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7일 어정쩡한 봄 볕 아래에서 쓴 편지
4월 7일은 봄 맞죠? 근데 봄의 언제쯤이에요?
제 생각에 4월 7일은 ‘봄은 봄인데 매우 어정쩡한 봄’인 것 같아요.
외투만으로는 쌀쌀하지 않을까? 싶어 스카프를 찾게 하는 계절.
갑자기 안 하던 뭔가를 다짐하게 만드는 계절.
어디선가 맡아본 향기가 내게 다가오려는 순간 옛 생각이 훅 하고 새치기하는 계절.
초록의 거리를 걷고 싶다가, 그 길에 놓인 벤치에 앉고 싶다가, 집에 돌아와 옷 입은 채 소파에 눕고 싶은 계절.
무엇보다 너무 설레거나 반대로 지나치게 우울하게 만들지 않는 그런 계절요.
바깥세상에 색깔이 생겼어요.
하얀 눈꽃이 내렸던 자리에는 차갑지 않은 하얀색의 꽃들이 폈어요. 어떤 하양은 팝콘 같고, 어떤 하양은 네다섯 살 어린이의 기도하는 손 모양 같아요.
성질 급한 분홍과 노랑도 여기저기에서 슬그머니 머리를 내밀어요. 색은 이처럼 제각각인데, 이게 또 너무나 환상적인 조화라 예쁘다, 고 밖에 할 표현이 없어요.
아까 카페에 나가 계약서 하나를 썼어요.
저 첫 차도, 첫 사무실도 4월 7일에 계약했었잖아요. 이번에 새로 이사 가는 아파트 계약일도 4월 7일 오늘이네요? 저는 정말이지 제 생일과 궁합(?)이 잘 맞는 것 같아요. 그래서 제가, 또 제 지인들이 제 생일을 소중하게 여기는 것도 같고요.
4월 7일은 신문의 날이고, 옛날 신문사 기자들은 이 날 만큼은 쉴 수 있었다는 거 하도 많이 들어서 알아요. 그런데 요즘 달력은 ‘보건의 날’만 찍혀 나와요. 신문의 날 모르는 사람 많아요.
신문의 날, 나이 마흔에 딸을 보신 소감은 어땠어요? 굉장한 계시처럼 느껴졌다거나 뭐 그런 소감 같은 건 없나요? 이를테면 ‘이 아이는 장차 훌륭한 여기자가 되겠구나” 뭐 이런 거요.
아, 저는 어땠냐고요?
덕분에(?) 신문의 날 태어나긴 했는데 어중간한 기자였더라고요. 아 벌써 실망하지는 마세요. 제 말은 ‘최고 유명한, 영향력이 어마어마한 언론사’에서 뛰어보지 못 한 아쉬움이지 다른 뜻은 아니에요. 요즘 기레기, 기더기 이런 말 있는데 그런 말 들을 정도로 형편없지도 않았어요. 다행히 주신 재능이 있어 원 없이 썼어요. 잘 썼습니다. 공짜가 좋긴 좋네요.
계약을 마치고 집에 돌아오는 차 안에서 정ㅇㅇ 여사에게 전화를 걸었어요. “낳아주셔서 고맙다고. 축하드린다고. 정 여사 훌륭한 딸을 낳으셨다”라고.
웃음이 건너오길 기대했는데 “미안하다”, “딸의 은혜를 다 어떻게 갚냐”는 오답이 제 전화기에 콱하고 박혔어요.
빼내지 않으려고요. 또 저를 찌를 것만 같아서요.
짧은 침묵의 끝에 정 여사 그러시더라고요. “낳기만 했지 해준 게 없다”고.
그 긴 세월 해주신 것들을 다 까맣게 잊으신 모양이에요. 요즘 치매 문제로 병원 다니시는데 많이 심각하지는 않다고 의사가 그랬어요. 더 나빠지지 않게 신경 쓰고 있어요.
서운해 마세요. 4월 7일 아침부터, 아니지 4월 6일부터 아니 아니 매일 생각하고 있어요. 제가 정 여사만 생각할 리가 있겠습니까.
며칠 전에는 이런 생각도 했는걸요.
하는 일마다 안 되는 사람의 마음에는 무엇이 있을까. 하는 일마다 엎어지는 이의 곁에 왜 아무도 없었을까. 하는 일마다 꼬이고 엎어지고 까이는 경험이 셀 수 없이 많은데, 어떻게 또 무언가를 하려고 했을까. 그러다가 갑자기 왜, 무엇 때문에 모든 것을 놓아버렸을까.
세 살? 다섯 살? 그즈음의 나이에 어머니를 잃고, 그보다 조금 컸지만 마찬가지로 어린 시절 부모가 필요한 때에 아버지마저 잃었던 것, 알아요.
누나들이 있었지만 터울도 있고, 결혼들도 일찍 했기 때문에 많이 외롭게 자랐던 것도 알아요.
주위에서 불쌍하게 여겨 ‘오냐오냐’ 한 탓에 잘 못 한 일을 지적받을 귀한 기회가 없었던 것도 알아요.
조실부모한 두 사람이 만나 결혼했으니 작은 가정의 성장을 기대하고 바라봐 줘야 할 큰 가정은 당연히 없었겠죠. 그러니 그렇게 삐걱대고 흔들렸을 거예요.
부모의 많은 유산 전부를 장남이라는 이유로 이복동생들에게 나눠 주지 않은 채 혼자 다 날렸던 것도 알아요. 그러면 더 책임감을 갖고 무슨 일이든 하며 열심히 살아야 하는데 그렇지 않았다는 것도 모르는 줄 아시겠지만, 잘 알고 있어요.
그 시간을 같이 지날 땐 이해하기 어려웠어요. 빈 술병을 치우거나 재떨이 옆에 흩뿌려진 담배 재와 땅콩 껍질을 치우면서 욕 한 날도 있어요. 저는 지금도 껍질 있는 땅콩을 싫어해요.
이런 생각을 한 날은 아무 날도 아니었어요. 기념일도 뭣도 아닌 그냥 어정쩡한 날이었어요. 그런데 그날은 왜 그랬을까요. 그 생각들의 끝에 ‘그래도 죽이지 않았구나’, ‘죽을 수도 있었는데 죽지 않았구나” 하는 생각이 척 소리를 내며 자석처럼 붙었어요.
또 눈물이 나요. 와이퍼로도 어쩌지 못하는 눈물 때문에 급히 우회전 해 마지막 차선에 차 세우고 핸들에 기대 울고 있어요.
4월 7일 오늘은 생일인데,
많은 이들이 선물과 메시지로 마음을 충만하게 해 준 나의 날인데, 썩 괜찮은 날인데, 왜죠? 곁에 아무도 없다 느껴지고 서러움이 급 범람해 마음은 가라앉아요. 저는 기쁨과 슬픔을 오가며 그만 어정쩡해지고 말았어요.
너무 보고 싶어요.
그리고 이 말 꼭 하고 싶었어요.
“자살하지 않아 줘서 고맙다”라고.
목젖이 보이게 웃어도 되게 해 줘서, 박수를 치고 발을 구르다 뒤집어지게 웃어도 그것은 그저 웃겨서 그런 것으로 오해받지 않게 해 줘서.
정말 고마워요.
아빠.
2021년 4월 7일
열리는 새벽
사진은 최경선 (@neodeu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