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인간 종 연구원 Nov 09. 2024

머리가 빠그러질 것 같은 리더.

다양성을 포용할 수 있는 리더?

매번 책 한 권을 읽고 글을 쓰는데, 너무 시간이 오래 걸린다. 잘 다듬어진 글도 좋지만, 가끔씩은 머릿속에 떠오르는 생각을 잊어버리기 전에 이곳에 옮겨 놓으려고 한다.


나는 교육 분야에서 공부하고 있다. 따라서 다른 사람들보다 새로운 세대와 더 가까이 소통할 기회가 많다. 이런 교육 현장에서 아이들이 싸우면 참 골치가 아프다. 과거에는 선생님이 화해하자고 하면 아이들도 선생님의 권위를 존중해 그냥 화해하는 척이라도 해줬다.


하지만 요즘은 그렇지 않다. 한 학교에서 벌어진 일이다. 한 아이가 다른 아이와 싸움이 붙었다. 선생님은 둘을 중재하기 위해 한 명씩 불러 그들의 이야기를 들었다. 그러나 한 아이가 끝내 화해하고 싶지 않다고 하자, 선생님은 "그래, 알겠다."라고 하며 그 학생을 집에 보냈다. 다시 찾아오라는 말도 없었다. 이를 선생님의 직무 유기라고 볼 수도 있겠지만, 나는 한 학생의 기분에 대한 존중이라고도 생각했다. (진실은 아마도 그 중간 어딘가에 있을 것이다.) 학생의 다양성을 존중한다는 것은 이런 개인의 생각 또한 존중하겠다는 말이기도 하다.


다양성의 시대는 개인에게 반가운 말이다. 아침형 인간, 저녁형 인간 모두 존중받을 수 있고, 물건 취향까지 전부 이해해준다.


새로운 시장에 진출하려는 사업자에게도 다양성은 호재다. 다양성이 증가하는 만큼 새로운 수요가 생기고, 그만큼 기회가 증가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다양성을 존중하기 위해 리더들은 동분서주해야 한다. 회의도 아침형 인간과 저녁형 인간을 모두 배려해 시간을 잡아야 하고, 회식 같은 행사들도 쉽사리 정하기 어렵다. 회식을 좋아하는 사람과 아닌 사람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아마 리더 역할을 한 번이라도 맡아봤다면 구성원 전부의 권리를 보장하는 것이 얼마나 두통을 수반하는 일인지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교육 현장에서도 이런 딜레마는 쉽게 접할 수 있다. 예를 들어, 학교에 오는 학생들이 모두 학습을 목적으로 하지 않을 수도 있다. 어떤 학생은 공부보다는 다른 활동, 예를 들어 영상 편집처럼 스스로의 관심사를 위해 밤늦게까지 시간을 쓰기도 한다. 만약 이런 학생이 학교에 와서 수업 시간에 잠을 잔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한편으로는 학생의 개인적 목표를 존중해야 할 필요성을 느끼지만, 동시에 학교는 교육을 목적으로 한 공간이기에 수업에 집중하지 않는 것이 과연 허용될 수 있는지에 대한 고민이 든다. 다양성을 존중하면서도 교실 내 질서와 학습의 목적을 어떻게 유지할 것인가? 이는 교사에게 끊임없는 숙제를 안기는 문제다.


과거 권위를 바탕으로 구성원들을 깔아 뭉갰던 리더들은 현재에 와서 난항을 겪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현시대의 사람들은 웬만한 권위로는 인정받기 어려울 뿐만 아니라, 자신의 권리가 보장받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권위에 무조건 복종하자고 말하는 파시스트는 아니다. 다만, 우리가 누리는 권리 대부분은 타인의 희생을 바탕으로 한다는 점을 기억하자는 것이다.



작가의 이전글 이방인이 돼 본 적이 있나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