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개월 애기 엄마, 근로자가 됐다
아침 일찍 여는 서점 덕분에 출근길이 한층 즐거워졌다.
다섯 번째 출근날인 오늘, 보이지 않던 것들이 하나둘 눈에 들어온다.
문구점인 줄로만 알았던 곳에서 책을 판다. 최근 다녀온 교보문고에서 봤던 신간들을 비롯해 꽤 많은 책이 있다. 계산하며 잠시 이야기 나눠 본 사장님은 짐작대로 부지런하고 친절하시다. 회사 근처 최애 장소가 되기에 완벽하다.
온라인에서 책을 사면 10%가량 저렴하지만, 책의 표지를 만지고 책장을 넘겨 몇 줄 읽고 나서 사는 것을 좋아하는 나는 오프라인에서 구입한 책들에 애정을 갖는 편이다. 완독하지 않고 방치하는 책들 대부분은 온라인에서 즉흥적으로 카트에 담았던 것들이다.
요즘 나는 아침 6시 아기 그리고 남편과 함께 일어난다. 아기가 엄마와 분리돼있는 시간을 덜 느끼게 해주고 싶어 일부러 요란스러운 소리를 내 아이의 아침잠을 깨운다. 아기가 남편 품에 안겨 새까만 눈동자를 데굴데굴 굴리며 우리를 번갈아 보거나, 분유를 쪽쪽 빠는 동안 나는 씻고, 화장한다. 아기는 화장하는 내 모습이 신기한지 옆에 앉아 나를 한참 바라보다가 파우치 안에 든 것들을 다 빼내고 내 손에 쥐어진 것들을 달라고 손을 내밀기도 한다. 아이와 소꿉놀이하듯 시간 보내는 동안 남편은 고양이의 똥을 치우고 나의 아침을 차린다.
지하철을 타고 목적지까지 가는 동안에는 얼마나 많은사람이 부지런하고 치열하게 사는지를 온몸으로 느낀다. 나도 그 대열에 낄 수 있다는 사실이 좋다.
출근하는 35~40분, 영어문장을 30개씩 외운다. 나중에 아이에게 ‘엄마는 잘 모른다’는 말을 하고 싶지 않다.
지하철에 몸을 싣고 얼마 지나지 않아 남편에게 톡이 온다. 아기가 잠이 들었다는 반가운 소식이다. 아가, 일어나 이유식 먹고 놀다 낮잠 한 번 더 자고 분유 먹고 있으면 엄마는 네 곁에 있을 거야!
사무실에 제일 먼저 도착해서는 20대 땐 왜 해야 하는지 몰랐던 귀찮은 일들, 그러니까 수저가 담긴 컵이라든지 공동으로 사용하는 테이블 같은 것들을 닦고 귀여운 나무들에 물을 준다. 그다지 좋아하지는 않지만 내게는 각성효과가 제대로인 그것을 타 마신다.
오늘 하루, 써야 할 원고가 많다. 행정팀장에게서 k신문 기자의 전화번호를 건네받았다. 5단짜리 광고에 들어갈 문구 때문인데, 전화번호를 누르면서 “아, 이 기자는 광고를 땄구나, 얼마의 인센티브를 받게 될까”를 생각한다. 여전한 직업병이다. 언론지원 담당이라는 말로 랜선 통성명을 마친 뒤에는 사무적인 말들을 나눈다. 감정이란 건 1도 없다.
나는 또 생각한다. 업체의 사람들에게서 매일같이 들었던 그 말들을 내가 하는 지금의 상황과 내가 16년간 했던 일을 하는 수화기 너머의 그들을.
새로운 판에서, 부지런하게 살겠다. 잘.
2020년 12월 22일
열리는 새벽
커버사진은 최경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