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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 KBO리그 리뷰 6. ktwiz

헤비의 프레이밍 11

by 헤비

2024년 12월은 깊고 깊은 겨울이었다. 야구가 겨울에는 할 수 없는 스포츠라는 걸 절실히 깨닫는 시간이기도 했다. 겨울이 계속 이어지면 야구는 없다. 야구를 원한다면 몇 지역에 지어올리는 돔구장만으로는 안된다. 겨울을 몰아내야 한다. 그게 야구를 위한 길이다.


눈앞이 캄캄한 정국을 지나가는 와중 서글픈 소식이 들렸다. 너무 안타까운 목숨을 순식간에 많이 잃었다. KIA타이거즈의 팬으로서 프런트 직원 일가족 분들의 안타까운 소식도 충격적이었다. 그들 모두가 같은 그라운드에 모여앉아 각자의 팀을 응원하며 행복하게 웃고 떠들 우리의 이웃들이었던 걸 생각한다. 다시 말한다. 우리 안에 있는 겨울이 끝나지 않으면 야구는 없다. 제주항공 참사 희생자 모든 분들의 평안한 영면을 빌고 유가족 분들에게도 위로의 말씀을 드린다.




1. 선발투수진

KT의 최대 강점이 무엇인가 물으면 머릿속에 바로 선발투수진이라 떠올리는 야구팬들이 많을 거다. 큰 경기에서 강렬한 모습을 여러차례 보여준 장수 외국인투수 쿠에바스를 중심으로 전문가들에게서 '리그를 씹어먹을 기량'이라 종종 평가받은 벤자민, 이 뒤를 '고퀄스' 고영표가 받치고, 신인왕 출신의 소형준과 엄상백, 배제성까지. 이름값 있는 선수들만 늘어놓아도 이미 5선발을 채우고도 남는게 KT의 선발진이다.


물론 여기에서 소형준은 부상으로 장기이탈을 했고, 배제성은 군입대를 했다. 그래도 4선발까지는 채웠다. KBO리그에서 4선발이 확정인 팀도 그리 많지 않다. 이럴때는 보통 5선발 슬롯은 선수육성을 위해 '활용'한다고 표현하기도 한다. 기회를 잡고 튀어올라올 뉴페이스가 있을지도 모른다. 안그래도 투수 육성에 있어서만큼은 KBO리그 최고의 전문가라 분류되는 이강철 감독이 아닌가, 기대해볼만 하다.


그렇게 시작한 시즌인데 많은 부분이 어그러졌다. 시즌 시작을 앞두고 KT와 5년 총액 107억원의 비FA다년계약 잭팟을 터뜨린 고영표는 ABS적응 문제였는지 군 제대 이후 최악의 시즌을 보냈다. 벤자민은 전문가들의 고평가를 무색하게 만드는 기대 이하의 성적만 거두었다. 심지어 쿠에바스는 억지로 버티며 이닝 소화를 해내기만 할 뿐 내용 면에서 계속 들쭉날쭉한 모습을 보이며 KT팬들의 마음을 졸이게 만들었다. 초반에 잠깐 반짝였던 육청명, 원상현 신인 듀오는 결국 신인의 한계를 드러냈다.


이 와중에 그나마 빛난 것이 FA로이드를 맞은 엄상백이었다. 그러나 엄상백의 세부지표 역시 '국내1선발-팀3선발' 정도 수준보다는 팀 4선발 정도의 활약이라 봐야 맞다. 엄상백은 제 몫을 했다. 그 이상이라고 보기는 힘들다. 주변이 제 몫을 못해서 빛난 활약이 되었다는 건 KT 선발진이 예상보다 더 허약했다는 방증이다.




2. 구원투수진

이강철 감독의 불펜 운용은 팬들로 하여금 쓴 웃음을 짓게 만든다. 보통 불펜을 '갈아넣는' 감독은 많다. '누가 지나가면 풀 한 포기 남지 않는다.'는 말을 듣는 감독도 여럿이다. 이강철 감독도 불펜을 갈아넣는 감독이다. 한 시즌을 치르며 구위가 좋은 한 선수를 집중적으로 투입해서 상대를 틀어막는 모습을 자주 보여준다. 당연히 그 선수는 다음 시즌 성적이 떨어지게 마련이다.


그런데 이강철 감독은 자신이 쓸 선수를 직접 키워내는 능력을 보여준다. 그러니 이번 시즌이 끝나면 땅이 초토화된 것처럼 보이는데 다음 시즌이 되면 새로운 풀이 자라는 모습을 보며 팬들은 이걸 두고 뭐라 평가를 해야 하는 건지 혼동을 겪는다.


올해 가장 많이 고생한 선수는 김민과 김민수였다. 이 선수들의 구위가 하락하던 시점에 예전에 고생을 했던 손동현이 다시 살아나 좋은 모습을 보여줬다. 여기에 우규민이 예상외로 안정적인 모습을 보여주며 이강철 감독의 투수를 보는 안목과 운영방법은 무언가 다르다는 걸 확인시켜줬다.


구설수에 휘말린 선수가 성적하락을 겪는 모습은 의외로 자주 보이고, 그로 인해 은퇴까지 이어지는 경우도 종종 있다. 구설수에 휘말린다는 건 맨 몸으로 벌판에 던져지는 거나 다름이 없다. 자팀 팬들이 그를 향해 날아드는 화살을 가려주지 않는다. 피투성이가 되어도 팬들은 그를 거들떠보지도 않는다. 왜 추하게 구냐며 도리어 '저거 치워버려'를 외치는 경우가 다반사다. 난 그게 이상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박영현은 성적으로 구설수를 이겨냈다. 하지만 아직 꼬리표는 달려있다. 모든 선수가 언제까지고 성적이 좋을수만은 없다. 선수생명은 인생보다는 무조건 짧다. 그러니 앞으로 좋은 처신으로 좋은 선수의 모습을 계속 보여주길 바란다. 성적으로만 모든 것을 덮을 수 있다고 생각해서는 안된다. 구설수는 야구장 밖에서 일어난다. 야구장 밖에서의 일도 앞으로는 더 신경써야 한다. 가리라는 말이 아니다. 봉사활동, 유소년 교육활동 같은 것들을 더 열심히 해서 바른 생활을 보여주길 바란다. 붙은 꼬리표를 떼는 데는 더 많은 노력이 필요할 것이다.




3. 공격 부문

김도영만 아니었어도 MVP 레이스를 벌였을 로하스는 여전히 이름에 걸맞는 활약을 보여줬다. 하필 일본에서 실패하고 돌아온, 나이가 꽤 찬 선수라 로하스가 미국에도 안 가고 일본에도 안 갈 거라는 사실은 나머지 9개구단 팬들을 절망하게 만들었다. 로하스 같은 선수를 보면 외국인선수 관련한 특별룰이 생겼으면 좋겠다. 7년 이상을 뛴 선수라고 하면 현재는 3명 보유, 3명 출전인데 보유에서만이라도 풀어주면 어떨까? 외국인선수도 충분히 프랜차이즈 스타가 될 수 있다. 팀에는 스타가 많을 수록 좋다. 그게 야구 전체를 살리는 길이다.


포수마스크를 쓰고 행복해했던 강백호는 올 시즌 ABS의 최대 수혜자다. 물론 나는 강백호가 포수를 하지 않고 지명타자만으로 30홈런 이상을 쳐주는 게 더 낫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하지만 강백호가 포수마스크를 썼어야 했을만큼 KT위즈의 백업포수진은 허약했고, 강백호의 수비포지션 문제도 만만치 않았다. 꼭 포수일 필요도 없다. 좌익수도 괜찮고, 1루수도 괜찮다. 강백호는 수비를 '할 수'만 있으면 FA시장에서 100억은 가볍게 넘기는 타자다. 문제는 그 어디서도 합격점을 못 받았다는 데 있다. 포수 포지션은 몇가지 난제를 안고 있다. 강백호를 포수로 쓰는 순간 체력저하로 인해 타격 생산성은 무조건 떨어지게 되어 있다. 동시에 부상 위험도 급격하게 늘어난다. 아무리 ABS로 포구 난이도가 줄어들었다고 한들, 강백호가 포수로 뛰는 경기가 늘어나는 게 단기적으로나 중장기적으로나 과연 맞는 방향인지 의문이다.


시즌 초반 천성호의 반짝 활약이 있었지만 2루 수비 불가 판정을 받으며 사라졌고, 심우준의 제대와 함께 2루는 김상수가 메웠지만 내년에는 도로 김상수가 유격수로 이동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난 배정대가 있는 한은 그가 붙박이 1번을 놓치지 않을 거라 생각했는데 배정대가 하위로 내려가자 테이블 세팅을 해줄 선수가 김민혁 밖에 남지 않았다. 박병호를 트레이드 해도 괜찮겠다 싶을만큼 좋아진 모습을 보여줬던 문상철은 전체적으로는 붙박이 1루수라고 하기에는 아쉬운 스탯을 남기며 시즌을 마무리했다.


최악의 시즌을 보낸 건 단언코 황재균이다. 하필 2024 KBO리그는 3루수 전성시대였다. 김도영을 필두로 최정, 송성문, 김영웅, 문보경 등등 클린업트리오에 들어가거나 상위타선이거나 아무리 못해도 6번에서 상대에게 쐐기를 막는 역할을 하는 선수들로 채워졌다. 하지만 황재균만큼은 일년 내내 그 역할을 못했다. 황재균의 부진이 KT타선을 허약하게 만들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개인사가 있어서 운동에 전념할 수 없었을 것으로 보이지만, 결국 프로는 성적으로 말한다. 황재균은 연차가 적은 선수도 아니다. 더 이상 부진하면 실상 갈 곳은 뻔하다.




4. 주루, 수비 부문

KT 위즈 주전 야수들의 평균연령이 은퇴선수들로 이루어진 최강야구보다 높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직접 계산해본 적이 없으니 맞는 이야기인지까지는 모르겠으나, 수치를 보면 주전 야수들의 노쇠화가 드러난다. 얼핏 보면 안정적으로 보이지만 실상은 소극적인 거다. 수치가 전반적으로 중하위권이다. 소극적인 태도는 키움 히어로즈에서도 느껴지는데, 그 팀은 젊기 때문에 언제라도 팀 컬러를 바꾸려고 시도할 수 있는 반면, KT는 그런 가능성조차 보이지 않는 것이 문제다.




5. 총평


KT위즈는 KBO리그 최초로 열린 5위 타이브레이크에서 SSG랜더스를 이겼고, 이후 열린 와일드카드 결정전에서 역시 KBO리그 최초로 4위인 두산베어스를 2연승으로 꺾는 파란을 일으켰다. 심지어 준플레이오프에서도 3위인 LG트윈스를 5차전까지 몰아붙이며 명승부를 펼쳤다. 위즈의 가을야구는 언제나 팀 이름처럼 마법을 불러일으키는 느낌이다.


그러나 시즌이 시작되기 전으로 돌아가보자. KT위즈를 우승후보로 말하는 사람이 많았다. 적어도 디팬딩챔피언인 LG, 최상급 전력을 갖췄다고 평가받은 KIA와 함께 KT는 3강에 꼽혔다. 그러나 KT는 5강 언저리를 맴돌았을 뿐 한 번도 제대로 치고 올라오지 못했다. 최하위에서 2위까지 올라왔던 2023시즌을 재현하는데도 끝내 실패했다.


KT위즈는 마법사 군단이지만 우리네 세상엔 마법이 없다. 마법처럼 보이는 마술은 존재한다. 대신 마술에는 실질적인 재료가 필요하다. 모자 안에 비둘기를 미리 숨겨둬야 하고, 소매 속에 여분의 공을 집어넣어야 하며, 가끔은 무대 위로 불러올리는 관객과는 미리 조율이 되어있어야 한다. KT위즈에게 조금 더 좋은 재료들이 갖춰져 있었다면 어땠을까 싶다. 그게 어려울 수 있다. 그럼 당장 있는 재료들을 미리 아껴둘 수는 없었을까? 초반기에는 어려움을 겪다가 후반기에는 늘 치고 올라가는 듯 보이는 KT위즈 특유의 색깔은, 우연한 게 아니라 그 전 시즌 무리했던 여파를 매년 반복하고 있는 것 뿐 아닐까?

막내 팀을 여기까지 끌고 온 팬들이야 말로 진정한 마법사다

난 KIA타이거즈의 팬으로서 KT 이강철 감독을 볼 때 '우리 팀 레전드'라는 렌즈를 빼고 볼 수가 없다. KBO리그의 막내 구단을 빠른 시간에 강팀의 반열로 올려놓고 우승까지 시킨 건 대단한 업적이라고 나부터 나서서 주장하고 싶다. 하지만 지난 2년은 결과적으로 아쉽다. KT는 바뀌어야 한다. 마법사가 마술을 보일지, 진짜 마법을 부릴지 알 수는 없지만 지금까지와는 다른 레퍼토리를 가지고 나와야 한다. 아무리 스릴 넘치는 이야기라도 세 번 반복되면 모두가 결말을 안다. 그건 무대에 서는 사람으로서의 직무유기다.

https://youtu.be/my3RvhgBXiE?si=mWVz89rC8e_zLK7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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