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흘 전에 2차 임원 면접 본 회사의 부사장님은 내 이력서를 보시더니 "새벽 씨, 참 열심히 살았네요" 라고 하셨다.
면접 다 끝나갈 무렵에는 할 말, 혹은 회사에 대해 궁금한 점 있냐셔서 (이미 너무 가고 싶던 곳이어서 다 알아봐 궁금한 게 없기도 했다.)
"제 이력서에서 제가 얼만큼의 학벌을 가졌는지.. 얼마나 유명한 매체에 있었는지가 아닌 제 삶을 봐주셔서 정말 고맙다"고 말했다.
면접 중간에는 부사장님이 기자 생활하면서 특별하게 떠오르는 에피소드 있냐시길래, 뜬금포지만 이런 이야기를 했다.
"결혼하고 3개월 조금 지나 아버지가 (제 마음에는) 너무도 갑작스럽게 돌아가셨습니다. 그 때 장례식장을 찾을 수가 없어 다른 동네 작고 후지게 느껴지는 장례식장을 간신히 얻어 아버지를 보내드렸거든요.. 날도 너무 추웠습니다. 친한 친구들이 죄 저 추울까 걱정하는 문자들을 보내더라구요. 울면 더 춥다구요. 차마 울지 말란 말은 못하겠으니까.. 그 때가 1월 중순이었거든요.
장례 이틀째 날에는 눈까지 내렸어요. 그 날 아버지 입관을 마치고 지하에서 1층으로 힘 없이 올라오는데 1층 유리 현관 너머로 장애인 여럿이.. 전동 휠체어에 앉아 고스란히 눈을 맞고 계신 게 보이는 거예요. 뭐지?? 하고 잘 보니 다 아는 얼굴들.. 제 조문객들이시더라구요. 지역에서 기자하면서 인연이 되셨던 분들요.. 공간이 너무 협소하니까 빈소에도 못 들어가고 건물 안에도 들어가지 못하고.. 그렇게 바깥에서 눈을 맞으시면서 저를 기다리신 거 였어요. 전 그 날을 잊을 수가 없습니다. 그 중 한 분이 부의금 모은거랑 개인적으로 쓰신 편지를 제 손에 꼭 쥐어 주셨는데.. 아버지 영정 사진 앞에서 꺼내 보니 거기에 '박윤미 선생님, 선생님은 우리 같은 사람의 희망입니다. 절대 쓰러지시면 안 됩니다" 는 내용이 진짜 삐뚤빼뚤 글씨로 써 있었어요.
저는 잘 살고 싶었습니다. 제대로 나이쓰하게요. 그 때부터요. 어쩌면 그 전부터 일 수도 있는데 뭘 잘 몰랐을 수도 있고요"
내게는 세상을 떠들썩 하게 한 대단한 취재기나 어떤 업적(?), 공훈 따위는 없지만 있다해도 남들 다 있는 그런 건 말하고 싶지 않았다.
그리고 나는 알고 있었다.
선수는 선수를 알아보는 법.
우리는 통하겠구나.
어쩌면 가장 이성적이어야 하고 가장 냉정한 게 맞을 언론 시장에서 그렇게 나는 두 번의 면접을 치르고 최종 합격을 통보 받았다.
결혼하고 3-4개월, 한창 신혼인 때에 아버지를 잃고 (티 낼 수 없는) 슬픔에 빠져 살던 나는,
장례 끝내고 얼마있다 바로 그 때 눈 맞고 나를 기다리시던 분들을 일일이 찾아 다니며 집 앞에 몰래 생필품 놓고 오거나, 만나면 대화 나누다 오곤 했는데
그 때 남집사는 (기억할는지 모르겠지만) 그런 나와 함께 다니며 "나는 당신의 이런 점이 참 좋다"고 말했었다.
내가 중하게 생각하는 것을 남편이 된 남자가 함께 중하게 여겨줘서 계속 이렇게 살아도 되겠구나.. 하고 안심이 됐었다.
살면서 나처럼 힘든 애가 또 있을까,, 연민에 빠지는 날도 없지는 않지만 사는 데 있어서 뭣이 중헌지를 아는 사람을 만나는 오늘 같은 날에는 희망이 생기기도 한다. 이럴 땐 나도 사적인 이야기를 마구마구 하고 싶어진다. 정말로 모처럼만에 신이 나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