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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다시 켜야 할 세상

by 행복한독서

세상을 켜요

명수정 글·그림 / 40쪽 / 21,000원 / 달그림



『세상을 켜요』 속 아빠는 아이에게 ‘자꾸자꾸 꺼주는’ 존재다. ‘안 돼!’ ‘망설임’ ‘그만!’ 같은 제약들을 대신 끄며 아이의 세상을 켜준다. 아빠가 만들어준 안전한 세상에서 아이는 마음껏 뛰어논다. 그림책 속 환히 웃는 아이의 모습을 보며 부모님의 얼굴을 떠올리기도 했고, 내 아이들을 생각하기도 했다. 명수정 작가는 “세상을 켜 주신 어머니, 아버지와 모든 이들을 생각하며 이 책을 지었습니다”라고 말했다. 그림책을 덮고 나서 한동안 든든한 어른의 존재에 대해 생각했다.


이 책의 장면마다 불을 켜고 끄는 줄이 보인다. 아이가 ‘딸깍’ 하고 스위치를 켤 때마다 내 마음속에서도 딸깍 소리가 울린다. 아이와 함께 웃고, 울고, 세상을 새로 여는 기분이다. 그림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줄 스위치와 함께 작은 소방차 한 대가 등장한다. 그 소방차는 아이의 세상을 든든히 떠받치고 있다.


“누군가 뜨거움을 켜면, 아빠는 무서움을 꺼요. 뛰어들어요.”


아빠는 아이만을 위해 끄는 존재가 아니다. 타인을 위해, 세상을 위해 불을 끄는 소방관이다. 밝고 화려하게 빛나는 것 뒤에는 어둡지만 묵묵히 자리를 지키는 것들이 있다. 우리는 그 밝음만 기억하고, 어둠을 지키는 존재는 자주 잊곤 한다. 그러나 세상은 보이지 않는 곳에서 그 어둠의 자리를 지키는 이들의 힘으로 돌아간다. 소방관, 경찰관, 환경미화원처럼 말이다.

그림3-세상을 켜요_본문.png

이 그림책은 아이를 지켜주고 싶은 아버지의 사랑 이야기이자, 화재 현장에서 순직한 소방관의 희생을 추모하는 기록이다. 작가는 2021년 물류센터 화재 현장에서 순직한 한 소방관의 실화를 바탕으로 이야기를 썼다고 한다. 그는 마지막 순간까지 누군가의 ‘무서움을 꺼준’ 사람이었다. 다른 사람을 구하기 위해 자신을 희생한 소방관 덕분에 우리는 조금 더 안전한 세상에 살고 있다. 이제는 우리가 소중한 아빠를 잃은 아이에게 든든한 울타리가 되어주어야 한다. 내가, 우리가 꺼줄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


“아이가 세상을 켜면 나는 차별과 편견을 꺼요.”

“아이가 세상을 켜면 우리는 ○○을 꺼요.”


그림책을 읽고 나서 각자의 마음속에 꺼주고 싶은 ○○을 떠올려보자. 그 마음이 모이고 힘이 합쳐질 때, 세상은 조금 더 따뜻하고 환하게 켜질 것이다. 이제, 여러분의 차례다.


박은미_그림책 활동가, 『그림책 모임 잘하는 법』 공저자


- 이 콘텐츠는 <월간그림책> 2025년 11월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 행복한아침독서 www.morningreading.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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