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님의 월동 준비

by Rita

오랜만에 본가에 왔다. 뉴욕에서 부모님 집은 비행기로 한 시간 남짓한다. 부모님은 아직도 나의 어린 시절을 보낸 작고 조용한 미국 시골 마을에 25년째 살고 계신다. 너무 한적해서 해가지면 아직도 가로등 하나가 길에 잘 없는 곳이다. 미국 북부에 있어 일 년에 2/3은 하늘이 어둡고 추운 날씨가 긴 곳이다.


공교롭게도 첫눈이 오는 오늘 부모님은 월동 준비에 한창이셨다. 창문 틈으로 들어오는 찬바람을 막으려고 비닐 작업을 하고 계셨다. 그 비닐 하나 붙이는 데도 정겹게 티격태격하시는 광경이 오늘따라 유난히 정겨웠다.


부모님의 월동 준비를 보며 나는 뜻밖에 시간의 소중함을 깨달았다. 우리 집 관식이와 애순이의 계절이 벌써 한참 전부터 늦가을을 지나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

통계상 이들과 함께해 온 시간보다 앞으로 남은 시간이 짧아지고 있다는 걸 미처 알지 못했다. 당신들의 오늘이 가장 젊은 날이기에 이 긴 호흡 속에 매 순간이 너무 소중하고 행복했다.


삶은 생각보다 정말 짧구나. 어린 날 미국에 이민온 첫날이 아직도 생생한데 벌써 25년이 훌쩍 지나버렸다.

내 나이쯤 이 낯선 땅에, 한국인이 드문 이 시골 마을에 와서 그들은 어떻게 모든 불안과 외로움을 견디셨을까?


지금 돌아보면 너무나 젊은 나이에 아무 연고 없는 땅에 와서 어린 자식들을 키워내셨을까? 불확실 속에서 해나가야 하는 선택이 가장 어렵다. 나의 부모님은 수없이 펼쳐지는 불확실 속에서 확신을 만들어 가셨다.


그들의 봄은 잘 알지 못하지만 찬란한 여름빛 가운데 나라는 존재를 세상에 나오게 해 주셨다. 그 고귀한 세월을 아버지로, 어머니로, 가장으로, 주부로, 회사원으로, 요리사로 그렇게 충실히 보내시다. 내가 여름을 맞이하려니 그들의 세상은 겨울이 되고 있었다.


정신없이 인생에 여름방학을 지날 땐 알지 못했다.

내 인생이 찬란해지는 만큼 당신들 세상에 해는 져물어 가고 있다는 것을.


나 또한 늦여름을 맞이하려니 그들의 월동 준비가 보이기 시작했다. 참으로 따뜻하고 평온한 겨울을 같이 맞이하기를 소망하고 또 소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