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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랜 B가 있는 삶

by 생각잡스 유진



우리 집은 플랜 B가 있는 집이다. 뭔가 실패했을 때 세상이 끝난 것처럼 무너져 주저앉는 대신, 돌아서서 다음 길로 설 수 있는 힘을 기르고 있는 집이다. 실패는 늘 낯설지만 실패한 자신에게도 너그러워지는 그런 마음이 우리 가족 안에는 흐르고 있다.

그렇게 되길 바래서 도전과 시도를 끊임없이 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실패로 좌절하지 않고 다른 시도를 하는 모습을 보여주면서 말이다.


아들이 피아노 입시를 시작했다. 매일 정해진 시간에 앉아 연습한다. 주말에는 새벽 6시에 집을 나서는 모습에 가슴이 뭉클해지기까지 한다. 작은 등이 얼마나 많은 걸 짊어지고 있는지 아니까 더 그러하다. 입시는 백일 계획이다. 10월 초면 결과가 나온다. 노력한 것에 비해 좋지 않은 결과가 나왔을 때 실망한 얼굴을 보게 될까 사실은 조금 두렵다. 괜시리 도전을 시켰나하는 마음도 스쳐지나간다.

좋은 결과가 나오면 기쁘겠지만, 그렇지 않더라도 아이가 너무 낙심하지 않길 바란다.


우리에게는 플랜 B가 있다. 또다른 길이 있다는 걸 아는 집이다.


세상에는 단 하나의 길만 존재하지 않는다. 계획한 대로 되지 않을 수도 있고, 기대한 결과가 아닐 수도 있다. 중요한 건 우리가 어떤 실패든 감당할 수 있는 마음의 근육을 길러간다는 것이다. 그런 분위기의 집이 되길 바란다.


큰딸은 미술에 올인하고 있다. 예고를 목표로 중학교 입학과 동시에 학업과 그림을 병행하느라 피곤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다. 안쓰러운 마음이 가득하지만 원하는 목표로 걸어가는 있는 딸아이를 조용히 응원할 뿐이다. 때론 이 길이 아닌 것 같다고 느끼는 날도 올 수 있고, 큰 실패처럼 느껴지는 벽을 만날 수도 있을 것이다. 내가 그랬던 것처럼 말이다.

그때 딸아이도 크게 죄절하지 않기를 바란다. 인생은 늘 계획대로 움직여주는 것이 아니란 걸 알아차린 먼저 어른이 된 엄마의 마음이다.


아이들에게, 그리고 나 자신에게 자주 말한다.

"플랜 A에 최선을 다하되, 플랜 B를 두려워하지 말자."

A가 안 되었다고 인생이 끝난 게 아니니까. A가 안 되었기에 B라는 새로운 문이 열린 거라고. 그 문 너머에는 생각지도 못한 인생이 펼쳐질지도. 우리는 그런 과정을 즐기는 사람이 되는 것이다.

실패는 가끔 또다른 방향을 알려주는 이정표이기도 하다. "여긴 아니구나." 그걸 알게 해주는 것만으로도 실패는 값지다. 그리고 그 실패를 통해 우리는 '다른 나'를 만나게 된다.


플랜 B가 있다는 건, 그만큼 우리의 인생이 재밌어진다. 하나의 꿈에 전부를 걸지 않아도 되는 삶. 하나의 길이 막혀도 돌아서 다른 길을 찾을 수 있는 여유. 우리 집은 그런 집이길 바란다. 실패와 친하고, 변화에 덤덤한 집. 무너질 수도 있지만, 언제든 다시 일어설 수 있는 집. 아이들도 그런 마음을 품은 어른으로 자라나길 바란다.

나는 오늘도 아이들에게 말한다. "괜찮아, 우리는 플랜 B가 있는 집이야."


너희가 어떤 길을 선택하든, 그 옆에서 함께 걸어간다. 부모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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