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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열리는 새벽 Jun 16. 2022

주는 사람, 받는 마음

나는 나에게만 너무 엄격한 사람이었다.


깜짝 선물이라든지 이벤트 같은 건 주로 내 쪽에서의 것이었다.


그것은 준비하면서 내내 내가 나를 기쁘게 했고, 받는 이가 감동해 주면 나는 원금에 이자까지 두둑하게 받은 것처럼 그렇게 기분 째질 수가 없었다.


아무도 모르게 좋은 일을 하고 나면 남편 모르게 딴 주머니 찬 것처럼 또 그렇게 든든한 마음을 가질 수 있었다는 건 안 비밀.


어찌보면 나는

나를 기쁘게 하려고 무언가를 하는 사람인 것이다.

.

.

그런 내가


요즘 주는 게 기쁘다고 말하는 사람들을 만나고 있다. 계획한 게 아닌데 만나는 사람마다 그런 마음을 가진 사람들이라 줄곧 받기만 해 울 일이 잦다.


비건 립스틱을 선물 받았는데 바질심기 키트가 있었다. 지금은 씨앗 단계.
미드나잇인잼 대표 예나작가님이 선물해주신 여러가지 액세사리들.
서큘레이터를 선물 받고도 이것이 뭔지 몰라 집 앞에 서서 박스를 한참 쳐다봐야 했다.

오늘은 무심코 "이거 진짜 시원하네요" 했던 내 말을 기억한 이가 서큘레이터를 집으로 보내왔다. 집 앞에 있는 박스를 보고 이게 뭐지 싶어 한참 쳐다봤다.


한 친구는 남편과 내가 동시에 아파 링거 맞고 일을 쉬고 있단 소식에 생선찜을 저녁시간에 맞춰 보냈다.

일하지 말고 쉬라고 신신당부한 그 친구는 고양이로 인연이 된 동갑내기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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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뿌리가 바람에 뽑혀 날아가는 것을 간신히 잡아둔 날부터는 사람이고 뭐고 다 싫어져 버렸다.


친구가 다 뭐야.

주고 싶어도 줄 게 없었다.

출산을 준비하며 친구에게 육아용품을 얻으러 다녔던 때였다.


매일 지구 한 바퀴를 걷는 고된 내 마음에 남 이야기가 들어올 리 없었다. 당연히 공감하지 못했다. 같이 있으면 있을수록 다리가 저렸다.


그래서 나는 아주 오래 사람을 좋아하지 않았으며 그간의 내 행동을 "쓸데없는 일"이라고 정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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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게 나였다고

주는 사람의 마음을 너무 폄훼했다.


준비하고 받을 때까지 기다리고

아무도 모르게 꽁꽁 숨겨 가끔 혼자 꺼내보며 프프 웃는 그 예쁜 마음을, 자기만족 또는 생색이라며 함부로 대했다.


'결국 너는 받기 위해 계산된 행동을 하는 것이 아니겠느냐'라고 억지로 반성도 했다.


나는 언제나 나에게 너무나도 야박한 사람이다.

.

.

잠시였지만

가죽공예에 꽂혔을 때가 있었다.

그때 난 머스터드 칼라의 스웨이드 가죽을 커버로, 색지는 한 장 한 장 접고 자른 99% 수제 다이어리를 만들어 좋아하는 구청 공무원에게 선물했었다. 열심히 만들었지만 아무래도 어설픈 것이었다 그것은.


포장을 푸르며 다이어리가 모습을 다 드러내기도 전부터 그는 눈물을 뚝뚝 흘렸다. 그와 나는 인도 식당에 앉아 음식 나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너무 고생했잖아" 하고 말한 그녀는 정년퇴임을 앞둔 나의 첫 공보팀 주임이었다.

그날 그녀의 눈물은 그를 10년 넘게 보면서 처음 본 것이었다.


그때 나는 조금 더 수고스러운 인생을 살고 싶어졌다. 다시 사람을 좋아하기로 했고, 좋아하는 일은 live라는 것을 깨달았다.


나는 그날 다시 투명해졌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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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카톡 한 통을 받은 날도 나는 그랬다.

마음이 수채화처럼 맑고 투명해졌다.

몇 달 이벤트성으로 함께 일한 분이 마지막에 보내주신 카톡.

아, 나는 졸라 멋있는 사람이 맞구나.

씨익 웃음도 났는데,

이제는 그것에 아휴- 라던가 손사래 같은 것은 하지 않아도 될 것 같다. 나는 이제 나답게 살 거니까.


결론은!

뜨거운 밥과 가오리 찜 양념은 진리이고,

서큘레이터는 아까워서 못 뜯겠다. 에어컨 없는 엄마에게 가져다 드리고 싶기도 하고?

친구가 아픈데 밥하지 말라며 말 없이 배달시킨 가오리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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