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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멸

by 생각잡스 유진


나는 없다.
이 세상에 나는 없다.
나는 내가 없을 때 가장 깊다.

가장 넓다.

소멸은 사라짐이 아니다.
경계가 흩어지고,
형체가 풀리고,
‘너’와 ‘나’가 섞이고,
모든 것이 하나의 숨처럼 퍼지는 일.

사라졌다고 말하는 순간,
나는 더 많은 곳에 머물게 된다.


나는 없다.
그래서 어디에나 있을 수 있다.

존재를 움켜쥐려 할수록
작아지고 좁아지고 단단해진다.

내려놓고, 부서지고, 사라지면
나는 이내 넓어진다.


모든 것을 겸허히 받아들인다.

나는 없다.

그것은 비로소 자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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