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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열리는 새벽 Jan 08. 2021

 ‘connecting the dots’

내 삶의 점들

미술학원에서 같이 일했던 실베는 안 해 본 아르바이트가 없다고 했다.


실베가 한 번은 지인과 아르바이트 얘기를 하다 누가 더 다양한 종목의 아르바이트를 했는지 주거니 받거니 했던 적이 있는데, 상대는 보통 사람이라면 아르바이트와 그것을 연상하기 어려운 일까지 경험했던, 이른바 알바 만랩이었다고 했다. 그렇지, 뛰는 놈 위에 나는 놈 있고, 아사다 마오 위에 김연아가 있지.

실베 또한 중국집 배달일부터 주유소, 우유배달과 신문배달, 서빙에 바텐더까지 합법적으로 돈 벌 수 있는 수많은 일을 했는데, 상대는 실베가 했던 일들은 기본이고 “그것도 알바가 할 수 있나?” 생각할 만한 엄청난 일에 발을 담근 적도 있었으니, 그것은 바로 ‘도장, 열쇠 파는’ 일이었단다. 판매가 아니라 만드는.

나도 참 많은 아르바이트를 한 편이다. 그래도 도장이나 열쇠 파는 건 상상도 못 하고 살았다. 실베 이야기를 들었을 때 나는 “그 사람(친구) 대단하다”고 손뼉을 치며 웃었던 것 같다.
당시에 실베의 적수가 내 앞에 있었다면, 나도 의문의 1패를 했겠지?

그렇지만 나도 웬만한 알바 9단들 앞에서 “너, 이건 못해봤지?” 하고 우쭐할 수 있는 일들을 몇 가지 했는데, 하나는 기원에서 담배 연기에 찌든 바둑돌을 체에 밭쳐 닦고 말렸던 것이요, 또 하나는 우편집중국에서 다른 여자애들이 고작 봉투 따위를 분류할 때, 나는 장정들과 (지금으로 치면) 택배 까대기를 한 것이다. 그뿐인가? 고등학생일 때는 겨울방학에 아버지 후배가 운영하는 신문사에서도 일했고, 재수생일 땐 (이틀 일하고 관뒀지만) 버스 회사에서 기사들이 가져다주는 요금함에 거스름돈 500원 100원 50원 10원을 채워 넣는 일도 했다.
잠깐, 이거 내가 실베 지인 이길 수도 있었겠는데?

기자가 되기 전 마지막 내 업은 미술학원 선생이었는데, 고작 4년 정도 한 일이라 ‘했다.’ 하기 민망하지만 그래도 즐겁게 했던 일이고 그 틈에서 많이 성장했다는 것을 다음 일을 하면서 느끼는 때가 종종 있었다.

나는 스티브 잡스의 말 ‘connecting the dots’를 좋아한다.

기자가 되고서 전혀 쓸모없을 것만 같았던 미술선생일 때의 잡기(?)는 종종 그 쓰임이 필요한 일들 앞에서 기술을 발휘하게 했는데, 그럴 때면 동료나 후배 기자들은 나를 글쓰기 말고도 감각적인 재주를 하나 더 가진 사람으로 생각하곤 했다. 고백하건대, 그들은 다 속았다.

기자로, (비교적 젊은) 신문사 대표로 활동했던 시절의 것들도 나는 흩어졌거나 반대로 봉인돼 쓸모없어 버려지지 않았음을 안다. 그것들을 지속했던 시간에 나도 모르게 쌓인 힘들이 지금의 내 코어를 받치고 있다는 것 또한 모르지 않는다.

취직하고서 매일 아침 30~40분 일찍 출근한다.
20~30대는 불가능했던 일이다. 내가 사장일 땐 출근의 개념도 없었다. 일이 있으면 일찍 나갔고, 밤을 새우는 때는 이틀을 하루처럼 살기도 했다. 직원 없이 혼자 일할 땐 회사 소파에서 작은 담요 한 장을 끌어안고 종일 잠을 잔 적도 있다.

내 시계에 맞춰 일하고 먹고 자면서 살다가 때맞춰 젖을 먹이고 기저귀를 갈아줘야만 연명할 수 있는 생명을 곁에 두고 보니 ‘게으름이란 것도 믿는 구석이 있을 때나 가능한 것’ 임을 깨닫게 됐다. 아무리 애써도 보람 없는 노동인 줄로만 알았던 그것에서 나는 100톤도 넘는 그 무거운 게으름을 단박에 털고 아이의 울음에 1초도 지체하지 않고 벌떡 일어나는 힘을 얻었다.

회사에 와서는 아무도 없는 빈 사무실의 불을 켜고 보일러를 때고, 옷을 벗어 걸어둔 뒤 고무장갑을 찾아 낀다. 매일 아침 청소해 주시는 내 어머니 연배의 아주머니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며 아주머니가 대걸레로 바닥에 윤을 내주시는 동안 나는 직원들이 공동으로 사용하는 공간들과 물건들을 닦고, 마지막에 내 자리를 정돈한 뒤에 커피 한 잔을 타 자리에 앉는다.

나는 내가 40대 초반 아줌마이고, 예전 아줌마 직원들이 그랬듯 세월의 짬바 같은 게 생겨 청소 같은 건 누가 시키지 않아도 불편한 마음 없이 할 수 있게 된 줄 알았다. 그런데 어제 알았다. 커피 자국이 생긴 정수기 물받이를 닦고 물통을 비우다가 ‘아, 이건 내가 (나와 남편의) 카페에서 청소했던 바이브’, 그 dot인 것을.

지역에서 기자로 일 할 때, 주민센터 동장 A는 내게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나는 우리 딸 아르바이트 같은 거 하지 말고 차라리 그 시간에 자라고 한다. 그거 뭐 돈 얼마나 번다고 여자애를 일하라고 하겠느냐”. 엄마이기도 한 A동장이 툭 하고 뱉어버린 그 말 앞에는 내 얘기와 주민센터 여직원들이 공무원 시험 준비하며 했다는 다양한 아르바이트 메뉴들이 한 상 차려져 있었다.

그들과 헤어져 사무실로 돌아오며 명치가 조금 답답했고, 무슨 이유에선지 심술이 날 것 같았다. 친할 수 있는 사이였지만, 의도적으로 그러지 않았다.

다행히 그녀를 미워하지는 않았다. 체증도 오래가지 않았다. 사실 그렇게 길게 가져갈 성질의 것도 아니었고, 나를 누를 힘도 가지고 있지 않았다. 그 침은.

이후 친했던 어른과의 술자리에서 ‘connecting the dots’에 대해 들었다. 그는 사람이 살아가면서 찍는 다양한 모양과 크기의 점들이 왜 별개가 아닌지를 이야기해줬다. 그리고 “새벽이 그 많은 일을 경험하고 얻은 것은, 그 일들을 말할 때 즐거웠다고 하는 자신감과 눈빛”이라며 “(지나간 그 일들이) 당장은 아무 힘이 없는 것 같지만, 새벽의 내공이 될 것”이라는 말을 선물로 줬다.

갑자기 궁금하다. 열쇠였는지, 도장이었는지 아무튼 고급 아르바이트를 했던 그는 그 일을 통해 어떤 점을 찍었을까. 그 점은 삶으로 연결이 됐을까.
얕은 숨에도 향기가 있는 20대에 깊은 숨을 가졌던 그의 지금이 궁금하다.


2021년 1월 08일

첫 월급 받는 날

열리는 새벽


사진은 최경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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