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비의 프레이밍 22
'악동'이라고 하면 미국만화 심슨가족의 바트 심슨이 떠오른다. 몇몇 에피소드에서 바트 심슨은 지옥 학교로 전학을 가서 우수학생으로 표창까지 받기도 한다. 그러나 바트는 악동일 뿐 악마는 아니다. 일단 바트는 어리다. 그는 실로 기상천외한 장난을 치지만 가끔 드러나는 내면의 천진함과 순진함이 결국 사람을 웃게 만든다. 여기에 바트가 사는 세상은 결국 만화라는 사실이 더해진다. 그가 벌이는 온갖 장난의 참상은 몇 컷이 지나면 바깥 세상의 만화가가 다 언제 그랬느냐는 듯 원상태로 복구시켜놓는다. 영원히 피해를 받거나 고통에 시달리는 사람은 없다.
우린 종종 '그라운드의 악동'이라 불리는 선수들을 만난다. 그들은 룰의 경계를 살짝살짝 넘나들면서 상대의 신경을 슬슬 건드리고 실수나 범실을 유도한다. 난 그런 선수들을 싫어하지 않는다. 도리어 좋아하는 편에 가깝다. "저런 선수도 있어야 팀이 살지." 라는 생각을 한다.
그러나 가끔 근본 자체가 뒤틀린 '악동'이 그라운드에 들어갔을 뿐인 경우들을 만난다. 그런 모습을 볼 때면 묻고 싶어진다. 당신은 거울을 안보고 사냐고. 당신 성인이라고. 그라운드에서야 룰을 살짝살짝 넘나드는 게 용인이 되지만, 바깥에서는 선을 조금이라도 넘는 순간 범죄가 되는 걸 정말 모르냐고.
심지어 악동짓을 넘어 범죄를 저지르는 선수들도 있다. 그런 선수를 응원했던 팬들은 배신감에 치를 떨게 되고, 주변 사람들은 돌이킬 수 없는 상처를 안고 살아가게 된다. 원인은 단순하다. 그들은 자신들에게 쏟아졌던 환호가 그들 자신이 아닌 자신이 입은 유니폼에 쏟아진 것이라는 사실을 망각했을 뿐이다. 경기가 끝난 후 라커룸에서 유니폼을 벗고 그라운드를 떠나는 순간 선수는 한 사람의 평범한 시민으로 돌아올 줄 알아야 한다. 유니폼 없이도 자신이 특별하다고 믿는다면, 모든 것을 집어삼킬 심연이 그의 발 아래 열리기 마련이다.
2025시즌 외국인 선수를 모두 바꾼 팀은 두산베어스와 키움히어로즈 뿐이다. 그러나 키움히어로즈가 영입한 두 명의 외국인 타자들은 모두 KBO리그를 경험했던 선수라는 점에서 외국인 선수 슬롯을 모두 신입으로 채운 건 두산 베어스 뿐이라고 말할 수 있다.
두산베어스는 스토브리그가 열리기 무섭게 굵직한 외국인 선수 영입내용을 연달아 발표했다. 2024시즌의 실패를 반복하지 않겠다는 의지가 느껴지는 움직임이었다. 그러나 너무 서두른 탓이었을까. 이 과정에서 토마스 해치가 메디컬테스트에서 탈락하며 잭 로그로 변경되는 우여곡절도 있었다.
롯데자이언츠에 투수 정철원과 내야수 전민재를 내어주고 외야수인 김민석, 추재현 그리고 투수 최우인을 받아오는 2 대 3 트레이드를 단행했다. 롯데자이언츠 프리뷰에서도 언급했듯이 터지지 않은 유망주 간의 교환이라는 점에서 받아온 팀이 얼마나 선수를 잘 육성하는가가 트레이드 성패의 관건이 될 것이다.
김민석은 한 때 '제 2의 이정후'가 될 자질이 있다고 기대를 모았던 선수다. 워낙 연차가 어린 선수인데다 원래 연고가 서울이기도 하니 갑자기 기량이 급성장한다고 해도 이상할 바는 없다.
2024시즌에 들어서며 난 주변 사람들에게 '올 시즌 KIA타이거즈가 괜찮을 것'이라 말했었는데, 그 판단의 이유는 간단했다. 2023시즌 KIA타이거즈 외국인 투수들은 역대 최악이었다. 바뀐 투수들이 리그를 '씹어먹을' 정도로 잘할 필요도 없고 그저 평타만 해줘도 전력이 상승될 수 밖에 없었다.
KBO리그에서 외국인 선수가 팀 전력에서 차지하는 비중을 두고 혹자는 50%라고 하는 이도 있는데 이건 너무 과장이다. "외국인 선수 셋만 잘 뽑아도 우승도전 가능하고, 적어도 5강엔 간다."는 속설도 있는데 이건 반례가 워낙 많아서 인정하기 힘들다. 당장 2024시즌만 봐도 그렇다.
국내 WAR수치 산정기준에 대해서는 아직까지 많은 연구가 필요해보인다. 상대적 우열만 살펴보자.
타팀에 비해 두산베어스와 한화이글스의 외국인 선수 기여도가 상대적으로 낮다. 그 중 외국인투수만 보면 꼴지가 바로 두산베어스다.
KBO리그는 아마추어 풀이 넓지가 않아 신인으로 좋은 선수가 매년 쏟아져 들어오지 못한다. 단일리그라서 적극적으로 트레이드도 일어나지 않는다. 비FA다년계약이 생긴 이후로는 FA시장에 S급 선수가 풀리는 일 또한 많지 않다. 이러다보니 외국인 선수를 교체하는 것만이 단기간에 팀 성적을 끌어올릴 수 있는 거의 유일한 방법이다.
그렇기에 역설적으로 직전 시즌 외국인 선수가 안좋았다는 건 그만큼 팀에 전력보강을 할 여유공간이 있다는 뜻과 같다. 마침 여러 외국인 선수들이 (특히 투수가) KBO리그의 성공을 밑바탕으로 MLB에 성공적으로 리턴하는 사례가 늘어남에 따라 이전보다는 수준이 높은 선수들이 한국무대를 노크하고 있다는 점은 긍정적이다.
두산베어스는 외국인 투수만 일정정도 궤도에 오른다고 하면 투수 파트에 있어서만큼은 크게 우려할 부분이 없는 팀이다. 곽빈은 차세대 국가대표 에이스를 다투는 선수다. 최승용과 최원준의 무게감이 떨어지긴 하지만 최준호, 박신지, 이영하, 김유성처럼 선발진을 지원해줄 수 있는 자원도 많다. 여기에 김택연을 중심으로 한 불펜진이 뽐내는 강력함은 4-5선발의 빈약함을 충분히 상쇄하고도 남는다.
물론 2024시즌처럼 이승엽감독이 시즌 내내 포스트시즌마냥 총력전모드로 돌려버리면 그 좋은 불펜진이 무너지는 것도 시간문제겠지만, 반대로 2024시즌의 무리한 투수 운용이 빈약했던 외국인 선발투수 문제 때문이었다고 한다면 감독교체가 없었음에도 투수운용에 있어서 갑작스러운 개선이 있을 수도 있는 일 아닐까 싶다.
단순한 답이라고 해서 정답이 아닌 것은 아니다. 나는 2025시즌 두산베어스의 선발투수진이 2024시즌보다는 무조건 좋아질 것이라고 본다. 그렇게 된다면 KBO리그에서 두산베어스보다 짜임새있는 투수진을 가진 팀은 어디일까? 난 쉽게 떠오르지가 않는다.
두산베어스를 떠나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던 허경민이 갑작스럽게 KT위즈로 이적을 했고, 자신의 후임을 찾지 못한 채 말년까지 계속 유격수 수비에 나서야 했던 천재유격수 김재호도 은퇴를 선언했다. 결과적으로 2024시즌 주전 내야수 중 둘이 갑자기 사라져버렸기 때문에 반강제적인 내야 리빌딩 작업에 착수하지 않으면 안되는 상황으로 내몰렸다.
그나마 2루와 3루는 이유찬과 강승호라는 대안이 존재한다. 일단 허경민이 떠난 3루의 빈자리를 강승호가 건너가 메꾸는 걸로 결정한 모양이지만, 시즌이 진행되며 포지션 변경에 따른 문제가 노출되면 두 선수가 자리를 맞바꾸게 될지도 모른다고 생각한다. 여기에 신인 1라운더인 박준순이나 징계에서 돌아온 박계범 등이 2루에서 힘을 보탠다면 이 포지션은 어떻게든 정리가 될 것으로 보인다.
문제는 유격수다. 두산베어스는 이미 김재호의 후임을 찾고 있던 중이었다. 문제는 누구도 김재호를 못 뛰어넘었다는 거다. 페넌트레이스를 진행하다보면 되돌이표처럼 돌고 돌아 도로 김재호가 유격수 자리에 나가야 했다. 트레이드를 통해 전민재마저 롯데자이언츠로 보내버렸다는 건 죽이 되든 밥이 되든 박준영에게 힘을 실어주려는 것으로 읽어야 한다. 만약 이 실험이 실패하게 된다면 두산베어스의 내야는 한동안 헬게이트가 열릴 것으로 보인다. 어쩌면 이 구멍을 메우기 위해 시즌 중반 트레이드에 나서게 될지도 모른다.
그러나 두산베어스의 야수진이 마이너스만 있는 것은 아니다. 금지어가 되어버린 오 모 씨 사건으로 징계를 받았던 선수들이 복귀함에 따라 드디어 두산베어스는 백업 다운 백업 자원을 갖추게 되었다.
야구판에는 정말 많은 사람들이 들어와 있고, 그만큼 별별 사건들이 다 벌어진다. 심심하면 음주운전 소식이 들려오고, 매해 개인 사생활 이슈로 구설수에 오르는 선수들이 나타난다. 드래프트 시즌이면 학교폭력 관련된 소문이 나돌고, 약물 관련된 문제가 터지기도 하고, 스포츠에서는 절대 벌어져서는 안될 승부조작까지도 벌어진다. 내가 응원하는 KIA타이거즈만 해도 당장 연고지 비하 문제로 이슈가 된 선수와 코치 때문에 여전히 시끌시끌한 상태이고, 역대 선수중에는 강력범죄를 저질러 지역비하에 동원되는 금지어 선수도 존재하는 상황이다.
그러나 이번 오 모 씨처럼 위계를 이용해서 후배들을 강압, 협박한 경우는 처음 본다. 이 사건으로 두산베어스는 무려 8명의 선수를 쓰지 못한 채로 시즌을 치러야 했다. 선수 하나의 일탈이 팀 전체에 이만큼 광범위한 해악을 끼친 경우가 앞으로도 또 나올까 싶다.
허경민과 김재호의 이탈이 만든 구멍을 다 메울 수 있는 수준의 보강은 아니겠으나, 팀 입장에서는 양 발목에 매달려 있던 모래주머니를 떼고 다시 달릴 수 있는 상황을 맞은 셈이다.
팀 타격의 중심에는 여전히 양의지가 존재한다. 문제는 포수 양의지의 출전시간이 늘어날수록 그에게 주어지는 부담이 너무 커진다는 데 있다. 김기연이 있다는 건 그나마 다행이지만, 양의지가 DH로 간다는 건 김재환이 좌익수로 나가줘야 한다는 뜻이므로 조정이 쉽지가 않다. 도루왕 타이틀을 차지했지만, 조수행은 아직까지 주전 외야수를 맡기에는 생산성이 너무 낮다. 외야-지명타자-포수 자리를 어떻게 운용할 것인지가 2025시즌 두산베어스 야수 운용에 있어 또 하나의 키포인트다.
2024시즌에도 부상이 아니었으면 주전 유격수 자리를 맡았을 박준영이었으나 햄스트링으로 이탈했다는 점이 마음에 걸린다. 그러나 당장 두산베어스 유격수 자리에 이름이 오르내리는 선수들 중에서는 가장 많은 경험치를 가지고 있다. 나름 장타력도 준수한 편이어서 공격에서도 기여를 할 수 있다. 아무리 고민을 해도 개막전 유격수 자리에는 박준영이 서 있지 않을까?
그리 생각하고 다시 기사를 찾아보니 그가 부상으로 이번 1차 스프링캠프에도 참여하지 못했다는 소식이 들린다. 큰 부상은 아니라 하지만, 부상은 부상이다. 박준영이 빠지면 누가 두산베어스 유격수를 맡게 될까? 모르겠다. 일단 '박준영'이라는 이름을 남겨두긴 할테지만 '새로운 유격수'라고 읽어주시길 바란다. 누구여도 상관없다. 타격격이 부진해서 시즌 내내 9번 자리에 고정되어도 괜찮다. 누가 되었든 한 명만 살아남으면 된다. 빙빙 돌아가는 회전목마처럼 유격수 자리의 이름이 계속 바뀐다면 두산베어스 팬들은 야구장에 오며 멀미약을 먹어야 할 것이다.
앞서 KT위즈 프리뷰에서 순위를 적으면서 계속 고개를 갸우뚱했던 것과는 반대로 두산베어스는 한 번 고갤 갸웃하긴 했지만, 스스로 어느정도는 바로 납득할 수 있었다. 이미 수많은 악재 속에서도 2024시즌 패넌트레이스 4위에 올랐던 팀이다. 전력 누수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많은 악재들을 해소한 후 맞는 새 시즌이다. 그렇다면 4위 이상으로 평가받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주축 야수들의 나이가 점점 늘어나고 있다는 것만큼은 KT위즈와 다를 바가 없지만, 반강제적으로 두산베어스는 리빌딩 버튼을 눌렀다. 이게 스스로 누른 것인지 외부 여건에 의해 눌린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어찌되었든 변화가 이미 시작되었다. 난 그 변화를 충분히 긍정적으로 평가한다.
앞서 2024시즌 리뷰에서 나는 이승엽감독에 대한 평가를 보류하며 2025시즌 결과를 보자고 말했다. 허나 프리뷰를 다 작성해놓고 보니 이건 모두에게 애매한 결과로 남지 않을까 싶다. 만약 정말 두산베어스의 새 시즌이 3위로 마무리가 된다고 하면 이승엽 감독은 매 해 팀을 한 계단씩 위로 올려놓은 셈이 된다. 그러나 두산베어스 팬들의 마음에 쏙 드는 성적표는 아닐 것이다. 웃으면서 헤어질 수도 없고 아쉽지만 떠나보내기에도 애매하다.
허나 꼭 운용이 성적으로만 나타나는 것은 아니다. 성적은 크게 오르지 않더라도 팬들이 납득이 가는 운용이 있을 수 있다. 만약 내 예상보다 한두 계단 더 낮은 순위에 머물게 될지라도 새로운 키스톤 콤비를 만들어낸다면 팬들은 충분히 만족할만한 시즌이었다고 평가할 것이다. 반대로 내 예상보다 높은 성적을 낼지라도 선수들이 너무 심한 혹사에 시달리게 된다면, 우승이 아닌 이상 좋은 평가를 기대하긴 힘들다.
'두 마리 토끼를 잡아야 한다'는 상황에 우린 예상보다 종종 맞닥뜨린다. 그리고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쫓으며 갈팡질팡하다가 빈 손이 되는 경우가 너무나 많다. 감독 계약 마지막 시즌, 이승엽 감독은 과연 손에 몇 마리의 토끼를 든 채 결승점을 통과하게 될까? 개인적으로 그가 너무 토끼만 쫓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저 열심히 자기의 달리기를 하다 보면, 그래서 토끼보다 더 빠르게 달릴 수 있게 되면, 꼭 두 마리가 아니라 세 마리, 네 마리도 잡을 수 있게 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