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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 KBO리그 프리뷰 8. LG트윈스

헤비의 프레이밍 23

by 헤비

와신상담臥薪嘗膽. 어느새 하나처럼 붙어버렸지만 땔감 나무에 누워 자며(와신), 쓸개를 핥는다(상담)는 두 가지 행동이 붙어 만들어진 사자성어로, 춘추시대 오나라의 왕이었던 부차와 월나라의 왕이었던 구천의 고사에서 유래한 말이다.


오나라와 월나라는 모두 양쯔강 이남에 있던 변방국으로 다툼이 잦았다. 오나라의 왕이었던 합려가 월나라 왕 구천을 치다 전장에서 죽자 이를 원통하게 여겼던 아들 부차가 땔감 위에 누워 자며 신하로 하여금 "부차야, 너는 월나라 사람들이 네 아비를 죽인 사실을 잊었는가."라고 외치게 하였는데 이를 와신臥薪이라 한다. 와신하며 복수의 칼날을 벼린 부차는 결국 월나라를 물치리고 월왕 구천을 사로잡는데 성공한다. 그러나 구천은 부차에게 비굴하게 몸을 숙이면서 재물과 처첩을 바치고, 동시에 부차 주변의 여러 인물들에게 뇌물을 뿌려 자신을 구명하게 함으로서 겨우 목숨을 부지하는 데 성공한다.


어렵사리 자신의 나라에 돌아간 구천은 매일 밤마다 매달아놓은 쓸개를 핥으며 "너는 회계산의 치욕을 잊었느냐"라고 외쳤다. 이게 상담嘗膽이다. 시간이 흘러 구천은 오나라의 수도를 함락시키고 부차를 자결시켜 복수에 성공했다.


와신상담은 이제 어떤 목표를 이루기 위해 그만큼 뼈를 깎는 인내와 노력이 수반되어야 함을 뜻하는 고사성어로 쓰인다. 그러나 이야기는 부차의 모습을 통해 목표를 이룬 다음 그것을 유지하는 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를 동시에 보여주기도 한다. 승리를 거둔 부차가 구천의 목숨을 그 자리에서 빼앗았더라면, 적어도 구천의 상담嘗膽 소식을 듣고 방심만 하지 않았더라면 역사가 어떻게 변했을까 생각해본다.


모두가 그렇게 생각했다. 와신상담하며 무려 29년만에 2023시즌 KBO리그의 왕좌에 오른 LG트윈스가 한동안 그 자리에서 물러나지 않을 것이라고. 하지만 그들은 예상보다 허무하게 자리에서 내려왔다. 어쩌면 성을 쳐서 빼앗는 것은 그나마도 쉬운 일이다. 얻은 성을 경영하는 것은 아예 차원이 다른 문제다.




1. 스토브리그 이슈


① 외국인 선수 치리노스 영입


골든글러브 1루수인 오스틴, 준플레이오프 전경기 출장의 투혼을 보여준 에르난데스와는 재계약을 한 LG트윈스는 1선발로서는 뭔가 아쉬운 모습을 보였던 엔스와는 결별을 선택하고 베네수엘라 태생의 요니 치리노스와 계약을 했다.


이미 국내 여러 구단에서도 치리노스를 두고 1선발급으로 평가를 해왔던 만큼 실력은 크게 의심할 필요가 없어 보인다. 대신 이 선수가 부상경력이 많다는 점은 우려가 된다. 메디컬 이슈가 발생했다는 루머가 돌기도 했는데 구단에서 바로 진화에 나설만큼 치리노스의 건강문제는 시즌을 진행하는 도중에도 계속 관심사항이 될 것이다.


② FA 장현식, 김강률 영입


KIA타이거즈의 통합우승 이후 우승팀 불펜 에이스 역할을 해줬던 장현식에 대한 관심이 폭증했다. 특히 패넌트레이스 1위를 놓고 경합을 펼쳤던 KIA타이거즈, 삼성라이온즈, LG트윈스가 영입전에 동시에 뛰어들면서 장현식을 두고 번외 경기가 벌어진듯한 양상을 보였다.


LG트윈스는 장현식에게 4년 52억원, 옵션 없는 전액보장이라는 파격적인 카드를 제시해서 이 번외 경기의 최종 승자가 되었다. 서울 출신의 장현식에게 서울 팀인 LG트윈스라는 점도 메리트가 되었겠지만, 무엇보다 성적의 안정성이 떨어지는 불펜투수에게 전액보장이라는 카드가 매력적이었을 것으로 보인다.


장현식 영입으로 마무리 될 것으로 보였던 LG트윈스 FA 영입은 마무리 유영찬의 갑작스런 부상이탈로 인해 한지붕 두가족인 두산베어스의 김강률 영입으로 이어졌다. 불펜은 다다익선이다. 김강률도 늘 잔부상 이슈를 달고 다니는 선수라는 건 아쉬운 부분이지만, 익숙한 마운드에 오르는 일이니만큼 그리 큰 적응문제는 겪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2. 투수 파트 예상

앞서 외국인 선수 변동에 대해 다루면서 치리노스의 부상에 대한 우려를 언급했는데, 개인적으로 부상 이슈는 계산이 불가능한 문제가 아예 배제하고 보는 게 맞다고 생각한다. 누가 언제 어떻게 부상을 입게 될지는 아무도 예상하지 못한다. 구단에서 충분히 메디컬테스트를 거쳤다고 발표까지 했으니만큼 그걸 믿어야지, '못 믿겠다 불안하다' 해버리면, 이건 논의가 되지 않는다.

그보다 난 에르난데스가 과연 맞는 선택이었는지가 의문이다. 준플레이오프 전경기를 출장하면서 에르난데스가 대단한 투혼을 보여준 건 인정한다. 염경엽감독이 직접 재계약을 언급하기도 했다. 그러나 페넌트레이스에서 선발투수로 나온 에르난데스는 썩 만족스러운 모습을 보여주지 못했던 게 사실이다.


LG트윈스가 에르난데스를 안고 가는 건 몇번을 곱씹어봐도 소극적인 움직임으로 보인다. 국내선발진인 임찬규와 손주영이 나름 중심을 잘 잡아주고 있고, 상무에서 뛰어난 모습을 보여줬던 송승기가 5선발에 투입될 예정이며 시즌 중반에는 이정용이 복귀를 하는만큼 외국인 투수를 공격적으로 운용할 수 있는 여유가 있는 상황이기 때문에 더 아쉽게 느껴진다.


FA로 장현식을 영입했지만 2024시즌 장현식이 많은 이닝을 소화한 만큼 일시적인 구위하락이 찾아오는 건 어쩌면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급하게 영입한 김강률은 구위는 좋지만 많은 이닝소화를 기대할 수는 없다.


2024시즌 마무리였던 유영찬이 부상으로 인해 시즌 중반에나 합류가 가능할 전망이고, 중간에서 거의 유일하게 제 몫을 해줬던 김진성도 언제 구위하락을 겪어도 이상하지 않은 나이니만큼 LG트윈스의 불펜은 두 명의 FA보강을 했음에도 실상 어떤 보강을 했다고 보기 어려운 상태로 시즌을 맞이할 가능성이 높다. 그나마 이종준, 박명근, 이유찬, 우강훈 등 가용자원이 많다는 건 희망적이다. 이 선수들이 아무리 부침을 겪는다 한들 2024시즌만큼 부진할 수 있을까? 선수 풀 자체는 넓으니 몇 명만 튀어나와도 급한 불은 끌 수 있을지도 모른다.


어쩌면 불펜에 불안요소가 많다는 것이 에르난데스라는 안정적인 카드를 쥐고 가는 이유였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불펜진 강화는 꼭 불펜투수로만 하는 게 아니다. 불펜이 약하면 불펜을 덜 쓸 수 있게 선발을 강화시켜도 된다. 개인적으로는 더 강력한 선발라인업 구축을 위해 에르난데스를 바꾸는 게 맞지 않았을까 계속 미련이 남지만, 정답은 2025시즌 에르난데스의 성적이 보여줄 것이다.




3. 야수 파트 예상

KBO리그에서 KIA타이거즈와 더불어 야수파트 더블스쿼드를 돌릴 수 있는 유이한 팀이 바로 LG트윈스다. 이번에 LG트윈스의 야수 백업라인을 다시 한번 살펴보니 정말 탐나는 선수가 많았다. 백업 포수 자리에 대한 의문부호가 있어서 그렇지, 나머지 자리는 당장 어느 팀에 가더라도 주전경쟁을 해볼만한 선수들로 가득하다.


물론 LG트윈스의 주전 라인업은 엄청나게 화려하다. 전 선수가 국가대표급으로 꾸려져 있다. 이 좋은 선수들을 빼고 억지로 로테이션을 시키는 게 과연 맞는 일일까 싶을 정도다. 하지만 일부러 가지치기를 해서 주전이라는 거대한 나무 아래서 자라는 신진급 선수들에게 햇빛을 보게 하는 일을 게을리하다보면 후회할 날은 생각보다 금방 찾아오기 마련이다.

염경엽 감독도 새로운 시즌에는 신진급 선수들을 자주 기용하겠다고 밝혔는데, 이런 다짐은 정말 의지를 갖고 뚝심있게 밀고 나가야 한다. 신진급 선수들이 원하는 만큼 성적을 올리지 못할 수도 있다. 심지어 눈 앞에서 몇 경기를 놓칠 수도 있다. 그러나 너무 쉽게 시즌 전의 결심을 꺾어버린다면 라인업에는 어느 순간 기존 베테랑의 이름만 지박령마냥 붙어있는 현상이 반복될 것이다.


주전과 후보가 매번 바뀌는 불안정한 상태가 바람직한 것은 아니지만, 주전과 후보가 마치 계급처럼 고정적으로 나뉘어 있는 상태에서 팀의 발전을 기대하는 건 어불성설이다. 고인물은 썩는 게 자연의 이치다. 어항이나 연못에서 물고기를 키울 때 흐름을 일부러 만드는 것처럼 선수단 안의 선순환을 일으키는 것 또한 코칭스태프가 필수적으로 해야 할 역할이다. 모두가 프로 선수로 이뤄진 프로야구단이지 않는가. 프로는 늘 빼앗고 빼앗기기 마련이다. 고정된 '내 자리'는 없다.




4. 희망회로


① 외국인 선수 원투펀치가 모두 170이닝 이상을 소화해주면서 불펜진의 과부하를 최소화시킨다.


② 김범석이 타격 포텐을 터뜨리면서 붙박이 지명타자가 되고, 그의 넉넉한 뱃살이 '야구주머니'였음이 입증된다.


③ 부상에서 돌아오는 유영찬, 함덕주 등의 불펜투수들이 예전과 같은 기량을 뽐내기 시작한다.




5. 키플레이어

정우영


정우영이 한참 잘 던질 때만 해도 저 선수가 조만간 MLB에 가서 예전 김병현 같은 활약을 펼치지 않을까 예상했었다. 난 대체 뭐가 문제인 건지조차 도통 알 수가 없다. 잘 하고 있다면 억지로 안건드리는 게 최선이 아닌가 싶다가도, 발전을 위해서 변화를 하는 건 좋은 일 아닌가도 싶다. 진심 정답을 모르겠다.


그래도 스토브리그 들어서 정우영이 구슬땀을 흘리고 있다는 소식을 간간히 들었다. 정우영만 예전 같은 활약을 펼쳐준다면 LG트윈스의 많은 고민들이 순식간에 사라진다. 그리고 난 정우영이 충분히 그만큼의 역량을 가진 선수라고 생각한다.




6. 예상순위


2위


대단히 큰 변화를 가지고 새 시즌을 시작하는 팀은 아니지만, 이미 가지고 있는 능력이 출중하다. 어떤 의미에서는 지난 시즌이 많이 불운했던 게 아닐까 싶다. 불펜진에 아쉬움이 있지만, 야수진이 워낙 강력하다보니 어느 팀을 만나도 본인들의 페이스로 이끌고 갈만한 힘이 느껴진다. 약하다고 평가받는 불펜진도 물량에 있어서만큼은 결코 남부럽지 않다. 다도 아니고 몇몇 선수가 조금만 스텝업을 해주면 된다.




7. 총평


나는 2024시즌 패넌트레이스 중반부에도, 플레이오프에서도, LG트윈스가 한 계단 위로 올라올 것을 계속 예상했는데 그들은 최종순위를 삼성라이온즈에 밀린 3위로 마감하고 말았다. 그런데 혹시 누군가 시간을 되돌려서 새로 예상을 해보라고 한다면, 결과를 다 알고 있어도 LG트윈스의 손을 들어주고 있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LG트윈스의 전력은 꽤 단단하고 탄탄하다.


염경엽 감독은 무려 29년만에 팀을 우승으로 이끈, 팬과 구단에게 있어 어떤 의미에서는 은인에 가까운 감독이다. 하지만 만약 2025시즌 LG트윈스가 2위 그 이상의 성적을 거두지 못한다면 코칭스태프에게 선수단 운용에 대한 책임을 묻지 않을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이건 강팀을 맡은 감독의 숙명과 같은 것이다.


정말 잘 만들어진 팀이고, 충분히 더 잘할 수 있는 팀이다. 다만 그 사실이 마지막 한 단계를 뛰어넘지 못하게 만드는 장애물로 작용할 수도 있다. 오왕 부차가 월왕 구천의 목을 베지 않았던 것처럼 말이다. 굳이 그럴 필요까지 있을까 싶은 일들이 있지만, 프로는 굳이 그럴 필요까지 있을까 싶은 일까지도 해야 하는 법이다. 그게 프로의 숙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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