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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열리는 새벽 Dec 02. 2020

아줌마가 대신 사과할게

어른을 만나다


아기 솜이를 낳고 처음 미용실에 갔다.

2017-2018년 히피 펌을 했다가 매직을 했다가 다시 한번 디지털 파마를 했던 머리는 트리트먼트를 하지 않으면 빗질이 힘들 정도로 망가졌고 그래서 그 상한 부분을 잘라냈어야 했었는데, 그 쉬운 일을 너무 오래 미루고 살았다.

상한 부분을 다 잘라버리면 단발이 되려나 싶었는데, 전문가가 보기엔 그래도 아직은 쓸 만(?) 했던 지 예상과 달리 내 머리카락은 많이 짧아지지 않았다.ㅋ

눈이 예쁜 미용실 선생님과는 커트하는 그 짧은 시간 참 많은 이야기를 나눴다.
우리는 서로의 마지막 여행지가 어딘지로 대화를 시작했다. 그 이야기는 겹치는 여행지에서 오래 머물렀고, 코로나 이후 가고 싶은 곳을 이야기할 땐 붕붕 떠 수 만 마일을 날아다녔다.

나는,
미용 일하는 사람을 좋아한다.
이건 내게 특별한 추억이 있기 때문인데,

나는 머리카락이 두껍고 숱 많은 것이 콤플렉스였고, 그래서 미용실에 가면 누가 묻지도 않았는데 "제가 머리숱이 많아요. 머리카락도 두껍고 반 곱슬이라 머리 자르시기가 힘드실 거예요"라는 말을 해왔었다.

기억을 더듬어 보니 내가 미용실에 가는 걸 싫어하고, 미용실만 가면 평소 모습과 다르게 쭈구리가 됐던 건 만났던 여러 미용사들 내 머리를 두고 “반 곱슬이라 자르기 어렵다”거나, “숱이 너무 많아서 로뜨를 남들보다 더 써야 한다”고 했던 말들에 상처를 받았기 때문이다.

2018년 1월 돌아가신 내 아버지는 생전에 당신의 일이 잘 풀리지 않을 때 혹은 다 된 일이 뒤집어졌을 때마다 엄마에게 그 책임을 전가하던 시절이 있었는데, 아버지의 입에서는 주로 '머리카락이 두꺼운 여자(욕이었을 수도)', '기 센 여자(한 글자였지 아마)'와 같은 말들이 메들리처럼 튀어나왔었다.

어렸을 땐 엄마 아버지가 다투는 게 그렇게 공포스러웠는데, 그래서 아버지의 '머리카락이 두껍고 기가 센 여자를 만나 (나는 지금) 재수가 없는 것'이라는 말은 공포 이상이었으며, 밧줄만큼 두꺼워진 머리카락이 나를 둘둘 두르는 꿈까지 꾸게 했다.

지금 생각하면 아버지도 한창 젊으셨을 때니 하는 일마다 잘 안 되는 걸 혼자 감당하는 게 쉽지는 않으셨을 터. 누군가 탓할 상대가 필요하셨을 수 있다. 사업을 펼쳐도 보고 접어도 본 나는 아버지가 나를 낳으셨을 때보다 나이가 많아졌으며, 아버지를 깊게 이해할 수 있을 정도로 고달픈 일들도 많이 겪어봤다. 겪고 있다. 그렇다고 아버지가 잘했다는 것은 아니다.

아무튼,
나는 엄마를 닮은 내 머리카락이 조금은 싫었고 그래서 머리를 기르거나 자르거나 하는 행위 외에 추가로 무언가를 더 하지 않았으며 지금도 웬만하면 '미용실은 시간을 버리는 곳'이고 나는 '외모에 신경 쓰지 않는', '유행에 민감하지 않은', '남들과는 다른' 특별한 사람이기 때문에 머리 정도는 질끈 묶고 지내도 큰 상관이 없는 것처럼 살아왔다.

그랬던 내가 
머리에 대한 콤플렉스를 장발에서 단발되듯 싹둑하고 시원하게 털어버리는 일이 있었으니 그것은 한 미용사 선생님의 말 덕분이다.

강서보건소 근처의 한 미용실을 찾았던 그때의 나는 (육교가 있던 시절이었으니 중학교 3학년이거나 고등학교 1학년이었던 것 같다.) 그날도 가운을 걸치고 의자에 앉으면서 "제가 머리카락이 두껍고 숱이 많아요"라고 말했다. 다시 이야기 하지만 이 말은 내게 밥 먹기 전 “잘 먹겠습니다”라고 하는 것과 같은 것이었다.

"그래서요?"

내 뒤에서 거울의 나를 바라보며 미용사는 되물었다.
나는 아버지가 어머니와 다툴 때마다 했던 그 검고, 하얘질 수 있으며 길고도 짧아질 수 있는 이야기를 했다. 아니, 해버렸다. 나는 왜 처음 보는 아줌마에게 그런 비밀을 털어놓았을까. ‘내 머리를 자르는 당신이 내 못된 머리 때문에 짜증이 날 수 있겠지만, 나를 가엽게 여기시어 부디 내 머리를 이렇다 저렇다 입으로 디자인하지 말아 달라’는 힌트를 주고 싶었던 걸까.

그때 그 선생님은 내게 이런 말을 했다. 20년 아니 25년도 전 일 텐데 너무나 분명하고 확실하게 기억이 난다.

"아줌마가 대신 사과할게요. 어른들이 꼬~~~~~옥 그렇게 쓰~~ 을떼 없는 말을 해서 애들한테 콤플렉스를 만들어 줘. 머리카락은 두꺼운 게 좋고 그건 건강한 머리인 것이고, 숱이 많은 건 지금은 모르겠지. 근데 나이 들면 알 거야. 얼마나 큰 복인지. 머리 훌러덩 벗어져서 오는 아줌마들이 얼마나 많은데"

나는 아기를 낳고 100일 이후부터 미친 듯 빠지는 내 머리카락을 하루에도 몇 번씩 빗어내지만 아쉬움은 없다. 몇 번은 “아니 이렇게 빠져도 되는 건가” 싶을 때가 있긴 했었지만, 아직도 파스타 면 1인 분만큼이나 남아 있는 걸. 그리고 이렇게 빨리도 쑥쑥 자라나는 걸 무어.

오늘도 눈이 참 예뻤던 선생님은 샴푸를 마친 내 머리를 말려주면서 ‘(출산을 한 뒤라 그런지) 두피로부터 10cm가량은 머리카락이 좀 얇아졌지만, 아랫부분보다 얇아졌다는 것이지 보통 사람들보다는 건강하고 두껍다’는 말을 했다.

아이롱으로 머리끝을 구부려 귀여운 웨이브를 만들고 선생님 권유대로 평생 외길만 고집했던 가르마를 반대로 타고 집으로 돌아오는데 겨울에서 봄이 오는 것처럼 구부정했던 기분이 핀다. 머리를 잘라 몸무게가 줄어 그랬을까? 계단을 내려오는 첫 발부터 걸음은 가벼웠고, 집에 도착해선 나를 기다리고 있는 아기와 남편에겐 상냥하고 싶었다. 그래서 오늘 지출해야 할 돈보다 조금 오버해 치킨도 시켜 먹었다.

내 인생의 무게를 덜어내는 곳,
미용실이 조금 더 좋아질 수도 있겠다.

12월 1일이 열리는 새벽.

사진은 최경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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