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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구보다 허구적인, 비현실보다 비현실적인

by 행복한독서

파라-다이스

정주하, 백민석, 황모과 지음 / 216쪽 / 25,000원 / 연립서가



동일본에 대지진과 쓰나미가 덮친 날, 나는 인천터미널 대합실에서 텔레비전을 보고 있었다. TV에선 재난 현장을 전하는 뉴스가 보도되는 중이었다. 파도가 방파제를 넘어 마을을 도로를 논밭을 덮치고 있었다. 이어 원자력발전소 사고 소식이 들려왔다. 낯설고 기이하고 비현실적인 감각뿐인 그날의 장면은 되풀이 떠오르곤 했다.


며칠 후 지인을 통해 한 명의 활동가가 후쿠시마로 떠났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 소식은 한동안 귓전을 맴돌았다. 그의 안부가 궁금했지만 이후 소식을 듣진 못했다. 나에게 후쿠시마는 이 두 장면으로 연결되어 있다. 그러한 일은 왜 일어나야 했을까? 그러한 행위는 어떻게 가능한 걸까? 현재의 후쿠시마를 담은 『파라-다이스』를 읽는 동안 나는 14년 전의 장면과 함께하였다.


서경식과 정주하는 사고 3개월 후 후쿠시마로 갔다. 증언자로서 이들은 글과 사진을 남겼다. 그 여정은 지속되었고 ‘사진소설집’ 성격을 띤 이 책의 출간으로 이어졌다. 『파라-다이스』는 정주하의 사진에서 시작되었다. 그의 사진을 원재료 삼아 백민석과 황모과가 소설을 집필했다. 정주하는 2011년 이후 매해 빠지지 않고 후쿠시마에 갔고 사진을 남겼다. 사진집이기도 한 이번 책에서 인상적으로 등장하는 피사체는 희망목장의 소들이다. 대지진 이후 십수만 명이 집을 떠나 살길을 찾아나섰지만 그곳의 동물들은 버려지거나 살처분되어야 했다. 그중 우연히 살아남은 목장의 소들이 있다. 소와 함께 숲속 칡넝쿨, 나무뿌리, 오염토, 방사능 오염수를 흘려보낸 바닷가, 그 해변에서 윈드서핑을 하는 이들이 그의 카메라에 들어와 있다. 셔터를 누르는 순간 멈춘 숨이 사진에 배어있다. 격렬한 침묵 같은 작품들. 숨막히는 낯선 감각에 사진에서 시선을 떼곤 했다.

동네3-파라다이스_본문.png ⓒ정주하

사진 속에서 방사능은 보이지 않는 특성으로 인해 보이는 모든 것들을 지배한다. 보이지 않는 것을 사진에 담으려는 정주하의 시도는 시선을 오래 머물게 하고 시선을 떼게 한다. 이러한 그의 사진을 두고 서경식은 “현실만이 가지는 비현실감이 여기에 담겨 있다”고 표현하였다. 마술적 리얼리즘의 작가 마르케스는 사실에 충실한 기록문학으로 집필한 『납치일기』를 두고 “그 어떤 허구보다 더 허구적으로 보일 것이다”라고 적었다. 어떤 사실들이 허구적으로 보이는 것은 왜일까? 어떤 현실이 비현실적으로 다가오는 것은 왜일까? 『파라-다이스』는 독자를 향해 이 질문을 던지는 듯하다.


서경식은 그의 글에서 ‘동심원의 패러독스’를 소개한다. 고통과 비극의 현장에서 멀수록 중심을 향한 상상력을 발휘해야 한다는 것. 두 편의 소설은 동심원의 바깥에서 후쿠시마를 향한 상상력을 발휘한 결과물이다. 적어도 책을 읽는 동안 우리는 고통의 진앙지를 향해 걷고 있을 것이다. 그토록 먼 곳에서 한달음에 후쿠시마를 향해 건너간 이를 기억한다. 그것은 어떻게 가능했던 걸까?


송기역_작가, 기역책방 대표, 『416 단원고 약전』 공저자


- 이 콘텐츠는 <동네책방동네도서관> 2025년 10월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 행복한아침독서 www.morningreading.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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