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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하은 Apr 13. 2021

냉장고 채소들을 다 모아서


마감이 다가오는 원고를 쓰느라 머리를 쥐어짜느라 살짝 정신이 나간 상태인데, 냉장고 채소 칸에 콩나물이 있었다. 내가 산 기억은 없는데, 반려가 샀나 싶어 콩나물을 한참 보다가 점심과 저녁으로 먹을 김치 콩나물국을 아침에 끓였다. 그런데 점심나절에 큰애가 콩나물을 찾았다.

“콩나물밥을 해 먹으려고 사다 놓았는데 없어.”

“응? 아, 네가 산 거야? 난 또……. 그거 국 끓였는데.”

먹고 싶어서 샀다는데 내가 맘대로 써서 미안했다. 그래서 점심을 먹고 산책길에 콩나물을 한 봉지 샀다.

요즘은 채소를 진짜 많이 먹으려고 노력하고 있다.  

   

일 년 전부터 아침 운동을 하고 있다. 홈 트레이닝을 하는 중인데, 헬스부터 시작해서 지금은 헬스와 필라테스를 병행하고 있다. 운동을 시작한 계기는 건강검진 결과를 받은 다음부터였다. 고지혈증 초기로 의심된다며 이 증상이 더 오래갈 경우에는 약을 먹어야 하고, 심혈관계 질환으로 이어질 수도 있다고 했다.   

  

“채소를 많이 드세요.”

예전에는 이런 말을 듣지 못했다. 고기를 풍족하게 먹을 수 없었고, 먹더라도 국에 빠진 고기가 대부분이었다. 그런데 요즘은 국에 빠진 고기들도 덩어리가 엄청 크다. 구워먹는 횟수와 양도 늘어났다. 그리고 간편한 음식들을 선호하다보니 손이 많이 가는 채소 요리는 꺼리게 된다. 나물 반찬은 식당에 가야 먹을 수 있는 경우가 많아졌다.     


아버지가 앓은 질병을 생각하면 쉽게 넘길 수 없는 신호였다. 그래서 찾아낸 방법이 운동이었다. 처음에는 균형을 못 잡아서 자빠지기 일쑤였고, 근육이 당겨서 벽을 잡고 걸어다녔다. 땀 흘려 운동을 했는데도 몸무게는 그대로라 이게 무슨 소용이 있나 싶어서 관둘까 고민도 했다.  

   

“먹는 걸 안 바꾸면 아무 소용 없어요.”

고민하는 내게 코치가 말했다. 

운동을 열심히 하면 건강한 몸이 되지만, 몸에 이미 축적된 나쁜 것들을 빼내기 위해서는 운동과 식이요법을 병행해야 된단다. 그래서 어떻게 먹느냐고 물어보았는데, 자신이 먹는 식단은 때로 극단적이라서 무조건 따라하라고 할 수 없다고 했다. 하지만 그 가운데 가장 마음에 드는 것이 바로 채소 샐러드였다.  

   

만드는 방법은 아주 간단하다.

냉장고에 있는 모든 채소들을 큰 통에 털어넣는다. 데친 브로콜리, 생양파, 양배추, 오이, 파프리카 등을 한입 크기로 썬다. 이때 양파는 가장 아래쪽에 넣어야 아린 맛이 빨리 빠진다. 아린 맛을 싫어하면 30분 정도 물에 담갔다가 건지기도 한다. 물에 담갔을 경우에는 물기를 제대로 빼야 한다.

이렇게 통에 차곡차곡 담은 다음, 식초 1큰술, 들기름 1큰술, 매실청 1/2큰술 정도를 그 통에 넣는다. 경우에 따라서는 이 배율을 2배로 해서 넣는다. 반나절 정도 지난 다음 소스를 뒤적여서 아래와 위를 섞어준다. 밀폐가 잘 되는 통일 경우에는 아예 뒤집어서 가라앉은 소스를 위까지 오게 한다. 만들고 바로 먹는 게 아니라 하루 정도 두었다가 먹는다.     


채소를 많이 먹어야 하는데 나물을 만들기는 힘들고 칼로리가 높은 드레싱을 뿌리긴 찜찜하다면 이 방법을 추천한다. 맛이 깔끔하고 개운하다. 매실청은 넣어도 되고 안 넣어도 된다. 대신 위가 안 좋거나 식초에 과민한 반응을 보이는 사람이라면 식초 양을 줄여야 한다. 프렌치 드레싱을 뿌려서 먹어도 괜찮다.      


오늘 저녁은 콩나물 밥, 김치콩나물 국, 호박나물, 무말랭이 무침, 미나리 무침, 채소 샐러드, 김치로 먹었다. 

온통 채소로 가득한 밥상에 배가 불렀다.

“이 샐러드에서 들기름 냄새가 나.”

입맛이 까다로운 어떤 이가 말했다. 1큰술씩 넣다가 2큰술로 늘였더니 족집게처럼 알아낸다. 무려 반년 만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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