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김주완 지음, <줬으면 그만이지>

북도슨트 북에세이 ①

by 생각잡스 유진

무재칠시 — 주다의 본질에 대하여

바라지 않음의 품격, 어른이라 불린다.




‘주다’는 동사이지만, 형용사처럼 느껴지는 말이다.
움직임보다는 상태에 가깝고, 행위라기보다 마음의 방향에 더 닿아 있다.
누군가에게 무언가를 ‘준다’는 건 사실 그 사람을 향해 내 마음이 흘러가는 일이다.
행동보다 먼저 마음이 움직이고, 그 움직임이 상대에 닿을 때
비로소 우리는 주다의 마음이 함께 한다.




무재칠시(無財七施) , 재물이 없어도 베풀 수 있는 일곱 가지 나눔.

“준다면 그걸로 충분하다.”
책 속 그 한 문장은,
무재칠시의 가르침과 정확히 같은 자리에 서 있었다.

진정한 나눔이란 물질이 아니라, 마음이 향하는 방향이다.

그 마음은 ‘되돌려 받음’을 전제로 하지 않는다.


오래전부터 ‘주는 삶’을 동경했다.
큰 꿈도 품고 있었다.
배움의 벽 앞에서 힘겨워하는 아이들,
자기 길을 찾지 못해 방황하는 청소년들을 위한 대안학교를 만들고 싶었다.
그건 서른을 넘기며 마음속에 자란, 나의 오래된 이상이었다.

아마도 할아버지의 영향일 것이다.
모두가 어려웠던 시절, 돈이 될만한 토지를 국민학교 부지로 선뜻 내어주시며
아이들이 먼길 걸어다니지 않고 동네에서 공부할 수 있게 하셨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나도 그렇게 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누군가에게 먼저 가진 것을 내어주고, 길을 내어주는 삶.
그게 내가 품은 ‘주다’의 모습이었다.


현실은 이상보다 팍팍했다.
삶은 여유롭지 않았고, 나눔은 점점 미뤄졌다.
‘가진 게 없어서 나눌 수 없다’는 말은
언젠가부터 내게 익숙한 변명이 되어 있었다.
쓸 곳에 다 쓰고 나면 남는 게 없다는 이유로,
나는 나눔을 나중으로 미뤘다.


책의 말미에서
무재칠시라는 단어를 다시 만났다.
마음을 어우러주는 말 한마디, 따뜻한 눈빛 하나, 자리 양보, 따뜻함 마음, 가진 게 없어도 줄 수 있는 게 이렇게나 많았던 것이다. 나눔이란 거창한 일이 아니었음을 일상의 작은 것에서부터 시작할 수 있음을 일깨워준다.


“이만큼 해줬으니, 이제 나를 이해해주겠지.”
“이렇게 베풀면, 좋은 사람이라 여겨지겠지.”
그 마음속에는 늘 ‘받고 싶은 마음’이 숨어 있었다.
순수하게 주었다고 믿었지만,
사실은 작게나마 보답을 기대하고 있었다.


책을 읽으며 그 사실이 부끄러워졌다.

작은 돈의 기부를 시작하며 상징으로 현판을 사업장 입구에 내다 걸었던 손마저 부끄러워진다.


주는 것은 자유로워야 한다. 받지 못해도 괜찮을 만큼의 자유를 지니고, 그것이 어른의 마음이라는 것을 가르쳐준다.

어른이 된다는 건


설명하지 않고, 이해받지 않아도 괜찮다고 말할 수 있는 사람.
자신의 마음을 세상에 흘려보내되,
그 마음이 어디에 닿는지를 집착하지 않으며 그저 흘려보내는 것으로 족하다는 사람.

‘바라지 않음의 품격’, 어른이라고 부르고 싶다.

'줬으면 그만이지' 는 삶의 자세를 이야기하는 책이라는 생각이 든다. 어떤 명언의 책들보다 깊은 울림이 있었다. 그리고 배우려는 나도 있었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금요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