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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가 본 일제강점기의 숨겨진 얼굴

by 행복한독서

제국의 어린이들

이영은 지음 / 324쪽 / 18,000원 / 을유문화사



1938년부터 1944년까지 『경일소학생신문』은 식민지 조선의 모든 소학생(지금의 초등학생)을 대상으로 하는 글짓기 경연 대회를 열었다. 무려 1등 상이 총독상이었다. 『제국의 어린이들』은 그중 1회와 2회의 응모작을 소개한 책이다. 1회 대회에는 5만여 명, 2회 대회에는 7만여 명의 응모가 있었다. 1938년에 소학교 학생은 한국인이 백만 명 정도, 일본인은 9만 2천 명 정도였다. 이중 한국인은 117명, 일본인은 170명이 선발되었으니 불균형의 정도가 선발에도 심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제국의 어린이들』은 주제별로 글들을 나누고 각 챕터마다 상세한 해설을 붙여서 일제강점기의 실상을 살펴볼 수 있도록 안내한다.


어린이들은 단순한 눈으로 세상을 바라본다. 세상을 움직이는 복잡한 이면을 이해하지 못한다 해도 그 단순함은 역으로 세상의 본질을 백일하에 드러낼 수 있다. 일본의 식민지 교육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어린이들의 글 안에서는 자연스럽게 식민지의 모순과 참혹한 현실이 드러나고 만다. 프랑스의 소설가 발자크는 보수주의자이고 귀족사회를 동경하는 인물이었지만, 그의 작품 속에는 귀족의 몰락과 부르주아지의 상승, 민중의 비참한 삶이 생생히 살아있게 묘사되었다. 그것은 발자크가 원했던 것이 아니지만 그의 사실주의적 묘사가 현실을 그대로 가져와버린 것으로, 이를 ‘리얼리즘의 승리’라고 부른다. 『제국의 어린이들』에 실린 글 속에서도 리얼리즘의 승리를 볼 수 있다. 그를 통해 식민지 한국인의 슬픔을 그대로 느낄 수 있다.


2학년 학생이 쓴 「눈」이라는 작품을 보자. 눈이 펑펑 내린 날 아이들이 운동장에서 눈사람을 만들고 있는데 글쓴이는 거기에 끼지 못한다. 장갑이 없었기 때문이다. 결국 집에 와서 맨손으로 눈사람을 만들다 손이 시려 따뜻한 물에 손을 녹인다. 반면에 일본인 학생이 쓴 글을 보면 장갑을 당연히 끼고 있다. 한국인 어린이는 집에 장난감이 없다는 이야기도 종종 한다. 하지만 일본인은 프랑스 인형을 가지고 노는 이야기를 적어낸다. 일본인 가정부는 나이가 많으면 바아야, 나이가 어리면 네에야라 부르고 한국인 가정부는 오모니, 키치베(계집애)라 불렀다는 사실을 처음 알았다. 가정부조차 명칭이 달랐던 것이다.


1938년은 제3차 조선교육령이 실시되어 조선 사람을 완전히 일본인화하겠다는 목표가 설정된 해다. 조선어 과목은 선택 과목으로 변했고 학교에서는 일본어로만 강의하게 만들었다. 이런 현실은 일본인들에게 극찬을 받은 「수업료」로 만든 영화에서도 잘 볼 수 있다. 영화에 나오는 일본인 교사는 한국인 학생들을 가르치지만 한국어는 전혀 할 줄 모른다. 일본은 본토에서는 초등학교 무상교육을 실시했지만 조선에서는 수업료를 받았다. 『제국의 어린이들』에서는 조선의 일본인 학생도 수업료를 면제받았다고 나오는데 그렇진 않았다. 다만 조선총독부는 일본인이 다니는 학교에는 막대한 보조금을 주어 수업료 부담을 덜어주었다. 일본인에게만 주는 특혜를 시정해 달라는 요청이 계속 있었지만 들어주지 않았다. 「수업료」는 바로 이런 현실을 꿰뚫었기 때문에 조선에선 격찬 속에 상영되었지만 일본에서는 개봉되지 않았다. 이것이 그들이 말하던 내선일체의 실상이었다.


이문영_역사작가, 『하룻밤에 읽는 남북국사』 저자


- 이 콘텐츠는 <동네책방동네도서관> 2025년 11월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 행복한아침독서 www.morningreading.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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