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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퇴했으니 이제 성공만 하면 되겠다

by 김철수

완벽해 보이는 궤도에서의 이탈


서울대에서 컴퓨터공학으로 학사를 받은 후, 컴퓨터공학의 전문가가 되고자 대학원에 바로 진학했다. AI 시스템 최적화를 열심히 연구해서 박사학위를 딴 후에는, 아마 미국의 빅테크 기업 혹은 한국의 대기업에 취직하는 게 가장 안정적이고 이상적인 궤도가 아니었을까 싶다. 그렇지만 나는 자퇴를 결심했다.


실제로 과거 동료들(교수님, 선/후배)이 걸어온, 그리고 걸어가고 있는 길을 보면 구글, 메타, 마이크로소프트, 아마존 등 내로라하는 빅테크 기업 그리고 세계 최고의 대학 연구기관과 연관되어 있다. 대학원에서 공부하던 시절에도, 지금도 그들을 생각하면 멋지기도 하고 부럽기도 하고 여러모로 혼란스럽기도 하다.


실제로 자퇴를 결심하기까지 많은 고민이 있었고, 오랫동안 고민했다. 가족, 친구들도 모두 내 결정을 응원해 줬지만, 안타까워하기도 했다. 특히, 요즘은 AI가 대세이지 않은가? 나는 뭘 이루고자 이 "최적화"된 루트를 버리고 난장판에 뛰어들기로 결정했을까?


논문이라는 그릇, 그리고 그 밖의 세상


연구든, 제품 개발이든 근본적으로 세상에 없는 가치를 만들어 낸다는 목표에는 차이가 없다. 난이도에도 차이가 없다. 임팩트가 큰 연구/제품개발은 어렵고, 그렇지 않은 연구/제품개발은 상대적으로 쉽다.


그렇지만 가치를 만들어내는 형식에는 차이가 있다. 연구의 산출물은 논문이다. 논문이라는 형태의 "글"이 중요하다기보다는, 현상 파악 - 가설 설정 - 검증 - 결과 분석으로 표현할 수 있는 가치 생산의 "형식"이 중요하다는 말이다. 과학 연구에서는 특히 직관이나 개인적인 해석이 개입할 여지가 상대적으로 적고, 생산된 가치를 모두에게 설득하고 확인받기 위해 과학적 방법론을 사용한다.


개별 논문이 가지는 임팩트의 크기와 관련 없이, 지식의 상아탑을 쌓아나가는 과정은 숭고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연구자 개인이 자신이 하는 일에 대한 직접적인, 즉각적인 보상이나 보람을 느끼긴 쉽지 않다고 본다. 본인이 하고 있는 연구에 대한 내재적인 동기가 커야 한다. 특정 일에 대한 가치를 모두에게 인정받기 위해 오랜 시간 정해진 틀 안에서 씨름해야 된다.


그에 비해 제품 개발은 가치를 조금 더 자유로운 방식으로 증명할 수 있다. 번뜩이는 직관, 아이디어를 가지고 빠르게 제품을 만들고, 사용자 반응을 테스트할 수 있다. 제품의 형태도, 비즈니스 모델도 다양하게 존재한다. 가치의 증명도 꽤나 직관적이고, 즉각적이고, 자극적이다. 실시간으로 트래킹 할 수 있는 일별/월별 사용자 수, 이번 분기 매출/이익, 투자 금액, 배당 금액 등 외재적인 동기부여 요소가 많다.


모든 아이디어/제품이 어느 방식으로든 성공할 수 있지만, 그 어느 것도 성공하지 못할 수 있다. 제품을 만들어 판다는 것은 당연히 하이 리스크, 하이 리턴이라고 생각한다. 업사이드도 큰 만큼 실패했을 때 남는 게 아무것도 없을 수도, 그 과정에서 세상에 남긴 가치가 "0"일 수도 있다.


그래서 행복하세요?


글을 쓰며 다시 내 생각을 정리하다 보니, "학계 vs. 산업계"로 딱 끊어서 고민하고 결정할 수 있었던 문제는 아니었다. 박사를 받고 제품개발을 할 수도 있고, 산업계로 뛰어들었다고 마냥 자유롭게 일할 수도 없다는 것도 안다. 대학원 입학 전에도 스타트업 초기 개발자로 일해봤고, 대학원 자퇴 이후에도 중견 기업에서 부품처럼 일해봤다. 그저 계속해서 하고 있는 연속적인, 다차원적인 고민의 한 축을 떼어서 정리하고 공유한다.


지금은 10개월이 조금 넘은 AI 스타트업의 창업자/CEO로, 그리고 패션 스타트업의 fractional CTO로 나름의 가치를 만들어내고자 한다. 다양한 고민의 연속에, 불안한 날들이 매일 이어지지만, 이 과정을 즐기려고 최대한 노력하고 있다.


과정을 즐겨야 한다는 말은 모두들 하지만 스스로 지키기 가장 어려운 말들 중 하나가 아닌가 싶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아직 결과를 내지 못했으니, 자기 합리화를 위해서라도 즐겨야 한다!


마소, 애플, 메타, 우리 회사 - 렛츠고.