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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지우, 사람을 남기는 사람

북도슨트 세번째

by 생각잡스 유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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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흔, 관계를 다시 배우다


마흔이 되자 이상한 일이 벌어졌다. 젊었을 때는 친구가 많다고 생각했는데, 정작 힘들 때 전화할 사람이 손에 꼽힌다. 전화번호 친구 목록은 500명이 넘지만, 새벽에 "지금 술 한잔할래?"라고 물을 수 있는 사람은 없다.

20대에는 친구를 사귀는 게 숨 쉬는 것만큼 자연스러웠다. 학교, 동아리, 직장. 특별히 노력하지 않아도 사람들이 내 주변에 있었다. 30대에는 바빴지만 그 속에는 친구라는 이름으로 자리를 지켜주는 사람들이 몇 있었다.

시간이 흘렀다. 결혼도 하고 육아도 하느라 정신없이 세월을 넘기고 있다. 그리고 마흔이 넘는 나이. 문득 돌아보니 혼자였다.

작가는 이렇게 고백했다. "나는 관계에서 숱한 실패를 한 사람이다. 시절마다 친하게 지낸 사람들은 있었지만 어느 날 혼자만의 골방으로 들어가곤 했고, 쌓았던 관계들은 추풍낙엽처럼 흩어져버렸다."

이 문장을 읽는 순간, 나는 내 이야기를 대신 써 내려간 줄 알았다.


마흔에 관계가 어려운 건 스스로가 쳐둔 벽때문인지도 모른다. 젊을 때는 서툴러도 괜찮았다. 실수해도, 창피해도, 다시 만나면 그만이었다. 이제는 다르다. 나름 나이도 먹고, 위치도 있고, 지켜야 할 체면도 있다.

벽이 높아질수록 관계는 멀어진다. 상처받을까 봐 먼저 문을 닫는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문을 닫으면 닫을수록 사람을 기다리고 있다.






타인은 수수께끼다

나이가 들면 흔히 하는 착각들이 있다. “다 안다.”

"저 사람은 원래 그래", "어차피 변하지 않을 거야", "뻔해." 우리는 섣불리 타인을 판단하고, 범주화한다. 단단한 벽을 더 견고하게 만든다.


정말 그럴까? 10년을 함께 산 배우자조차 어느 날 전혀 몰랐던 면모를 보일 때가 있다. 그리고 변화되는 모습도 보인다.


섣불리 타인을 다 파악했다고 믿는다거나, 그에게 궁금해할 것도 없다거나, 나아가 내가 나 자신을 명확하게 안다고 믿는 그 오만을 경계해야 한다. 그 수수께끼를 지켜내는 것, 타인을 비밀스러운 존재로 두는 것 자체가 타인을 사랑하는 일이다. – 작가의 말





이중성을 견디는 법

사람관계에서 가장 견디기 힘든 점은 이중성이다. 앞에서는 웃으며 좋다고 하다가 뒤에서는 험담을 한다. 회의 때는 찬성하더니 나중에는 "나는 원래 반대였다"고 한다.

사람이 타인의 이중성을 극도로 견디기 힘들어하는 이유는 사람의 마음 가장 깊은 곳에 있는 것이 타인을 '믿고 싶은' 마음이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우리는 본능적으로 일관성을 원한다. 예측 가능한 관계, 배신하지 않는 사람, 변하지 않는 우정 같은 것을 말이다. 살아보니 그리 단순한 게 세상이 아니다. 사람은 상황에 따라 변하고, 다르게 행동한다. 생존 전략이다.

스스로의 인생조차도 장담을 할 수 없는 게 삶이다.


사람은 완벽하지 않다. 그럴 수 있는 존재기에 사람이다.

나도, 당신도. 우리는 때로 비겁하고, 이기적이고, 모순적이다. 인정하고 그대로를 바로볼 때 관계는 현실이 된다.


내가 언제든 틀릴 수 있고 세상에는 다양한 관점이나 가치관이 존재할 수 있다고 믿는 것은 이상적인 좋은 관계에 무척 중요하다. 관계는 내가 절대 옳다는 확신을 얻기 위해 맺는 것이 아니다.


젊을 때는 친구와 의견이 다르면 어떻게든 아득바득 설득하려 했다.

"내 말이 맞아, 네가 틀렸어."

설득되지 않으면 분해서 잠을 못 이룰 때도 있었다.

이제는 다르다.

의견이 다른 건 관계의 끝이 아니다. 서로 다르기에 배울 게 있고, 다르기에 흥미롭다.

그의 입장에는 나름의 논리와 경험이 있다. 설득할 필요도, 나를 바꿀 필요도 없다. 우리는 같지 아니하다란 전제.


나이가 들어갈수록 관계는 양이 아니라 질이 중요하다는 것을 알아간다. 수백, 수천의 지인보다는 나를 알아주는 한 두 명이 소중하다.





혼자인 줄 알았는데, 사실은 혼자일 수 없다. 우리는 누구나 때론 관계를 지긋지긋해하며 고립을 바랐다가도, 금세 누군가를 찾는다.

살아가는 동안은 늘 관계를 다시 배우는 나이다. 젊을 때의 가벼운 우정도, 30대의 실용적인 네트워크도 그리고 인정하는 관계의 편안함을 배워나가는 나이 모두가 소중한 공부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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