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별하늘 Aug 31. 2024

여름방학 여행기 5. 울릉도·독도 편 (1)

여행 출발~울릉도 도착

새벽 4시. 

전날 밤 잠을 설친 탓에 한 세 시간 정도 잠을 잤나. 

졸린 눈을 비비며 일어날 채비를 했다. 


이 날은 친정부모님과 함께 울릉도로 향하는 날이었다. 

늦어도 새벽 5시 전에는 광주에서 출발해 아침 9시 10분까지 포항 여객선항구에 도착해야 했다. 

     

포항여객선터미널


이번 울릉도 여행은 아빠의 제안으로 시작되었다. 

아빠는 몇 년 전 친구들과 함께 했던 울릉도 여행에서 독도 입도까지 성공하신 적이 있었다. 

아빠는 1980년대 후반 해외여행 자유화가 시작되자마자 러시아를 다녀오셨고, 이후에도 유럽, 호주, 아시아 이곳저곳뿐 아니라 국내 여기저기 성지순례 겸 여행으로도 안 가보신 곳이 없을 정도로 많은 곳을 돌아다니셨다. 

작년에는 엄마와 함께 백두산 천지까지도 다녀오셨고, 운이 좋게도 맑은 하늘의 천지를 여행 내내 보고 오셨다.


그런 아빠가 올해 초 암수술을 받으신 후, 독도가 너무 좋은데 엄마가 아직 독도를 못 가보신 게 아쉬우시다며 이번 여름에 함께 다녀오고 싶다고 하셨다. 

여행은 가고 싶으나 준비가 귀찮으신 탓에 나를 넌지시 떠보시며 여행계획을 편하게 세우시려는 속셈이셨을 것이다. 

마침 나도 이번 여름방학은 시간을 자유롭게 뺄 수 있는 처지였기에 흔쾌히 이 여행에 합류하기로 하고, 여행을 직접 계획하기 시작했다. 계획이랄 것도 없었다. 경험이 풍부한 현지여행사의 패키지 상품이면 충분했다.  


결혼 후에도, 아니 결혼 전에도 이렇게 친정 부모님과 나, 셋이서 하는 여행은 처음이었다(이번 여행에 동생은 함께 하지 못했다).  어릴 적에 아버지는 우리 자매를 데리고 여기저기 여행을 많이 다니셨다. 

가족과의 대부분의 여행은 대부분 유명한 사찰과 산과 계곡이 목적지였지만, 그 시절 소소하게 해 볼 만한 여행은 다 해본 것 같다. 

지리산에 캠핑을 갔다가 비가 많이 내리며 빠른 철수를 했던 날, 뉴스에서는 우리가 놀던 그 계곡에서 불어난 계곡물에 대피하지 못했던 사람들이 구조되는 모습이 나오고 있었던 적도 있다. 

어두컴컴한 산길을 운전하며 그 이름만큼이나 오싹하고 무서웠던 충북 괴산의 어디쯤을 지날 때 무서움을 이겨내려고 노래를 불렀던 기억, 대둔산의 가파른 계단길을 달달 떨며 오르내리던 추억, 제주도 여행 시 내리는 비를 피해 빌렸던 대형 밴의 트렁크 뚜껑을 열고 끓여 먹던 라면, 연례행사처럼 매년 수많은 인파를 뚫고 가서라도 꼭 봐야 했던 내장산과 백양사의 단풍들, 여름마다 우리 가족의 피서지였던 무주와 지리산의 계곡들, 꽉 막힌 도로를 뚫고 갔던 그 시절의 부곡하와이. 


모든 여행이 머릿속에 정확히 남아있지는 않지만 가족과 함께 했던 그 장소와 그때의 느낌이 조각조각 기억 속에 남아있다. 여행이 편하지만은 않던 그 시절 아버지의 자동차는 우리를 전국방방곡곡으로 그렇게도 열심히 실어 날랐었다.     

 

다시  8월 6일 새벽 5시. 새벽안개 낀 어두운 고속도로를 향한 첫 운전대 또한 늘 그렇듯 아버지가 잡으셨다. 새벽 운전길을 아버지께 맡겨야 해서 걱정이 컸지만 나에게 선뜻 운전대 양보를 하지 않으셨고, 나 또한 새벽 졸음이 계속 몰려와 운전이 쉽지 않은 상태였기에 나중에 교대를 하기로 하고 여행을 시작했다.


한 시간쯤 고속도로를 달렸을까. 아버지께서 차창을 자꾸 열고 닫으셨다. 새벽 찬 공기에 졸음을 물리치시는 듯했다. 

“아빠, 나 좀 자고 일어났어. 내가 이제 운전할게. 다음 휴게소에서 손 바꿔요.”

“응. 그래야겠다.”

지리산 근처에 도달했을 때쯤부터 내가 운전을 하기 시작했다. 


수십 년 전만 해도 우리 아버지가 제일 운전을 잘한다고 생각했는데, 어느덧 나이 드신 부모님이 운전하는 모습이 불편해지기 시작했다. 그도 그럴 것이 아버지도 어느덧 내년이면 칠순이다. 

몇 년 전 교통사고가 난 후, 후유증으로 목과 허리가 안 좋으신 아버지는 운전을 할 때도 자세가 불편하신 듯 자꾸 몸을 움직이셨다. 그럴 때마다 차선 이리저리 차가 흔들리는 기분이 들어 사고가 날까 무서웠다. 

얼마 전에는 암진단 후 복강경 수술도 하신 상태라 장거리 운전을 하실 체력이 회복되지 않으셨다. 결국 출발한 지 한 시간 만에 지쳐 보이는 아버지를 설득한 후, 나머지 여정은 내가 쭉 운전을 할 수 있었다.   

  

광주-대구 고속도로는 도로의 높이가 높아 볼 수 있는 주변 풍경이라고는 터널과 산 뿐인 지루한 길이었다. 

그러나 대구를 지난 이후 새벽안개가 모두 걷히고, 도시의 풍경 속에 수많은 출근 차량들은 아침의 활기를 더해주어 여행객의 운전길을 더욱 신나게 해 주었다.     

 

영일대해수욕장


아침 9시, 포항의 바다는 고요했다. 영일대해수욕장에는 아침 햇살이 잔잔한 파도에 부스러지고 있었고, 그 옆에 위치한 포항여객선 터미널 주변은 아침부터 울릉도에 입도준비를 하는 관광객들이 분주하게 모여들었다. 우리가 타고 갈 배가 늠름하게 항구에 정박에 있었다. 


엘도라도 쾌속선.

배는 '엘도라도'라는 황금이 잔뜩 숨겨진 전설의 장소와 같은 이름이었다. 이 배를 타고 울릉도로 떠나는 대다수의 관광객들의 얼굴에서 그 옛날 스페인 함대가 황금을 찾길 바라며 기대감을 품고 떠났던 것처럼, 울릉도 여행의 꽃이자 최종 목표인 독도입성을 기대하는 표정들이 묻어나는 듯했다. 다행히도 바다는 무척 잔잔했다. 


바다는 고요했지만 엄마와 나는 혹시 모를 뱃멀미에 대비해 멀미약을 먹었다. 2시간 50분 동안 멀미로 고생하며 여행의 시작을 망치고 싶지 않았다. 우리가 타고 가는 쾌속선은 시속 80km의 속도로 바다를 가로지르는 초쾌속 여객선이었다. 파도는 잔잔했지만 속도가 빠르다 보니 물살을 가르며 앞으로 나가는 선체의 흔들림은 꽤나 있었다. 나와 엄마는 멀미약 덕분에 전혀 힘들지 않았지만,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뱃멀미를 무시하고 약을 드시지 않던 아버지는 혼자 멀미에 꽤나 고생하셨다고 했다.      


도동항의 모습


드디어 울릉도 도동항에 도착했다. 항구의 주변은 가파른 절벽이었다. 동해바다 한가운데 불뚝 솟은 화산섬, 울릉도에 처음 발을 내디뎠다. 

선박의 접안시설부터 항구의 입구까지 쭉 연결된 다리 양쪽에는 수십 개의 태극기가 흔들리고 있었고, 그 다리 끝에는 ‘아이러브 울릉도’라는 멘트 위에 손하트를 한 오징어조형물이 관광객을 반기고 있었다. 항구에는 울릉도 입도에 설렌 수많은 관광객들, 그 관광객들을 기다리는 여러 현지 여행사 가이드와 투어용 버스들이 정신없이 뒤섞여 있었고, 그 사이로 바다의 짠내가 바람에 날려 들어왔다. 


비행기를 타고 가 상큼한 시작을 했던 제주의 여행과는 사뭇 다른 울릉도 섬여행이 시작되고 있었다.          



나의 삶. 나의 일상. 나의 에세이. 여름방학 여행기 5. 울릉도·독도 편 (1) 여행 출발~울릉도 도착. 끝.

매거진의 이전글 여름 방학 여행기 4. 제주 편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