀릴 가능성이 맞출 가능성보다 수백만 배는 높으니만큼 너그럽게 봐주시길 다시 한 번 당부드린다.
내가 좋아하는 주역의 말이 있다. 「궁즉변窮卽變하고 변즉통變卽通하니 통즉구通卽久한다.」 풀면 이렇게 된다. 벼랑 끝에 몰리면 무언가 바뀌게 되고, 바꾸고 나면 드디어 통하게 되니, 통하고 나면 오래 갈 수 있다. 그래서 주역에서는 '대흉'을 그리 나쁘게 보지 않고, '대길'을 그리 좋게도 보지 않는다고 한다. 여기가 가장 나쁜 자리라면 이제 남은 건 좋아질 일 뿐이고, 여기가 가장 좋은 자리라면 이제 남은 건 나빠질 일 뿐이기 때문이다.
KT위즈가 막 KBO리그에 들어왔을 때, 처음부터 잘나갔던 NC다이노스 때문인지 마치 잘난 형의 그늘 밑에 가려진 평범한 동생을 보는 기분이었다. 평생 형의 그늘 아래서 기 죽은 채 살려나 싶어 괜히 안쓰럽기도 했다. 하지만 언제 그랬냐는 듯 KT는 멋진 모습으로 변신하더니 형이 집행검 휘두르며 앉았던 왕좌를 바로 다음 해에 승계해버렸다.
주역에서 말하는 이치는 의외로 단순하다. 세상 만사 모든 것은 머물러 있지 않고 늘 돌고 돌기 마련이다. 오래 가면 당연히 다시 궁해진다. 이건 누구의 잘못도 아니고 그저 자연스레 그리 되는 게 아닐까 싶다. 난 KT위즈가 '이러 이러 이러한 실책과 잘못을 저질러서 그런 벌로 새 시즌엔 하위권에 떨어질 같다.'고 저주를 퍼부으려는 게 아니다. 그저 '오랫동안 위에 있었으니 이제 내려갈 때도 됐고, 내려가도 그리 아쉬울 일도 아닐 것이다.' 정도로 말하고 싶다. 그리고 당연한 말이지만 내 예상이 다 맞을 가능성은 눈꼽만큼도 되지 않는다.
그리고 또 모른다. 남은 스토브리그 기간 동안 KT위즈가 어떠한 새로운 모습으로 또 변해있을지. 그래서 내 예상이 틀린다고 하면 그것도 그것 나름대로 재미있는 일일 것이다. 뭔가 무책임한 결론 같지만 세상 일이라는 게 원래 다 그런 구석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