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판권면을 채운 작고 힘센 이름들

by 행복한독서

그림책 만드는 사람들

최은영 지음 / 272쪽 / 22,000원 / 클



최근 전 세계적으로 사랑받는 것은 K팝, K드라마, K뷰티, K음식만이 아니다. 백희나 작가의 아스트리드 린드그렌상 수상(2020), 이수지 작가의 한스 크리스티안 안데르센상 수상(2022)에 이어, 매년 볼로냐 라가치상 수상작 명단에 한국 그림책이 오르고 있다. 이렇게 한 권의 그림책이 완성되기까지, 나아가 국내 그림책 출판계가 성장하고 괄목할 만한 성취를 이루기까지, 그 뒤에는 묵묵히 일하는 출판인들의 노고와 헌신이 있었다. 작가와 번역가 이름이 적힌 표지를 넘기면 그제야 판권면의 작은 글씨로 기록된 이름들. 그림책 글작가이자 편집자인 최은영의 『그림책 만드는 사람들』은 무대 뒤편을 고수하던 깨알 글씨 속 주인공들을 전면에 내세운 책이다.


책에는 고선아 기획자, 김효은 작가, 최현경 편집자, 김성미 디자이너, 엄혜숙 번역가, 정혜경 팝업북 제작자, 이서윤 마케터 일곱 명의 목소리가 담겼다. 기획에서 창작, 번역, 디자인, 제작, 마케팅까지 그림책 출간의 전 과정을 생생히 볼 수 있다. 페이퍼 엔지니어라는 생소한 직업도 만나볼 수 있다. 직업인으로서의 태도, 지표가 되어준 훌륭한 그림책, 시도해 보고 싶은 아이디어들을 엿보는 즐거움도 크다. 특히 최소 5년 이상 그림책 분야에서 활동한 현역 출판인들을 인터뷰했기에, 1990년대 이후 한국 그림책 출판계의 성장 과정과 현재의 고민 등 역사성과 현장성이 묻어난 책이 되었다.


이들이 특히 강조하는 것은 협업의 힘이다. 작가와 편집자, 디자이너는 “서로 마주보는 관계가 아닌 함께 멋진 책을 만들기 위해 걸어가면서 손을 잡지만, 때로는 밀어주고 때로는 끌어주는 동행자”(김성미)다. 때로 긴장 관계에 놓이기도 하지만, 이 일이 “경쟁이 아니라 좋은 책이라는 결과물을 향해 같이 가는 것”(최현경)임을 잊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결국 그림책은 함께 만든 이들이 나눈 신뢰의 기록이다. 소통하고 동행하며 최선의 목표를 달성하는 출판 과정 자체가, 그림책이 전하려는 가치를 깊이 품고 있다.


가장 가까운 곳에서 작가와 일하는 이들이 요구하는 ‘작가상’도 흥미롭다. “작가는 무엇인가를 알려주고 가르쳐주는 존재이기보다 대중을 향해서 벌거벗어주는 존재”(고선아), “‘이 사람은 정말 생활인이구나’ 싶은 느낌을 주는 작가”(이서윤)를 좋아한다는 말은 특히 곱씹어볼 필요가 있다. 작가는 “자기라는 존재에 대해서 끊임없이 질문하고 찾아가는 사람”(김효은)인 동시에, 대중과 밀착해 소통할 수 있어야 함을 일깨운다. 예비 작가와 작가 모두 반드시 귀 기울일 만한 대목이다.


책에 등장한 출판인들은 ‘좋은 그림책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끊임없이 붙든다. “어린이 또는 양육자에게 아주 작게라도 긍정적인 영향을 주는 그림책”(최현경), “다양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아야 하고 진보적이어야 한다”(이서윤) 같은 말에서 그림책과 어린이에 대한 깊은 애정이 전해진다. 이 질문은 그림책을 사랑하는 독자들에게도 유효하다.


『그림책 만드는 사람들』은 우리가 몰랐던 그림책 무대 뒤를 조망하며, 오늘의 한국 그림책이 어떻게 만들어져 왔는지 생생하게 증언한다.


황유진_그림책37도 대표, 『어른의 그림책』 저자


- 이 콘텐츠는 <월간그림책> 2025년 10월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 행복한아침독서 www.morningreading.org

keyword
작가의 이전글가까이 있지만 학생들이 잘 모르는 ‘사서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