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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오늘 하루는 어땠는가

- 행복한 직장일기 Day1

by 긍정약사

약사면허를 딴 지 13년차가 되었다.

대학원다니며 알바한 것을 빼고 약국약사로 풀타임을 다닌 것도 만 7년을 채웠다.

웬만한 조제약, 일반약, 영양제, 약국 시스템, 문제상황에 대한 대처 모두 가능하게 되었다.


사람 마음은 간사하다고 한다.

내 마음은 내가 봐도 참 간사해서 웃긴다.


월급 30만원으로 살던 대학원을 겨우 졸업하고 풀타임 약사로서 월급을 받았을 때 나는 황당하리만큼 행복했다. 이렇게 재미있게 좋은 사람들과 보람찬, 사회에 도움되는 일을 하고서 월급도 받을 수 있다니, 이런 직업을 내가 가졌다니, 나도 운이 좋을 수 있구나 생각했었다.

풀타임으로 일했던 첫 약국에서 처음으로 나만 찾는 단골이 생겼을 때, 그 단골이 다른 사람들도 데려올 때, 모든 순간이 감사했다. 인센티브가 있는 약국이 아니라서 더 많이 상담해서 매출이 올라간들 내 월급에는 일절 영향도 없었다. 하지만 내가 공부해서 환자에게 도움이 되는 약을 확신할 수 있었고 그 내용을 환자에게 설득해서 사게 할 수 있다는 것이 정말 즐거웠다. 자신감이 점점 붙었다. 퇴근하고 운동하고 인강을 듣고 약약사친구들과 토론했다. 매일 지쳐쓰러져 잠들었지만 정말 재미있어서 했다. 이게 사람들이 말하는 덕업일치인가 싶었다. 대학원, 회사라는 거쳐서 돌아왔지만, 돌아온만큼 이 직업이 나에게는 더 소중했다. 나의 천직이라고 확신했다.


내 마음은 간사하게도, 약국약사가 이제 지긋지긋하다고 느낀다. 장점보다 단점이 더 크게 보인다. 정말 질린다. 지난달까지 내 약국을 열 생각을 하면서 좀 알아보다가 약국약사 생활이 지겨운 사람이 어떻게 약국을 열고 진심으로 환자분들을 대할 수 있을까, 나한테도 환자분들한테도 못할 짓이다 생각하며 그만두었다. 물론 권리금이 너무 비싸다는 현실도 크게 작용했지만.


일하는 시간이 힘들고 지친다고 느껴서 탈출구가 필요했다. 그래서 몇년전에 읽었던 [일의 철학]이라는 책을 다시 읽었다. 이 책의 목적은 독자로 하여금 하루의 대부분을 보내는 직장에서 의미와 행복을 찾게 하는데 있다.


48페이지에서 책은 나에게 "당신의 오늘 하루는 어땠는가"를 물어보며 직장에서의 나를 관찰하라고 했다. 관찰한 결과로 다음 4가지 질문에 대답하고, 만족스럽지 않은 직장상황에서 올바른 방향으로 발전하고 있는 나를 다시 한번 발견하라고 한다. 이 기록을 "행복한 직장 일기"라고 한다. 오늘부터 해볼 예정이다.


1. 무엇을 배웠는가?

- 내과 원장선생님께서 앞으로는 같은 소화제 계열인 파자임정과 애니탈정을 구분해 쓰신다고 한다. 성의있게 처방내시는 선생님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독감약중 시럽형태인 타미비어현탁용분말이 새로운 용량이 출시되어 약국에 입고되었다. 가루를 재서 덜어서 줄 필요가 없어져서 잘되었다고 생각했다.


2. 새롭게 시작한 일은 무엇인가?

- 약국에 온 실습생에게 조제기계 다루는 법, 혈압약 용량비교하는 법을 가르쳤다.

- 일의 철학을 읽기 시작했다.

- 행복한 직장 일기를 시작했다.


3. 누구를 도왔는가?

- 마른 기침을 하는 환자분들이 계속 목을 말리는 진해제를 찾아서 설명드리고 다른 약으로 바꿔서 드렸다. 오늘만 4건정도 된다.

- 내자신이 일의 의미를 찾을 수 있도록 시간을 내서 돕고 있다.


4. 무엇을 발견했는가?

예전 정신과 상담 중에 의사선생님께 이야기 했었다. 환자분들이 복약지도를 안 들으면 나를 무시하는 것 같아서 화가 난다고.


선생님은 그게 왜 화날 일이냐고 했다.

복약지도를 해야하는 건 나의 입장이고, 그 사람은 들을 필요가 없을 수도 있다. 복약지도를 듣기 싫어하는 사람은 최대한 간단히 하거나 봉투에 표시하고 보내면 된다. 화를 낼 필요없다고 했다.

그당시 충격적인 상담내용이라서 선생님 표정까지 기억이 난다.


다시한번 생각해보니 그렇다. 오히려 복약지도를 들어주신 분들에게 감사한 마음이 든다. 그분들은 바쁜 시간을 내어서 내 복약지도를 들어주신 것이다. 아파서 힘든 상황일텐데도 그랬던 것이다. 관점을 바꾸니 조금 기분이 나아지는 것 같다. 신기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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