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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열리는 새벽 Dec 04. 2020

당신이 떠났다. 내게 간다는 말도 하지 않고

 2017년 2월 나의 아저씨 겸재정선미술관 이석우 관장님을 떠나보내며


당신이 떠났다. 내게 간다는 말도 하지 않고.

지난해 9월 말 할머니가 돌아가셨다.
집에서 태어난 다섯 마리 고양이 중 조금 이르게 지인의 집으로 입양 간 아이, 생김이 특별해 대놓고 편애하던 작은 고양이가 무지개다리를 건너 별이 됐다.
엄마의 큰 언니, 아버지의 하나뿐인 남동생, 그러니까 내게는 큰 이모, 작은아버지인 그들이 세상을 떠났다.

지난 다섯 달 동안 내가 겪은 네 번의 이별이다.

당신은 내게 “보름산 미술관으로 가자”고 했다.
의욕만큼, 노력만큼 따라 주지 않는 일에 나는 많이 지쳐있었다. 그래서 밥 한 끼 먹자고 미술관씩이나 가는 일이 부담스러웠다. 무엇보다 사람 만나는 일이 귀찮았다.


“보름산 미술관을 좋아하지 않는다”고 했다.
(당신이 부디 알고 있었기를 바란다) 마음에 없는 소리였다. 괜한 심술이었다.

황태 해장국을 먹고, 작은 카페에 들어가 커피를 나눠 마신 뒤 그렇게 ‘대충’하고 헤어졌다.
“금방 다시 만나자”는 지키질 못 할 약속을 했다.

2월 두 번째 마감일, 당신과 나의 각별함을 잘 아는 이로부터 “이석우 관장님이 돌아가셨다”는 전화가 걸려왔다.
연락을 준 이와의 사이에 또 다른 이석우 관장이 있다. 수화기 너머의 사람에게는 동갑 친구, 내게는 태권도를 아주 잠깐 가르쳤던 사범이다. 깜짝 놀라 “젊은 양반이 무슨 일로” 물었다.


“아니, 겸재정선미술관 이석우 관장님”.

전화를 끊고 얼마나 지났을까. 코피가 터졌다. 안면 혈관들이 제각각 율동했다. 얼굴이 뜨거워졌고, 금방이라도 눈이 튀어나올 것 같았다.

지난 다섯 달, 나는 너무하리만치 많은 이별을 겪었다. 그런데 또, 그것도 당신이.

당신은 내게 늘 “새벽아, 네가 잘 됐으면 좋겠다”고 주문처럼 말했다. 그러곤 금방 “발행인께 실례인가”하고 물었다. 당신은 그런 사람이다.

당신은 나와 얘기하길 좋아했다.
주로 말하는 사람은 나였고, 당신은 들어줬다.
지금 생각하니 ‘하룻강아지’라는 게 꼭 나를 두고 한 말이다.
세상이 알아주는 지성인이고 학자인 당신 앞에서 그저 동네 신문사 기자인 나는 무슨 말을 했던 건가. 당신 허리춤밖에 살지 않은 나는 어쩜 그리도 자신만만하게 당신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며 얘기할 수 있었나.

다른 여자들은 어떤지 모르겠지만, 나는 옷을 제대로 갖춰 입지 않았거나, 화장을 하지 않았을 때 누군가를 만나는 일이 싫다. 그 날은 내게 그런 날이었다.

나를 알아보는 이가 없었으면 하면서 신문 돌리던 날, 미술관을 막 빠져나가려는 내 등 뒤로 “저기, 고맙습니다”는 당신의 목소리가 들렸다. 처음 듣는 힘 있는 소리였다. 몸을 돌려 허리 숙여 인사했다. 당신은 모자를 눌러쓴 그 날 신문 배달원이 나였는지 알아보지 못했다.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차 시동을 걸며 생각했다. “어느 누구에게나 예의를 다하는 훌륭한 사람이다”.

오래전 인사동 당신의 전시회에서 당신이 연필로 그린 못생긴 사과 하나와 그 밑에 쓴 ‘괜. 찮. 아’ 세 글자, 그렇게 그림과 글이 원래부터 하나인 듯 보이는 작은 작품을 참 오래도록 바라봤다.
나보다 앞서 위로받은 이가, 안목 있는 누군가가 전시 오픈과 동시에 그 그림의 주인이 됐다.

‘괜찮다’고 위로하는 그 그림이 갖고 싶었다. 그러면 정말로 내 인생이 괜찮아질 것 같았다.
눈치 빠른 나는 당장이라도 내게 그림 한 장을 그려주고 싶어 하는, 그러나 그것이 실례일 수도 있다고 생각하는 당신을 보면서 “괜.찮.다”고 했다. 충분히 위로받았다. 당신은 참 따뜻하고 섬세한 사람이다.

러시아 출신 미국 화가 ‘마크 로스코’ 전이 있던 날, 미술관으로 향하는 차 안에서 나는 당신의 그 박식함에 새삼 놀랐다. 그림을 보면서 예습의 중요성을 비로소 깨달았다.
최고의 사학자이자 미술학자에게 교습비 한 푼 내지 않고 과외받았다. 그러기를 여러 번이었다. 다시 누릴 수 없는 사치였다.

당신에게 받은 마지막 책은 겸재의 발자취를 좇은 당신의 것이다.
지난 8년 간 당신에게서 받은 책이 넘칠 정도로 많다. 내 눈길이 닿는 책이면 그게 무엇이 됐던 책장에서 꺼내 주던 당신이다. 그러면서도 “그 책 읽었냐”고 물어 부담 주는 일은 단 한 번도 없었다.
그런 당신이 내게 처음으로 “이 책은 꼭 읽어줬으면 좋겠다”고 당부했다. 그 이유를 나는 안다. 그 책에는 당신이 있다. 지금 그 책은 당신이 떠나고부터 쭉 내 베개 옆에 놓여있다.

당신은 기자인 내게 그림 그리기를 계속했으면 좋겠다고 했고, 그래서 스마트폰으로 찍어 보낸 내 어설픈 그림을 과찬했다. ‘발행인의 편지’ 그러니까 지금 이 글과 같은 (기사가 아닌) 자연인 새벽의 개인적인 글이 실린 날이면 꼭 문자를 보내왔다.

“계속해서 새벽의 얘기를 써보는 건 어떤지”

“싫다”고 했다. "감성이 발달한 기자는 좋은 기자가 아니"라고 했다.
사실 알고 있다. 감성이 발달해야 사람을 볼 수 있다. 사람을 볼 줄 알아야 상대의 상태와 처지를 깊이 이해할 수 있다. 그런 기자가 좋은 기자다. 다만 나는 내 감성을 들키는 일이 싫었다. 그래서 또 마음에 없는 소리를 했다.

언젠가 나는 당신에게 이런 말을 했다. “관장님은 참 부드러운 사람인데, 그림은 굉장히 터프하다”.

“새벽이가 그렇게 느꼈다면 그런 것”, 당신은 “기분이 좋다”고 했다.

드로잉을 전공하지 않은 이가 초등학생이 쓰는 스케치북에 크레파스와 색연필로 쓱쓱 그려낸 그림을 모아 전시회를 열고, 그 전시회에 유명 화가들을 초청하는 과정들을 몇 번 보면서 나는 ‘자신에게 자신 있는 사람’에게서 뿜어져 나오는 ‘힘’을 봤다. 닮고 싶었다. 나도 '나에게 자신 있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당신은 나를 ‘좋은 아이’라고 했다. 좋은 아이가 아닌 나는, 그 말을 들은 뒤부터는 정말 ‘좋은 아이’가 되고 싶었다. 사람은 누군가가 봐주는 시선대로 성장한다고 했다.

나는 훌륭하고 겸손한, 인간에 대한 예의를 잘 아는 따뜻한 당신에게서 ‘좋은 아이’라는 말을 들은 뒤부터 진실로 좋은 사람이 되고자 노력했다.

내게 이처럼 귀한 당신이 떠났다.

사업을 시작하고 방황하던 나를,
학력이나 배경 직업이 아닌 있는 그대로의 나를 바라봐 주던, 내게 큰 어른인 당신이 떠났다.

당신이 떠나고 이틀 뒤 나는 미술관 당신의 방을 찾았다. 당신의 메모 한 장이라도 훔쳐낼 생각이었다.
텅 빈 방을 보면서 나는 소리 내 울었다. 마치 준비한 사람처럼, 모든 흔적이 비워져 있었다.
잔인한 이별이다.

지난 일주일 참 많이 울었다. 이 글을 끝으로 나는 더 이상 울지 않기로 다짐했다.

나는 눈치가 빠른 사람, 나는 안다. 이런 이별은 당신이 원하는 방식이 아니다.
당신이 좋아해 주던 새벽은 이런 모습이 아니다. 그리고 당신은, 당신을 드러내는 일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 사람. 우리의 오랜 추억은 이쯤에서 봉인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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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바라봐 주던 모습대로 성장하겠다. 더 영글겠다. 그림 그리고 내 이야기를 글로 쓰면서 사람에 대한 예를 다하며 살겠다. 훌륭한 사람은 되지 못해도 좋은 사람은 되겠다.

“존경하고 사랑합니다. 나의 관장님”

2017년 2월 21일 
故 이석우 관장님을 추억하며
열리는 새벽


고양이 사진은 최경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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