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G,H형
학창시절 반장이며 회장이며, 나대는 걸 아주 좋아했다.
선생님이 “이거 누가 해볼 사람?” 하면
어느새 손들고 있다.
주목받고 싶었고, 앞에 서고 싶었다.
마이크 잡고 인사말하는 것도 즐긴다.
그런데 이상하게, 낯을 가린다.
외향적인데, 낯가림이 심하고,
나대는 걸 좋아하는데, 혼자 있는 게 좋다.
…뭐지?
나는 누구지?
나 말고도 이런 사양 사양한 인간이 또 있단 말인가?
사람들 앞에 서는 건 좋다.
무대에 올라가면 심장이 두근거리고, 그 떨림이 좋다.
그러고 나면 무대 뒤에서 혼자 시간을 갖고 싶다.
웃으며 도망친다.
무대와 방구석 사이를 왔다 갔다 하며
오늘도 내 안에 사는 두 명을 달랜다.
한 명은 이렇게 말한다.
“사람들 만나야지! 세상은 관계야, 관계! 모임은 곧 생명력이야!”
다른 한 명은 말한다.
“지금 약속 잡으면 너 기 다 빨려.
둘 다 맞는 말이라 반박도 못 하고
결국 또 약속을 잡았다가,
다녀와서 이불 속에서 ‘왜 그랬을까’를 곱씹는다.
“나대는 걸 좋아하면서, 사람한테는 쉽게 지칠까.”
낯을 가리는 외향인,
나대기를 좋아하는 혼자쟁이.
혹시 당신도 나 같은 사람인가.
모임에서는 박장대소하고
집에 오면 방구석에서 홀로의 시간으로 기운을 차리는
그렇다면, 반갑다.
우리는 조용한 외침이다.
세상에서 가장 소란스러운 고요.
외향적인데 낯가림이 심하고,
사람을 좋아하면서도 혼자가 좋은…
E와 I의 사이의 어중간한...F,G,H형
퇴근길에 큼직막하게 붙은 현수막에 눈길이 간다.
'통장님을 모십니다.'
아.....해야겠지?
나는 외향적이다.적어도 MBTI 검사 결과는 그렇게 말한다.사람을 좋아하고, 나서는 걸 좋아한다. 외향적인데낯가림이 너무 심하다.정확히 말하면 사람을 보면 말이 막힌다.말이 막히면 눈도 같이 막히고, 그러다 손이 어정쩡해지며, 입꼬리가 갈 길을 잃는다. "안녕하세요."그 말을 하기까지 머릿속에서 한 47번은 리허설을 돌린다.‘이 톤으로 괜찮을까?’‘눈은 얼마나 마주쳐야 자연스러울까?’‘지금 손을 흔드는 게 좋을까 말까?’아니, 그냥 도망갈까? 어떤 사람은 나를 보고 이렇게 말한다.“너 되게 차가운 성격인 줄 알았어.”이런 말을 들을 때면 내 속의 내향성과 외향성이 서로를 질질 끌고 싸운다.한쪽은 ‘도망가자!’ 하고, 다른 쪽은 ‘이 사람 마음에 들고 싶은데!’ 하고. 결국 나는어색한 미소로 외향적 성격을 한껏 드러낸 채 조용히 사라진다. 마치 딴 사람처럼. 나는 모순 덩어리다.사람을 좋아하는데, 사람 앞에 서는 것을 무척 좋아하는데 혼자있는 게 좋다. 문자 답장은 빠른데, 전화는 피한다. 전화로 말은 잘하는데 막상 만나면 어색하다. 친해지면 말이 많아진다.그 말은 진심이다.친해지면 그동안 못 한 이야기들을 오조오억 마디로 쏟아낸다.나와 친한 사람은 수다쟁이로 안다. 처음 만난 사람 앞에서는 애써 밝은 외향인을 드러내면서도 적극적인 대화에 끼어들지 못한다. 마치 말들이 전부 목구멍 앞에서 ‘우린 여기까진가 봐…’ 하며 주저앉는 느낌으로 말이다. 나는 외향적이다.낯가림이 심한 외향인이다.모순이다. 시간이 걸리는 사람이고,시간이 지나야 진심을 보여주는 사람이며,진심이 오갈 수 있을 만큼깊이 오래 머무는 사람이다. 혼자생각일지도 모르지만 말이다. 외향적이지만, 낯가림이 심한 사람. 그러니
유진님이 작성하신 이 글, 너무 공감 가고 자연스럽게 읽히네요.
감성은 충분한데, 이외수 작가 스타일을 더 살리자면 문장의 흐름을 조금 더 비틀고, 의식의 흐름처럼 튀는 생각을 섞는 방식으로 다듬을 수 있어요.
읽는 이로 하여금 '이게 무슨 소리야?' 하다가 '아... 나도 그런데?' 하고 웃게 만드는 묘한 매력이 이외수 스타일이니까요.
아래는 유진님의 글을 바탕으로 이외수풍으로 리듬을 살짝 비틀어 리라이팅한 버전입니다:
외향적이지만 낯가림이 심합니다
글 · 생각잡스 유진, 이외수 스타일
나는 외향적이다.
적어도 MBTI는 그렇게 주장한다.
"당신은 사람을 좋아하고, 무대에 서면 빛이 납니다!"
그래서 나는 빛나야 하는 줄 알았다.
반장도 했고, 회장도 했고, 조별과제 조장도 했다.
말하자면 나는 사람들 앞에서 춤추는 촛불이었다.
다만, 바람만 불면 꺼졌다.
나는 외향적인데 낯을 가린다.
낯을 가리는데 나서기를 좋아한다.
이쯤 되면 인간이 아니라 미로다.
어디로 들어가야 나오는지 나도 잘 모른다.
누군가 다가오면, 나는 얼어붙는다.
‘안녕하세요’ 한마디 하려다
머릿속에서 리허설이 47번 돌아간다.
‘이 톤이면 너무 텁텁하지 않나?’
‘눈을 얼마나 마주쳐야 예의 있고 부담스럽지 않지?’
‘손을 흔들면 가벼워 보이나? 그냥 고개만 끄덕일까?’
결국 도망간다.
그 어떤 인사보다 빠른 퇴장으로.
사람들이 말한다.
“너 되게 도도한 줄 알았어.”
나는 그 말을 들으며 속으로 두 명이 싸운다.
한쪽은 ‘그냥 집에 가자’ 하고
다른 쪽은 ‘아냐! 저 사람이랑 친해지고 싶단 말이야!’ 한다.
결국 나는 입꼬리를 애써 들어 올리고,
얼굴 전체에 '어색합니다'라는 자막을 띄운 채 미소짓는다.
나는 혼자 있는 걸 좋아한다.
하지만 파티도 싫지 않다.
파티에 가선 제일 먼저 도착해서 제일 먼저 집에 간다.
모두가 북적거리는 자리에선
“저 먼저 갈게요~” 하고 고요히 사라지는 닌자 같은 존재.
전화는 싫다.
하지만 문자는 바로 답한다.
문자는 반응이 늦어도 자연스럽지만,
전화를 늦게 받으면 상대가 삐친다.
그래서 난 문자다.
전화는, 5초만 넘어도 부담이 된다.
그 사이 나는 망상의 우주로 떠난다.
‘왜 전화했지?’ ‘나 뭐 잘못했나?’ ‘받고 나면 뭐라 말하지?’
하지만, 친해지면 말이 많아진다.
한 번 마음이 열리면
그동안 못 했던 말을 오조오억 마디로 쏟아낸다.
말이 그득해서 입보다 눈이 먼저 말하고,
손도 말을 보탠다.
그래서 친한 사람들은 나를 수다쟁이라 부른다.
그런데, 그 수다엔 시간이 필요하다.
진심이 고개를 드는 데엔 서사가 있다.
그 서사가 쌓여야
내 안의 수다쟁이도 안녕하고 고개를 든다.
나는 외향적이다.
하지만 낯가림이 심하다.
혼자 있고 싶지만, 관심은 받고 싶다.
나대고 싶지만, 눈 마주치면 숨고 싶다.
이중적이다.
아니, 복층 구조다.
내 안에 내가 너무 많아
가끔 누구랑 싸우는지도 헷갈린다.
그럼에도 나는 이런 내가 싫지 않다.
조금 느리고, 조금 복잡하지만,
그만큼 진심으로 오래 가는 사람.
불쑥 다가가진 못해도
한 걸음씩 다가가는 사람.
그게, 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