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공간, 책방 - ‘벨벨왓’
처음 책방을 열었을 때, 오시는 손님들은 “아이들 책을 파는 곳인가요?” 물으며 들어왔습니다. 그러면 저는 반사적으로 “0세에서 100세까지 모두의 그림책을 파는 곳이에요!” 대답하곤 했지요. ‘벨벨왓’은 제주 시골 마을에 있는 모두를 위한 그림책을 파는 곳입니다.
벨벨왓이 뭐냐고 묻는 분들도 많았어요. 외국 말이냐고 묻기도 하시지만, 벨벨왓은 순 제주 말입니다(‘벨벨(별별)’ ‘왓(밭)’). 다른 제주어 ‘밧’과 달리 ‘왓’은 거칠고 돌이 있고 개척하고 있는 밭을 뜻하며, 그래서 벨벨왓은 아직 가다듬고 있는 ‘보통과는 다른 갖가지의 밭’입니다. 밭 한가운데 있는 책방으로 정말 딱 알맞은 이름을 갖고 있지요. 그리고 건물 생김새와 닮은 로고의 뾰족함이 벨벨왓만의 특성을 잘 보여준다고 생각합니다. 동네책방인데 그림책 위주로 팔고 있고, 밭 한가운데 있지만 정비되지 않아 잡초와 어우러져 있는 곳. 그곳이 벨벨왓입니다.
지난해 7월 정식으로 책방을 열었으니, 이제 돌을 갓 지나 걸음마에서 한 걸음 나아가고 있는 책방, 막상 소개하려니 이것저것 떠오릅니다.
처음 그림책 원화를 전시하고 판매도 했고요. 작가와의 만남을 『노란 우산』의 류재수 작가를 모시고 했습니다. 그때 공간에 모여 그림책을 함께 나누는 경험은 가슴 벅찼습니다. 어느 순간부터 매월 원화 또는 아트 프린트 전시를 꾸준히 하고 있습니다. 이 공간에서 그림책을 매개로 작가와 출판사 관계자, 편집자 등 여러분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만 제가 적어야 할 이야기는 따로 있습니다.
책방 한쪽에는 오신 분들이 적어주는 방명록이 있지요. 그곳에 적어준 이야기들이 책방지기에겐 ‘연애편지’마냥 소중해서 읽고 또 읽고 있습니다. 벌써 두 권째인 방명록. 어린 아가들이 와서 난화를 그리거나 동글동글 선으로 그려놓은 그림조차 아름다운 방명록이 벨벨왓을 빛나게 합니다.
책방 방명록에는 여러 손님들의 다양한 감정과 사연이 담겨있습니다. 사랑하는 사람과의 이별을 준비하러 혼자 제주도에 온 손님의 글에 가슴 아프다가, 엄마와 둘이 온 소녀는 씩씩하게 인사를 하고는 한 귀퉁이에 속상한 이야기를 적어두었고, 그림책을 시시하게 보던 또 다른 사춘기 소녀는 책방에서 그림책에 감동받았다고 합니다.
그곳에 사람들이 있습니다. 책방을 열며 야심 차게 ‘그림책도 담고, 자연도 담고, 사람도 담고 싶다’고 외치던 책방지기는 사람들을 담는 그릇이 되어가고 있는 벨벨왓이 자랑스럽습니다. 커다란 서가에 그림책이 점점 쌓여가는 시간, 이곳에 오신 분들에게도 추억이 쌓여가리라 믿습니다.
이번 추석 연휴에는 조용하던 책방이 조금 북적였습니다. 점점 이곳을 알아봐 주는 분들이 늘어나는 것 같아 내심 뿌듯했습니다.
이 문장에 저희의 정체성이 녹아 있습니다. 고맙습니다. 그림책을 사가는 손님을 대할 때, 그 그림책이 손님의 공간 어디엔가 머물다가, 힘들거나 기쁘거나 슬프거나 두렵거나 할 때 책을 열어 위로받고, 공감받고 용기를 내게 했으면 좋겠습니다. 그래서 인생의 ‘반려그림책’으로 존재했으면 하는 소망을 갖습니다.
벨벨왓은 제주의 자연 속에 있습니다. 그래서 그 자연 속에 녹아들고 그 자연을 향유하도록 돕고 싶습니다. 이번 가을에는 우당도서관과 함께 ‘자연과 함께하는 그림책 읽기’ 프로그램을 운영합니다. 10월에는 ‘그림책, 숲을 만나다’로 책방에 모여 그림책 한 권을 들고 함께 걸어 오름 산책을 합니다. 숲 한가운데서 그림책의 글자가 소리가 되어 마음으로 들어오는 경험. 새소리, 바람 소리 그리고 조용히 읽어 내려가는 그림책 이야기를 마음에 각자 담고 책방에 돌아와 허브로 스머지 스틱과 리스를 만들어볼 계획입니다.
11월에는 ‘그림책, 꽃 그림’을 기획했습니다. 아름다운 꽃을 담고 있는 그림책을 함께 읽고 나름의 꽃들을 그림으로 표현해 볼 예정입니다. 그림을 그리려면 자세히 보아야 합니다. 그냥 넘겼던 그림책 속 장면들도 새롭게 바라보는 시간을 가졌으면 합니다. 아마도 자신과 닮은 꽃들이 도화지 위에 그려지겠죠.
책방지기의 소망은 아직 잡초가 자라는 밭에 많은 그림책, 자연 그리고 사람이 담겼으면 합니다. 이제 걸음마를 막 시작한 책방, 앞으로 그림책과 함께 자연 속으로 걸어 들어가는 길을 함께 걸어주시고 지켜봐 주세요. 그림책을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 꼭 만나요!
주소 : 제주시 구좌읍 송당3길 21-20
운영 시간 : 10시~18시 (월요일 휴무)
인스타그램 : @bellbellwhat
민선녀_그림책방 벨벨왓 대표
- 이 콘텐츠는 <동네책방동네도서관> 2025년 11월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 행복한아침독서 www.morningreading.or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