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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어야 갈 수 있는 곳

by 행복한독서

꿈속을 헤맬 때

송미경 글 / 서수연 그림 / 52쪽 / 22,000원 / 봄볕



송미경 작가는 얼마 전 필자와 나눈 북토크에서 ‘판타지’를 정의 내려달라는 요청에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라는 성경의 히브리서 구절을 변용하여 ‘판타지는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라고 말한 바 있다. 판타지는 눈에 보이는 것들을 통해 보이지 않는 세계에 다가가는 장르다. 그러므로 우리는 판타지에 등장하는 눈에 보이는 것에 먼저 주목할 필요가 있다.


송미경의 판타지는 평범하면서도 현실에서 조금 어긋난 인물이 등장하여 독자에게 비현실적인 시공간의 감각을 느끼도록 만들어준다. 송미경 작가가 쓰고 서수연 화가가 그린 그림책 『꿈속을 헤맬 때』는 송미경 작가가 쓰고 장선환 화가가 그린 『안개 숲을 지날 때』(봄볕, 2024)와 제목과 구성, 안개 숲과 꿈이라는 몽환적 풍경이 유사하여 언뜻 후속 작품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안개 숲을 지날 때』에서 ‘안개 숲’이 숲의 입구부터 출구까지 통과하는 동안 성장하는 길을 의미한다면 『꿈속을 헤맬 때』에서 꿈은 현실과 대비를 통해 의미를 만들어내는 동전의 양면과 같은 공간이다.


이 작품에 등장하는 중요한 키워드는 ‘눈물’이다. 인간 내부에는 눈물, 콧물, 오줌, 생리혈 같은 액체가 흐르고 때에 따라 그 액체들은 몸 밖으로 배출된다. 줄리아 크리스테바는 이것을 비체(abject)라는 단어로 정의한다. 인간은 주체 형성 과정에서 자신의 내부에 있던 분비물을 외부로 밀어내며 정체성을 형성한다는 것이다. 인간 내부에서 몸 밖으로 떨어져 나가는 순간 ‘더럽고 부정적인 것’으로 인식되는 것들을 버리듯이 우리는 많은 것들을 버리며 자신의 정체성을 만들어간다.


하지만 우리 몸에서 분비되는 액체 중에 ‘눈물’은 유일하게 더러운 물질에서 제외된다. 눈물은 다른 액체와 달리 세균이 거의 없고 도리어 눈을 보호하는 항균 작용을 한다. 나아가 눈물은 슬픔, 기쁨, 분노 같은 감정이 고양될 때 자연스럽게 발생한다. 우리는 얼굴에 눈물이 흐를 때 내면에 존재하던 부정적 감정이 씻겨 내려간다고 느낀다.


작품의 도입부이자 꿈의 출발 지점에서 주인공 ‘나’는 육지도 바다도 아닌 경계, 바닷가에서 눈물을 흘리고 있다. 곧 아이를 태울 배가 등장하는데, 배를 이끄는 하얀 새가 아이에게 마음껏 울었냐고 묻는다. 이 배에는 눈물을 많이 흘린 사람만 승선할 자격이 주어지는 듯하다. 인간은 울면서 태어나기에, 우는 행위는 매우 자연스러운 일이다. 그러나 인간은 자라며 눈물을 참아야 한다고 배우고 결국은 어떤 이유에서인지 울 수 없는 존재가 된다. 울 수 있는 행위는 자신의 본모습을 되찾는 것이다. 앞서 언급했듯이 눈물은 곧 정결의 상징이니 정결 의식을 마친 아이는 하얀 새가 이끄는 배에 올라 비로소 그가 바라보던 섬으로 가게 된다. 흥미로운 것은 아이가 왜 눈물을 흘리며 울었는지 그 이유를 독자는 알 수 없다는 점이다. 눈물을 흘리는 행위는 있지만 이유는 말해지지 않는다. 독자는 저마다 아이가 흘린 눈물의 까닭을 짐작해야 한다. 이러한 짐작을 통해 눈물을 흘리는 인물과 그것을 헤아리려는 독자의 마음이 포개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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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에 도착한 아이는 자기와 비슷한 또래의 아이들을 만나고, 그중에서 유리라는 이름의 아이와 친구가 된다. 어린이들이 좋아하는 놀이공원을 연상시키는 섬에서 나와 유리는 많은 어린이들과 대관람차를 타고 사탕 목걸이를 만든다. 그 사이 이들의 귀와 손이 작아져 육체는 현실과 조금 다른 모습이 된다. 나와 유리, 그리고 몇몇 아이들은 빵을 굽기 시작하고 섬에 어둠이 닥쳐 많은 아이들이 서둘러 섬을 빠져나가지만 남은 아이들은 인내심을 가지고 빵이 구워지기를 기다린다. 마침내 빵을 구워 나누어 먹고, 하늘에서 내리는 빗물로 목을 축이며 노래를 부르는 모습은 마치 축제나 성찬식의 한 장면을 연상시킨다. 그들이 부르는 노래는 다음과 같다.


“눈물 닦은 손으로 조물조물한 빵, 눈물에 콕콕 적신 빵, 구멍 난 손, 작아진 손으로 조각조각 떼어 낸 빵, 맛있어라, 아이들이 만든 빵. 우리는 빵을 먹으려고 꿈을 꾼다네. 우리는 노래를 부르려고 태어났지.”


이야기는 화가 서수연의 그림으로 더 빛난다. 서수연은 SNS에 ‘퇴근길 드로잉’을 그리며 알려진 화가로 황인찬 시인의 시에 그림을 그린 『백 살이 되면』(사계절, 2023)이 2024년 서울국제도서전에서 ‘한국에서 가장 즐거운 책 그림책 부문’에 선정되기도 했다. 화가가 특히 인상적으로 그리는 어린이의 표정이 『꿈속을 헤맬 때』에서도 눈길을 사로잡는다. 그림책 속 어린이들이 뛰노는 모습과 새들이 나는 풍경, 인물들이 보여주는 밝은 색감과 대비되는 몽환적 배경은 송미경 판타지가 의도하는 바를 선명하게 구현한다. 슬픔에서 출발한 이야기가 어린이들이 빵을 구워 먹는 장면에서 기쁨으로 전환되어 독자가 위로를 얻는 것은 그림의 덕분이기도 하다.


아이는 서서히 꿈에서 깨어나야 할 때임을 깨닫고 친구 유리와의 헤어짐이 아쉬워 눈물을 흘린다. 그리고 꿈에서 깨어난 나는 꿈에서 흘린 눈물이 귓속의 오목한 공간에 모여있음을, 베개에 아직도 빵 냄새가 배어있음을, 그리하여 꿈과 현실이 이어져 있음을 발견한다. 꿈은 깨어나면 사라져 버리는 신기루 같은 것이라 여겨지지만 사실은 인간은 꿈이 있으므로 현실을 살아갈 수 있다. ‘판타지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라면 이 작품은 고립과 슬픔을 의미했던 눈물이 사랑으로 변화하는 판타지 세계를 보여준다. 어쩌면 이것이 바로 작가가 정의하는 문학의 의미가 아닐까?


오세란_아동청소년문학평론가, 『읽기와 흔들기』 저자


- 이 콘텐츠는 <동네책방동네도서관> 2025년 11월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 행복한아침독서 www.morningreading.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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