혜리 님께 보내는 아홉 번째 교환 일기
1. 지난 4월 4일, 목을 죄던 막연한 두려움의 끈이 툭 끊어지고 나니 어느새 봄 한가운데로 들어와 있네요. 꽃은 피었고 바람은 한껏 몸 달아 열을 내는데 왜 제 마음은 딴 계절을 살듯 자꾸 허무하다는 생각이 들까요.
그런 생각이 들 때도 있어요. '어쩌면 난 이 평범하고 무탈한 봄이 아닌 파국을 기다리고 있었던 게 아닐까?' 하고 말이죠. 모든 것이 뒤집혀 한 치 앞도 보이지 않고, 혼돈과 비명과 폭력으로 아수라장이 되어버린 세상을 바랐나 싶을 정도에요. 아니겠죠. 진짜로 그걸 바랐다면 그 시간동안 그렇게 혼자 망설이고 혼자 각오를 되새김질하고 또 혼자 두려워하진 않았겠죠.
하지만 모든 것이 제자리로 돌아와 하나둘 원래 그래야 하는 그대로 꽃이 피고 바람이 분다는 건, 제가 책임지고 견뎌내야 할 몫이 고스란히 남아있는 자리로 돌아왔다는 뜻이라서, 무엇 하나 우연히라도 나아진 게 없고 무엇 하나 운좋게라도 변한 게 없는 그 자리로 시간만 축낸 채 그저 돌아왔을 뿐이라는 뜻이라서, 괜히 심술이 나나봐요. 쓰고서 다시 읽어보니 못됐네요, 저란 놈은.
2. 오랜만에 차를 끌고 출근을 했어요. 왕복 4차로 사거리에 서서 빨간불을 보고 있는데 괜히 서글퍼지더라고요. 이대로 차를 돌려 어디론가 멋대로 떠나지 못하고 마치 끝까지 가야만하는 레일 위에 올라탄 것처럼 사무실을 향해 달려가야 한다는 게 말이죠. 하필 걸어놓은 플레이리스트가 혼자 밤길 운전할 때 트는 노래들이라 더 그랬는지도 모르겠어요.
일을 끝내고 돌아오는 길에도 마찬가지였어요. 네비에 가고 싶었던 카페를 찍고 무작정 달려도 되는데, 막상 돌아올 길이 무섭다는 핑계, 집에 와서 글이라도 써야 한다는 핑계로 그냥 집으로 돌아왔죠. 그래놓고는 커피를 내리고 차에서 듣던 노래들을 계속 이어 들으면서 막상 글은 쓰지 않고 있어요. 저녁 먹고 쓰자, 어차피 내일 사무실 안나갈 생각으로 밤 늦게까지 쓰면 된다 그런 식으로 미루고 있죠.
3. 혜리님은 가끔씩 제 줄글을 보고 AI가 아니냐고 하시는데 그게 저도 나름 신기한 일이에요. 원래 전 글을 쓸 때면 늘 불안해져요. 주술구조가 잘 맞는지, 비문은 아닌지, 수식어들이 많이 끼어들어간 건 아닌지, 딴에는 자연스레 말하듯 쓴다고 하지만 결국은 쉽고 명료하게 쓰는 게 최고가 아닌지 하고 생각이 많아져요. 그러다보면 누군가에게 전하고 싶은 마음은 점점 줄어들고 저 자신이 쓰는 말에 대한 걱정들만 한가득인 글이 되고 말아요.
그런데 혜리님께 말을 걸 때면 나름의 진심이 잘 정돈되는 느낌을 받아요. 솔직히 쓰면서도 '으음 이 정도면 괜찮은데.'라고 혼자서 약간 '뿌듯'해 할 때도 있답니다. (부끄럽군요.)
왜 글이 나름 술술 풀리는 것일까에 대해 저 나름대로 혜리님에 대한 믿음이 생긴 탓이라 생각해요. 판타지적인 설정인데, 얼마전 애니매이션으로도 개봉했던 오컬트 판타지 '퇴마록'에 보면 '영혼의 파장'이란 개념이 있거든요. (정확히 '파장'이라는 단어를 썼는지는 기억이 잘 안나요, 그러나 내용은 비슷해요) 처음 만나는 사람들인데도 잘 맞고, 서로 이해도 쉽고, 심지어 초능력을 써도 부딪히지 않고 시너지를 일으킬 때 소설에서는 '파장'이 맞아서라고 말해요. 당연히 주인공 일행 네 명은 서로 파장이 맞아서 그 기원이 각각 다른 데 있는 마법, 주술을 써도 잘 융합이 되죠. (간편한 설명인데 매력적이죠)
거창하게 파장이나 주파수, 혹은 바이오리듬 같은 걸 끌어오지 않더라도 혼자서 '음, 요즘 나 다운인데' 하고 있으면 혜리님도 글에서 '다운'을 말해주고, 제가 '음, 오늘은 나름 괜찮군' 하면 혜리님도 행복해 보이는 스토리가 올라오기에, 이 정도면 감히 '이해'까지는 아니더라도 '언저리'에는 닿았다고 생각이 들어요. 그 믿음이 조금 더 편하게 말을 하게 해주지 않나 싶어요.
4. 혜리님이 보내주신 노란 꽃은 빛을 잃지 않고 아직까지 잘 지내고 있어요. 푸른 이파리는 아무래도 말라가며 색이 변할 모양이지만 그것도 다 마르고 나면 나름 괜찮아지지 않을까 하고 있어요.
제 책상 위에는 혜리님이 보내주신 책도 있고, 컵도 있고, 독서링도 있고 이젠 꽃도 있네요. 꽃 액자에는 혜리님이 보내주신 문구가 적힌 아이(음, 솔직히 이 아이의 용도는 못찾았다고 뒤늦게 고백을)를 같이 집어넣었는데, 책과 문이 같은 일을 한다면, 어쩌면 꽃도 비슷한 역할을 해줄 거라는 기대 때문이었죠. 다른 꽃은 몰라도 적어도 이 꽃만큼은 볼 때마다 혜리님 생각이 나는 문이 되어줄 거 같아요.
어린왕자의 별에 한 송이 뿐인 장미가 산다면 제 책상에는 하나뿐인 노란 꽃이 피어있는 셈이죠. 그런데 얘는 이름이 뭔가요? 부끄럽지만 진짜 꽃에는 무식 오브 무식쟁이라서요.
5. 제가 쓰는 소설에 사는 혜리 씨는 주인공과 헤어져서 다른 세상으로 갔는데 먼 훗날 중절모에 트랜치코트를 입고 기계곰을 타고 쌍권총을 쏘며 나타날 예정이에요. 이 세상에 사는 혜리님도 나쁜 놈들을, 나쁜 생각들을, 나쁜 기분들을 그렇게 멋드러지게 빵빵 쏴버리시길 빌어요. 내일 아침 문득 기분이 괜찮다 싶으면 혜리 님도 그런가보다 하고 안심할래요. 혹여 혜리님의 마음에 구름이 밀려들면 어디선가 같이 우산을 쓰고 있을 헤비가 있으니 덜 외로워했으면 좋겠어요.
언젠가 우리가 아쿠아리움에서 만나는 날에는 교환일기 말고 아예 다른, 개인적으로는 꼭 소설이었음 싶은데, 뭔가 이 세상에 제대로 된 돌멩이를 던질 작당모의 목적으로 만나면 어떨까 하고 생각해요. '작당모의' 참 좋은 단어에요. 뭔가 적당히 음흉하면서도 적당히 으쌰으쌰하게 되는, 청춘 만화같은 단어라서 말이죠. 쿠데타 세력은 롯데리아에서 모의를 했다지만, 우리는 상어와 가오리가 날고 열대어가 춤을 추는 곳에서 작당모의를 할 테니까 훨씬 거국적인 느낌도 나잖아요.
이런 상상들이 혜리님의 이 밤을 조금이라도 반짝거리게 해주기를 빌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