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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 것도 아닌 일이 별이 되는 일상

by 생각잡스 유진

인생이란 게 가만 보면, 거대한 드라마가 아니라 쪼그만 장면들의 연속이다.



세상은 그 조각들 사이로 나를 부른다.


전자레인지가 ‘띵’ 하고 멈출 때, 그 뒤에 오는 진공 같은 고요가 있다.

현관 번호키가 ‘삑’ 하고 풀리면, 문틈으로 저녁이 들이닥친다.
배달 앱은 화면 위로 뜨거운 김을 내뿜듯 알림을 올려보낸다.
“주문하신 평범함이 도착했습니다.”
나는 영수증을 접어 포켓에 넣고, 오늘을 조용히 영수(領受)한다.


세탁기가 마지막 회전을 끝내고, 건조기가 ‘띠리링’ 노래를 부른다.
따뜻한 공기 속에서 수건은 구름처럼 불어나고, 내 마음은 그 위에 잠깐 눕는다.
천으로 된 것들도 쉬는데, 사람이라고 늘 팽팽할 필요가 있을까.


마트 계산대에서 흘러나오는 옛 노래가 발목을 잡는다.
가사는 뻔하고 멜로디는 오래됐는데, 가슴은 새것처럼 저민다. 질리지도 않는다.
노래가 나를 붙드는 게 아니라, 내가 노래를 붙잡고 싶어하는 걸지도.
붙잡을 수 없는 것들을 우리는 자꾸 흥얼거린다.


어제의 내가, 그제의 내가, 잊은 줄 알았던 내가 살아 난다.






누군가 “수고했어요” 하고 건넨다.
쥐고 있던 무게가 그 말 한마디에 반으로 줄어든다.
말은 가벼운데, 의미는 묵직하다.

별것 아닌 말이, 별것 같은 사람을 만든다.



어릴 때는 사탕 하나 떨어뜨려도 울었다.
세상은 손바닥만 했고, 감정은 버튼만큼 단순했다.
지금은 손바닥보다 큰 세상에서, 더 작은 것들에 요동친다.
사탕은 덜 달아졌지만, 초콜릿보다 더 진한 씁쓸함을 아는 나이가 됐다.



크게 이룬 건 없지만 크게 무너지지도 않은 하루.
영웅담 대신 생활담으로 버틴 하루.

기적은 대체로 이런 모양새다.


내일도 분명 그러리라.

그 별 거 아닌 작은 조각들 앞에서 마음이 또 저려올 것이다.
사람이 단단해진다는 건, 딱딱해지는 게 아니라 미세한 것들을 더 잘 느끼게 되는 일인지도 모른다.


큰 파도만 기다리던 감각이, 물컵 표면의 작은 물결도 알아차린다.
우리는 그렇게 사소함의 신호로 살아남는다.


생각해보면 ‘별것 아닌 일’은 별이 없는 일이 아니다.

별이 너무 촘촘해서 한데 모아보면 하늘이 되는 일이다.
오늘도 그 별들을 줍는다.


흘리지 않으려고, 잊지 않으려고 한 가득 담아본다.
내가 살아 있었다는 증거를 내일의 나에게 전달하려고.
그저 별것 아닌 일들을 꼼꼼히 포개어 잘 건네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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