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을 위해서, 누구를 위해서 공부하는가?
배운 사람이 못 배운 사람과 달라야 하는 지점은 배움을 나 혼자 잘 살기 위해 쓰느냐 나눔으로 승화시키느냐 하는데 있다고 생각합니다. '배워서 남 주는'그 고귀한 가치를 위해 노력하는 사람이 진정한 지성인이 아닐까요? 공부를 많이 해서 지식인은 될 수 있을 지 모르지만, 그 지식을 나누고 실천할 줄 모르면 지성인이라고 하기 어렵습니다. -라틴어수업 p.57
<라틴어수업>함께 읽기 2일차, 저자 한동일교수가 자꾸 질문을 던진다.
어제는 인생의 아지랑이를 찾아보라더니, 오늘은 나는 왜 공부를 하냐고 묻는다.
"나는 왜 공부를 할까?"
"나는 무엇을 위해서, 누구를 위해서 공부를 하는걸까?
요즘들어 계속 "왜"라는 물음을 품고사는 내게 다가온 질문이었다.
그림책을 읽고 글을 써보겠다고 시작한 것이 부족한 독서량으로 인해 어휘의 부족함을 느꼈다.
더 나은글을 써보겠다고 시작한 독서가 생각보다 넓고 깊은 바다라 한번 발을 들이니 헤어나오지를 못하고 있다. 세상에 책은 많고 내가 읽은 책보다 앞으로 읽어야 할 책이 많으니 하나라도 더 빨리, 더 많이 읽고 싶어 조바심 내는 날들이었다. 그럴때마다 나는 "왜?"라는 질문을 품으며 조급한 마음을 다스리고 있다.
나를 위한 길을 찾겠다고 여기저기 강의를 찾아다니던 시간들이 있었다. 그때는 시작과 끝이 있고 자격증이라는 결과물이 나오니 성취감도 함께 얻을 수 있었는데. 이 독서라는 행위는 시작만 있고 끝이 없다. 다만 중간에 쉼이 있을 뿐이다. 종종 성취감도 함께 얻어야 동력이 생길텐데, 하루종일 책에 파고들어살면서 내가 지금 뭘하고 있나? 잘하고 있나? 고민하던 찰나에 "나는 왜 공부를 할까?"라는 질문을 다시 받고 나니 정신이 번쩍 들었다.
나는 내면의 성장을 원한다. 더 단단한 마음으로 넓은 시야을 가지고 살아갈 수 있는 내면의 성장.
그 시간이 하루아침에 이루어 질 수 없고, 오랜시간 켜켜히 쌓여야 비로소 그 내공을 보여줄 수 있다는 것을 알기에 지금 당장 눈앞에 성과가 보이지 않는 다는 것도 안다. 그렇다면 나는 배워서 무엇을 하고 싶었을까?
사람들에게 널리 나의 배움을 나누고 싶고, 함께 하고 싶다. 혼자일때보다 "함께"라서 해낼 수 있는 것들이 얼마나 많은가. 단적인 예로 독서모임이 그렇다. 평소 접하기 힘든 책, 이해하기 어려운 책, 두꺼운 책도 "함께 읽기"라면 가능하다. 그렇게 시작한 것이 함께읽기 모임 아니었던가.
나는 "소피아랜선독서회"를 운영하고 있다. 한달 한권을 정해서 밴드에서 매일 정해진 분량을 함께 읽고 인증하는 모임이다. 시작은 책장파먹기였다. 책장에 쌓여있는 책을 보다 나는 읽기보다 책을 수집하고 있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남들이 좋다는 책은 다 가지고 있는데 정작 읽지를 않고 있던 것이다. 그래서 책장파먹기를 목표로 읽어내려고 했는데 혼자서는 자꾸 미루고 중간에 덮게 되었다. 그럼 내가 책을 읽어야할 동기부여를 만들어보자하고 생각해서 SNS를 통해 사람들을 모았고, 다행히 선뜻 신청해주신 분들이 계셔서 6개월가까이 순항중이다. 이것이 어쩌면 나눔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내 모임을 통해 평소 안읽던 새로운 분야를 접했다는 분도 계시고, 바쁜 일상에 책읽는 습관이 생겼다는 분도 계셨다. 또 나처럼 책장파먹기를 하고 계시는 분들도 계시다. 참가비도 받지 않고 애정하나만으로 꾸려가는 이 모임에서 나는 혼자 읽을 때보다 더 폭넓고 깊이있는 독서를 하게 된다.
오늘도 정해진 루틴대로 나는 책을 읽고 필사를 하고 단상을 정리한다. 앞으로 더 성장할 나를 위해 공부를 하고 그걸 토대로 나눔을 실천하는 '지성인'이 되기 위해 노력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