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을 담은 상차림』- 김소연 글, 김동성 그림
인생을 살아가면서 수많은 고비를 겪게 된다.
세상에 태어나 첫 돌을 맞았을 때, 학교에 입학했을 때, 성인이 되었을 때, 결혼을 했을 때, 아이를 낳았을 때, 그리고 죽음을 맞이할 때.
인생을 통틀어 거치는 커다란 문이라는 뜻의 '통과의례'
문을 한 번씩 통과할 때마다 축하하고 기리는 풍습이 전해져내려 오는데 그 마음을 상차림으로 나타냈다. 삼신상, 백일상, 돌상, 책거리상, 혼례상, 회갑상, 제사상.
지금은 상차림 대신 간편하게 현금으로 마음을 담아 전달하고 있다. 돈이면 다 되는 세상에 살다 보니 아이들도 기쁜 일이 생기면 용돈을 받는 날이라고 자연스럽게 생각하는 것 같다.
늘 번거롭고 거추장스럽다고 생각했던 상차림이었다. 그런데 각각의 상차림마다 어떤 마음으로 차려냈을지를 떠올려보니 왜 그 마음이 전해지지 않고 형태만 남아 사람들에게 불편하다는 인식을 주게 되었는지 씁쓸해졌다. 결혼을 하고 첫째를 낳고 100일이 되었을 때, 가족들과 모여 식사를 하는 자리에 백일상을 대여해서 상차림을 해주었다. 백일 아침에는 삼신상을 차려 아이 머리맡에 놔주고 건강하게 잘 자라라고 빌어주었다. 삼신상을 누구는 미신이라고 안 하기도 했고, 백일상은 남들에게 보여주는 예쁜 상차림과 사진을 남기기 위해 무리해서 대여를 했던 것 같다. 상위에 놓이는 음식의 의미도 모른 체 형식만 갖추려 하다 보니 진짜 축하해야 할 것은 무엇인지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첫째의 돌잔치 때가 절정이었는데, 엄마의 패션쇼 자리인 건지, 그동안 뿌린 돈을 걷기 위한 자리였는지, 진짜 내 아이의 첫 돌을 축하하기 위한 잔치라고 하기에는 돌상차림, 의상, 답례품, 이벤트 선물까지 신경 쓰고 준비해야 할 것들이 많았다. 아이가 건강하게 무럭무럭 자라라고 축하해주러 모인 자리에서 정작 아이는 많은 사람들이 낯설고 평소와 다른 환경에 오래도록 노출되어있는 데다, 친척들이 예쁘다고 서로 한 번씩 안아보니 잔치가 끝나고 나면 몸살 치레를 겪는다.
이건 내 아이를 위해 마음을 담아 준비를 한 걸까, 아니면 내가 아이를 100일 동안 잘 키웠어요, 돌까지도 잘 키웠어요 하고 위안을 받기 위한 행사였을까? 첫째 엄마의 시행착오는 대부분 둘째까지는 이어지지 않는다.
물론 둘째도 똑같이 해줘야 한다고 잔치를 하는 부모도 있으나, 대부분의 부모들은 둘째는 약식으로 직계가족만 모여서 축하해주고 끝낸다. 어찌 보면 소박해 보여도 아이가 정말 축하받는다고 느꼈던 것은 둘째 때였던 것 같다.
철부지처럼 손하나 까딱 안 하고 엄마에게 의지하며 살다가 결혼하고 제일 당황스러웠던 것은 아침밥이었다. 엄마는 아무리 피곤해도, 내가 새벽에 나가도, 밥 한 숟가락이라도 먹고 가게 준비를 해주셨다. 물론 삼 첩 반상까지는 아니어도 빈속으로 나가지 않게, 간단하지만 엄마의 사랑이 느껴지는 아침밥이었다. 오히려 밥 먹기 싫다고 투정 부리는 것은 나였다. 엄마는 딱 한 숟가락 만이라도 뜨고 나가라며 성인이 된 딸의 아침을 챙겨주었었다.
이제 그 아침 밥상을 차려야 한다고 생각하니 막막했다. 그나마 나는 빵이나 사과 한 개로 아침을 대체할 수 있었지만, 늘 정성 가득한 삼 첩 반상을 먹고 자라던 남편은 간편한 식사에 적응을 못하는 눈치였다. 살다 보니 솜씨가 부족해도 마누라 밥상에 적응을 하고 살고 있지만, 남편은 늘 어머니의 정성 가득한 밥상을, 나는 엄마의 손맛을 그리워하고 있다. 두 엄마의 스타일과 형태는 달랐지만 자식에게 사랑을 담은 밥상인 것은 확실했기 때문이다.
아이가 이유식을 처음 시작할 때, 조금이라도 탈이 날까, 맛이 없을까 걱정하며 하나하나 계량하고 시간 재며 만들던 것이 떠오른다. 다행히도 먹성 좋은 아이들이라 먹는 것에 큰 무리는 없었으나, 이유식을 단계별로 진행하면서 알게 되었다. 사람이 동물처럼 온전하게 태어나지 못하고 엄마의 손길을 거쳐야 하는 이유는 엄마도 엄마가 처음이기 때문이었다. 아이가 태어나고 100일간 엄마가 되는 적응기간을 갖고, 100일이 지나면 본격적인 엄마 모드로 살게 된다. 그렇게 첫돌을 맞이하면 이제 엄마는 아기가 사람답게 살 수 있도록 준비를 하게 된다. 밥을 먹고, 걷고, 기저귀를 떼고, 말을 하는 과정. 어느 때보다 심신이 고달픈 시기지만, 이 시기를 겪어야 아기가 드디어 사람다워지는 것이다. 그래서 음식을 못하는 엄마도, 이유식을 만들면 죽을 만들 수 있게 된다. 우리는 아플 때 죽을 찾게 되는데, 그때를 대비해 엄마도 죽 하나 정도는 뚝딱 만들 수 있게 연습을 하는 거라고 생각했다. 물론 지금은 이유식도 제품으로 잘 나오고, 죽은 전문점에서 배달시키면 되니 굳이 연습이 필요 없지만...
아빠가 밤에 출출하다며 야식을 말하면 툴툴거리던 엄마도, 동생이 '엄마, 배고픈데 뭐 먹을 것 없어?'라고 말하면 벌떡 일어나 뚝딱하고 한상을 차려낸다. 자식에 대한 엄마의 사랑은 다 비슷한지, 어느덧 나도 남편의 야식 타령에는 짜증을 내다가도 아이의 간식 타령에는 뭐라도 꺼내 주려고 하고 있었다.
점점 한 끼를 때우는 식으로 생각이 바뀌고, 배달이 편리해지면서 집에서 음식을 하는 횟수도 줄어들었다. 때로는 음식을 한다고 장을 보고 남은 식자재를 활용을 제때 못해 버리는 게 더 많을 때도 있다. 간편식이나 밀키트도 종류도 다양하게 잘 나오고 동네에 반찬가게도 많아져서 대부분의 음식을 해 먹는 것보다 사 먹는 것이 늘고 있다. 그래도 아이들이 정말 맛있게 잘 먹었다고 말하는 날은 내가 신경 써서 음식을 했을 때다. 특별한 것도 아닌데 더 맛있게 느껴지는 것은 내 마음이 한 숟갈 더 들어가 아이들에게 전해져서 인 것 같다.
각자 엄마가 해준 음식 중에 제일 좋아하는 메뉴가 있을 것이다. 남편은 시어머니의 간장게장과 갈비찜을 제일 좋아한다. 나는 엄마가 해준 오징어볶음을 제일 좋아한다. 우리 아이들은 엄마의 어떤 음식이 기억에 남을까?
어릴 적 엄마가 차려주던 따뜻한 밥상이 그리워지는 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