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게, 겨우 두 개?

아이에게 욕심부리지 않고 싶다

by Jina가다

“옥수수가 왜 이렇게 여물지 못했을까? 너무 작게 열렸어. 옥수수 이런 건 따줘야겠네. 너무 오래 두면 딱딱해져서 못 먹어요.”

“그렇군요. 언제 따야 할지를 몰라서...”

"수염이 마른다 싶으면 다 익은 거예요. 혹시 여물었는지 껍질 한 번 까 봐요.”

“지난번에 두 개를 땄는데 잘 여물었더라고요.”

“에게, 겨우 두 개?”


오랜만에 만난 122번 텃밭 아주머니는 웃으면서 본인 밭으로 향했다. 마트에서 파는 것들보다 크기가 작았지만, 열매 맺어 준 것도 그저 고마웠다. 수염이 마르고 도톰한 옥수수 다섯 개를 따서 바구니에 담았다. 아주머니 말에 전혀 섭섭하거나 속상하지 않았다. 내가 기대한 농작물에 비해 넘치도록 풍성한 결과이기에 그저 감사할 뿐이다. 너무 작게 열렸어도 괜찮고, 개수가 적어도 괜찮다. 내가 생각한 기준에 만족했다면 더 바라지 않는다.


122번 아주머니는 3년 차 농부다. 부지런한 그녀의 밭은 여러 종류 채소로 가득해서 끊임없이 수확한다. 상추, 토마토, 양상추, 부추 등 혼자 소비하기엔 너무 많아서 나눠주는 경우가 있었다. 그녀에게 상추와 열무, 부추도 한 아름 얻어먹었다. 밭을 가꾸는 동안, 유튜브로 농사를 공부하고 인터넷으로 자료를 얻는다고 말했다. 나도 세 번 해를 지내면 저렇게 확신을 갖고 말할 수 있으려나. 농작물에 대한 기대도 커질 수 있겠다.

내년 봄이 되면 새로 가꿔보고 싶은 품목들이 있다. 쌈 야채를 조금씩 다양하게 한 고랑을 심어서, 매일 색다른 샐러드로 식탁을 차리고 싶다. 버터 헤드, 양상추, 루콜라는 내년에 꼭 심을 예정이다. 올봄을 지내면서 루콜라를 망치기도 했고, 옆 밭 멋진 모습을 보니 작은 소망들이 생겨난다.



사람들은 거침없이 자기 경험과 지식으로 조언한다. 자녀의 교육과 삶의 방식에도 마찬가지다. 다른 사람들 말에 본인의 기준 없이 귀를 열고 듣게 되면, 금방 초라해지는 자신을 보게 된다. 특히나 자녀를 키울 때 타인 기준을 내 것에 비교하면 금방 좌절하게 된다. 부모의 비교하는 말로 아이들이 괜한 희생양 되기도 한다. 입시나 학원 설명회 그리고 자녀들을 잘 키워 낸 엄마들의 경험담을 듣고 난 후에는 답답함이 더해진다. 즐겁게 잘 지내고 있는 아이들에게 괜한 불똥이 튀어 얄밉게 보이는 경우들을 자주 경험했다. 잘 먹고 잘 쉬는 모습이 예뻐 보였다가도, 타인의 조언을 듣고 나면 못마땅해 보이는 현상은 참 이상하다. 부모인 내 마음에 욕심이 들어와서다. 엄마는 자식에게만큼은 어쩔 수 없는 욕심쟁이가 된다.


뿌리지 않은 씨앗은 싹을 틔우지 않고 열매를 맺지도 않는다. 또한 이것이 잘 될지, 저것이 잘 될지는 아무도 모른다. “에게 겨우 두 개?”라고 말할지라도 ‘두 개면 잘한 거야’ 하며 내가 만족스럽게 여기면 그만이다. 작은 옥수수이든, 적게 열린 옥수수든 그저 맺어 준 것으로 흡족하고 감사하면 된다. 내년에는 좀 더 신경 써서 웃거름도 줘야겠다. 농작물에 욕심을 부렸다면 더 자주 밭에 들러보고 정성을 쏟았겠지만, 나는 그저 밭을 경험할 수 있어 행복하다.


자녀들이 내게 와 준 것만으로도 감사하는 기본적인 마음을 가지려 한다. 한때는 아이들 아깃적 사진을 냉장고에 붙여놓고 지냈다. 아이들 사춘기 시절, 미워질 때가 자주 있었기 때문이다. 자녀를 사랑하려는 노력이었다. 활짝 웃고 있는 아이들 사진은 속상한 마음을 진정시키는 데 최고 도움이었다. 임신 초기, 쌍둥이 아이들이 잘 못 될까 봐 마음 졸였던 시간을 생각해 냈다. 첫딸이 태어나 큰 기쁨을 주었을 때를 기억했다.


아이들에게 너무 많은 기대와 욕심을 부리는 나를 자주 발견한다. 예의 바르고 착하게 자라기를 바라면서, 공부까지 뛰어나게 잘하기를 바라는 욕심이 가득했다. 친구들과 사이좋게 지내면서 리더십까지 갖추기를 기대했다. 말로 표현하지는 않았지만 욕심 많은 엄마였다. 학원을 보내면, 결석하지 않고 비용만큼 잘 해내기를 바라는 마음도 컸다. 하루라도 학원을 결석하면 머릿속으로 계산기가 두드려졌다. 결과에 대한 욕심은 아이들과 갈등 요인이 되기도 했다. 그래서 아이들이 학원을 거부했을 때 1년간 사교육 없이 스스로 계획을 짜고 일상을 보내도록 한 기간이 있었다. 신기하게도 욕심나지 않았다. ‘혼자 공부해서 이 정도면 잘한 거야.’ 자꾸만 기특하게 여겨지고 고마운 마음까지도 일어났다. 내 마음이 편해지자, 아이들과도 좋은 관계가 되었다. 1년을 쉰 후, 아이들 의견을 듣고 꼭 필요하다고 부탁한 수업만 학원에 보내주었다.


부모와 자식의 관계는 참 신기하다. 자식의 모습이 내 모습인 양 자랑스러웠다가 속상하기도 하다. 그 이유는 타인 목소리에 귀 기울이고 남의눈을 의식할 때다. 남을 위한 삶을 살다가 내 우리를 망칠 수 있다. 내가 맡은 어린양들을 위해, 자주 욕심을 비우고 기대도 낮춰야 한다. 그저 건강하게 곁에 있음을 먼저 감사해야 한다.




1년간 해외에서 인턴을 마치고 큰아이가 다시 취업을 준비한다. 인턴쉽을 준비할 때도 잠깐의 갈등이 있었다. 우리는 아이가 빨리 취업을 하기 원했지만, 아이는 관련 업무가 본인과 맞는지 직접 근무해 보고 싶다고 했다. 그때도 우리의 욕심을 비우는 데 잠시 시간이 걸렸다. 자녀를 잘 기다려 주는 연습은 매번 쉽지 않지만, 본인 목소리를 내서 동등한 대화를 나눌 수 있음에 만족한다.

취업 시험을 앞두고 자꾸만 잔소리가 입 밖으로 나오려 한다. '빨리 일어나', '핸드폰 좀 그만해라', '공부는 다 된 거니?' 슬쩍 묻고 싶지만 입술을 꾹 깨문다.


취준생 부모로서 욕심부릴 일들은 계속될 것 같다. 직장, 결혼, 주택, 자녀 등 기대와 욕심이 커진다면 자녀와의 관계는 더욱 힘들어진다. “겨우 두 개?”여도 그저 감사함으로 자녀를 바라보고 끝까지 사랑하자고 생각한다. 냉장고에 딸아이 어릴 적 사진을 다시 붙여야 할까 보다.


내 작은 밭도 감사하면 풍성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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