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설희 지음 / 360쪽 / 19,800원 / 휴머니스트
서양의 성당은 서향, 동양의 사찰은 동향이라고 운을 맞추어 외우던 시절이 있었다. 한창 건축학개론을 배우던 대학교 때의 일이었다. 하지만 유교의 궁궐과 사당, 종묘 건축은 남향이 원칙이라고 배웠다. 기독교이든 불교이든 신의 모습은 주로 빛으로 표현되기 때문에 성당과 사찰 등 종교 건축에서는 빛, 그것도 강렬한 태양빛을 디자인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배운다. 그러기 위해서는 한낮의 길고 밋밋한 태양보다는 일출이나 일몰같이 짧고도 강렬한 빛을 디자인하는 것이 중요하다. 특히 기독교에서는 고된 하루 일과를 마치고 드리는 저녁 예배를 중시하는 반면, 불교에서는 아침 예불을 중요시한다. 그래서 성당이 석양을 받을 때 가장 드라마틱해지도록 서향을 하고, 사찰이 아침 해를 받을 때 대웅전에 앉은 부처님의 상호가 가장 빛날 수 있도록 동향으로 설계하라고 교과서에서 배웠다.
그래서 정말로 한국의 사찰을 다들 동향으로 짓는 줄 알지만, 실제로는 남향의 사찰이 대부분임을 실제 답사를 통해 밝혀낸 책이 있다. 바로 윤설희 저자의 『주말엔 산사』라는 책이다. 이 책은 한국의 사찰을 피상적으로 이해하는 수준을 넘어 직접 발로 걸어 다니고 산사의 모습을 사진으로 찍은 뒤 섬세한 펜으로 한 땀 한 땀 직접 그림을 그린 정성 어린 책이다.
실제로 불교의 발상지인 인도와 네팔은 더운 나라이기 때문에 온종일 일사가 쏟아지는 남향집은 너무나 덥다. 그래서 건물이든 집이든 남향을 회피하고 동향으로 짓는 경우가 많다. 반면 유럽은 위도상으로 북쪽에 위치해 있어 일사가 부족하다. 그래서 천천히 늦게 지는 석양 무렵의 햇빛을 중요시하다 보니 서향집을 선호하고, 성당 역시 이러한 예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그런 반면 우리나라는 여름이 길고 더운 것 못지않게 겨울이 길고 혹독하기에 온종일 일사를 받을 수 있는 남향집을 선호한다. 한국과 기후가 비슷한 중국도 마찬가지여서 한국과 중국의 대표적인 유교식 건물이라 할 수 있는 궁궐, 사당, 종묘 등은 남향을 하고 있다. 불교 역시 삼국시대에 우리나라에 들어와 천 년 이상을 자생하는 과정에서 인도식 동향이 아닌, 한국식 남향을 하게 되었음을 밝혀낸 책이 바로 『주말엔 산사』이다.
저자 윤설희는 대기업 그래픽 디자이너로서 네모난 사무실과 일상 속 고정된 틀에 눌려있던 삶에서 벗어나 공간과 마음을 마주한 여정을 담아냈다. 이 책은 그가 답사한 산사 약 100곳 중에 특별히 마음에 남은 일곱 곳을 골라, 펜화 일러스트와 함께 산책하듯 풀어낸 에세이다. 목차를 보면 선암사, 부석사, 무량사, 금산사, 수종사, 운주사, 봉은사 등 다양한 산사를 배경으로 ‘쉬어 가기’ 챕터도 섞여있어 독자가 숨 고를 여유를 느낄 수 있게 구성되어 있다.
책을 읽다 보면 산사는 단순한 공간이 아니라 마음의 거울처럼 다가온다. 도시에서 무디어졌던 감각이 산사의 공기 속에서 되살아나고, 잊고 지냈던 내면의 목소리가 조금씩 들려오기 시작한다. 작가는 그 고요의 순간을 포착하는 데 탁월하다. 불필요한 수식 없이 간결한 문장으로, 그러나 묘하게 여운이 남는 문체로 산사의 시간감을 전한다. 특히 인상 깊은 대목은 “침묵에도 결이 있다”는 표현이다. 작가는 산사에서의 침묵을 단순한 ‘말 없음’이 아니라, 서로를 존중하는 조용한 대화로 묘사한다. 이 장면은 우리가 일상에서 얼마나 ‘침묵할 줄 모르는 존재’가 되었는지를 반추하게 한다.
책은 특별한 사건이 있는 것도, 드라마틱한 결말이 있는 것도 아니다. 그저 ‘산사에서의 주말’이라는 느리고 단정한 시간들이 잔잔하게 이어진다. 그러나 그 고요한 기록 속에, 도시의 소음 속에서 잃어버렸던 감각들이 되살아난다. 새벽 공기의 냄새, 나무 사이로 비치는 햇살, 절 마당의 종소리, 그리고 차 한 잔의 따뜻함까지.
무엇보다 인상 깊었던 건 작가가 산사에서 만난 사람들의 이야기였다. 짧게 스쳐 지나가는 인연들이지만, 그 안에는 각자의 사연과 마음의 결이 느껴진다. 번잡한 세상 속에서 잠시 쉬어가려는 마음, 그리고 자신을 다시 바라보려는 용기. 그들이 곧 우리 자신이라는 생각이 든다.
윤설희 작가의 문장은 담백하지만 깊다. 화려한 수식 없이도, 한 문장 한 문장이 마음에 잔잔한 물결을 남긴다. “침묵에도 결이 있다”는 문장을 읽을 때는 잠시 책을 덮고, 그 말의 울림을 오래 곱씹었다.
저자는 산사를 직접 방문하고 답사하면서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일곱 사찰에 대한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책상 앞에서 책으로만 배운 지식이 아닌, 실제 살아 있는 생생한 정보를 다룬 책이다. 이 책을 읽는 내내 내 머릿속에서는 신선한 솔잎 바람이 불고 구수한 녹차 냄새가 나는 느낌이었다. 일상의 스트레스에 지쳐갈 무렵, 며칠쯤 조용한 산사에 머물고 싶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하지만 그것이 여의치 않을 때, 며칠 간의 템플스테이마저 쉽지 않은 사람을 위해 이 책을 권한다. 그곳이 어디든 이 책을 읽는 순간만큼은 바로 그곳이 조용한 남향의 산사이자 지순한 열반의 순간이 될 것이다.
서윤영_건축칼럼니스트, 『대중의 시대 보통의 건축』 저자
- 이 콘텐츠는 <동네책방동네도서관> 2025년 11월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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